[신봉기칼럼] 선거를 버린 장동혁 워싱턴행

최미화 기자 2026. 4. 16. 06:30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신봉기(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신봉기(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선거를 앞둔 정당의 지도부에게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은 우선순위에 대한 엄정한 감각이다. 이러한 판단이 흔들리면 그때부터 지도력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장동혁의 미국행과 그에 동행한 친장계 의원들의 움직임은 바로 이 점에서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이것은 단순한 외유 논란이 아니라, 위기 앞에서 국민의힘 지도부가 일의 시급에 대한 판단의 실패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지방선거를 불과 50일 남짓 앞둔 시점이었다. 처음 알려진 일정도 2박4일로 결코 짧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일정은 다시 5박7일로 늘어났고, 출국 시점마저 앞당겨져 출국 후에야 알고 황당해한 이들도 많았다. 선거가 임박한 정당의 대표가 일주일 가까운 시간을 미국 일정에 투입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납득이 어렵다. 더구나 지금 국민의힘의 현실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지지율은 낮고, 모든 지역에서 후보들이 밀리고 있으며, 공천 후유증도 여전히 남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표가 가장 오래 머물러야 할 곳은 워싱턴이 아니라 국내 선거 현장이다.

정당 대표의 외교 일정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필요하다면 해외 인사를 만나고 국제 정세를 점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선거 국면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지역 후보들이 시장과 골목을 돌며 유권자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동안, 대표와 그 측근들이 워싱턴에서 일정을 소화하고 백악관을 배경으로 유희적 장면을 드러낸다면 아무리 긍정적으로 봐주려 해도 쉽게 봐줄 수가 없다. 그것은 외교의 장면이 아니라 급박한 현장을 비운 지도부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장동혁 개인의 동선에만 있지 않다. 동행한 김민수 최고위원, 김대식·김장겸·조정훈 의원들의 면면은 외교 실무형 인선이라기보다 친장계 결속 과시의 구도로 읽혔다. 바로 이 대목에서 국민들은 불편해하며 묻는 것이다. 과연 방미가 지방선거를 살리기 위한 것이었는가, 아니면 지방선거 이후를 겨냥한 것이었는가. 물론 의도를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출국 시점과 방식만으로도 이러한 의심은 충분히 예견 가능했다.

더욱이 이번 방미는 정치적으로 연출된 행보라는 인상을 짙게 남겼다. 정말로 지금 아니면 안 되는 일정이었다면, 그 절박성과 공공성이 먼저 납득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왜 하필 지금이냐는 질문이 끝내 해소되지 않았다. 이 물음에 답하지 못한다면, 이번 미국행은 외교적 행보로 기억되기 어렵다. 선거의 긴장과 현실에서 한 걸음 비켜서서 자기 진영의 상징과 체면을 관리하는 정치적 일정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정치에서 사진 한 장은 긴 해명문보다 오래 기억된다. 현장 후보들이 피 말리는 심정으로 표를 호소하는 동안, 지도부 핵심이 해외에서 밝은 표정으로 일정을 이어가는 모습은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깊은 허탈감을 안겼다. 단순한 불만을 넘어 "대표는 우리와 같은 선거를 치르고 있지 않다"는 이탈감이 함께했다. 선거는 원래 후보들이 치르는 것이지만, 지도부는 그 후보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신호를 끊임없이 보내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현장을 지켜야 할 사람들이 현장을 비웠고, 후보 곁에 서야 할 이들이 백악관 앞 장면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처음 2박4일도 쉽게 수긍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그것이 5박7일로 늘어났다면, 이는 단순한 일정 조정이라고 보기 어렵다. 시의에 대한 감각과 공적 책임의식이 현저히 무뎌진 처신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위기 국면의 정당 지도부가 보여주어야 할 최소한의 절제와 긴장감이 실종된 집단행보다. 선거를 한가한 시기의 정치 이벤트로 보는 안이한 태도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이번 사건이 드러낸 것은 단순한 외유 논란이 아니다. 위기의 순간 지도부가 어디에 있었는가, 누구 곁에 있었는가, 무엇을 먼저 챙겼는가 하는 본질적 질문이다. 장동혁과 그에 동행한 친장계 인사들은 이 질문 앞에서 정치적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선거를 살려야 할 지도부가 오히려 선거의 부담으로 받아들여진다면 그것은 단순한 오판이 아니라 무책임이다.

지금 현장의 목소리는 이렇다. 힘이 되지 못할 거라면, 차라리 오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은 과장이 아니라, 선거판 한복판에서 지도부를 바라보는 당원들과 후보들의 참담한 심정일지 모른다.

신봉기(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Copyright © 대구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