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주가 일본 군함을 선택했는데, 정작 그 군함을 만들 조선소는 한국 기업이 인수하려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바로 지금 호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일본 주호주 대사가 공개석상에서 한화그룹의 오스탈 인수에 일본 정부가 "반응할 것"이라고 경고성 발언을 내놨습니다.
10조 원이 넘는 대규모 군함 계약을 따냈지만, 정작 건조는 한국 자본이 통제하는 조선소에서 이뤄질 수 있다는 현실 앞에서 일본이 긴장하고 있는 것이죠.
10조 원대 호위함 계약, 그런데 조선소 주인이 바뀐다
지난 8월, 호주는 110억 호주달러 규모의 신형 호위함 사업 우선협상자로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선정했습니다.
모가미급 호위함 개량형 11척을 도입하는 이 사업은 호주 해군력 증강의 핵심 프로젝트였죠.
계약 조건에 따르면 11척 중 3척은 일본에서 건조하고, 나머지 8척은 호주 서부 퍼스 인근 헨더슨 조선소에서 만들기로 했습니다.
첫 호위함은 2029년 인도될 예정이었고, 일본으로서는 방산 수출의 쾌거였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 헨더슨 조선소를 운영하는 오스탈을 한화그룹이 인수하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화는 올해 3월 오스탈 지분 9.91%를 직접 매수했고, 총수익스와프 계약으로 추가 9.9%를 확보해 최대주주 자리에 오르려 하고 있습니다.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는 이미 지난 6월 한화의 오스탈 지분 최대 100% 보유까지 승인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조선소가 위치한 호주의 승인은 5개월째 지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일본 대사의 이례적인 경고
스즈키 카즈히로 주호주 일본 대사는 지난 12일 캔버라 내셔널 프레스 클럽 연설에서 한화의 오스탈 인수와 관련해 "결정이 내려지면 일본 정부로부터 반응이 있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외교적으로 상당히 이례적인 발언이었죠.
그는 "호주와 일본은 방위산업 협력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한국 방산기업의 오스탈 인수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 발언의 핵심은 간단합니다. 일본이 설계한 군함을 한국 자본이 통제하는 조선소에서 건조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스즈키 대사는 "우리는 호주를 신뢰한다"고 말했지만, 동시에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의 한반도 통치로 인한 역사적 긴장이 여전히 양국 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도 언급했습니다.
한일 관계의 민감한 역사가 호주의 방산 프로젝트에까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이죠.
일본의 속내, 기술 유출과 통제권 우려
일본이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입니다. 모가미급 호위함은 일본 해상자위대의 최신예 함정으로, 대잠전과 기뢰전에 특화된 첨단 군함입니다.
이 함정을 건조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조선 기술과 설계 노하우가 한국 기업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죠.

둘째는 생산 통제권의 문제입니다. 한화가 오스탈의 최대주주가 되면, 일본 설계 함정의 건조 일정과 품질관리를 한국 자본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조선소에 맡겨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군사 장비의 특성상 생산 과정의 보안과 통제는 매우 중요한데, 이 부분에서 일본이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셋째는 경쟁 구도의 변화입니다. 한국 방산은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을 크게 앞서고 있습니다.
폴란드에 K2 전차와 K9 자주포를 대규모로 수출했고, 각종 방산 장비에서 일본을 제치고 있죠.
호주 조선소까지 한국 기업이 장악하게 되면, 향후 호주 방산 시장에서 일본의 입지가 더욱 좁아질 수 있습니다.
한화는 왜 오스탈에 주목하는가
한화가 오스탈 인수에 이렇게 공을 들이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오스탈은 미 해군 연안전투함과 고속수송선 등을 공급하는 4대 핵심 업체 중 하나로, 미국과 호주에 조선소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 앨라배마주 모빌 조선소는 미 해군에 함정을 직접 공급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곳입니다.

한화오션이 아무리 기술력이 뛰어나도, 미국 시장에 직접 진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미국의 존스법은 미국 내 해운과 조선업을 철저히 보호하고 있고, 군함 건조는 더욱 까다로운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하죠.
그런데 오스탈을 인수하면 이런 장벽을 단번에 넘을 수 있습니다.
이미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가 한화의 100% 지분 보유까지 승인했다는 것은, 미국 정부가 한화의 오스탈 인수를 사실상 환영한다는 의미입니다.
호주 조선소 역시 중요한 전략적 거점입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군함 수리와 정비, 건조가 가능한 시설을 확보하는 것은 한화의 글로벌 방산 네트워크 구축에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호주는 미국, 영국과 함께 오커스(AUKUS) 안보 동맹을 맺고 핵잠수함까지 도입하려는 나라인데, 이런 나라의 조선소를 확보한다는 것은 향후 수십 년간 안정적인 방산 수요를 확보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호주의 딜레마, 동맹국들 사이에서
호주로서는 난처한 상황입니다. 일본과는 준동맹 관계를 맺고 있고, 최근 몇 년간 방위 협력을 급속도로 강화해왔습니다.
스즈키 대사가 연설에서 언급했듯이, 지난해 다윈에서 일본 F-35와 호주 F-35가 나란히 배치된 것은 양국 군사협력의 상징이었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적국이었던 두 나라가 이제는 긴밀한 안보 파트너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 역시 호주의 중요한 파트너입니다.
한국은 호주에 K9 자주포를 수출했고, 레드백 보병전투차량이 호주군 차기 장갑차 사업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한국은 호주의 주요 교역국이며, 양국은 자유무역협정을 맺고 있죠.
게다가 미국이 한화의 오스탈 인수를 승인했다는 것은, 호주의 최대 동맹국인 미국이 이 거래를 문제 삼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호주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가 5개월째 승인을 지연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복잡한 외교적 고려 때문으로 보입니다.
일본의 반응을 살피면서, 동시에 미국의 입장도 고려하고, 자국 방산업의 미래도 생각해야 하는 것이죠.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변화하는 아시아-태평양 방산 지형도
이번 사태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방산 시장의 지형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과거에는 미국과 유럽 기업들이 이 시장을 주도했지만, 이제는 한국이 강력한 경쟁자로 떠올랐습니다.
한국 방산은 가격 경쟁력과 기술력, 그리고 빠른 납기라는 삼박자를 갖추고 있습니다.
폴란드 계약에서 보듯이, 필요하면 자국 생산까지 허용하는 유연함도 보여주고 있죠.

일본은 오랫동안 방산 수출에 소극적이었습니다. 평화헌법의 제약도 있었고, 무기 수출을 꺼리는 국내 정서도 강했죠.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방산 수출을 적극 추진하기 시작했고, 이번 호주 호위함 계약이 그 첫 번째 큰 성과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한국 기업이 그 건조 조선소를 인수하려 하니, 일본 입장에서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지는 느낌일 것입니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최근 실적발표에서 "조만간 승인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미국의 승인을 받았고, 오스탈이 한화의 투자를 환영하고 있으며, 호주 정부도 자국 조선업 육성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본의 공개적인 반대 표명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사안이 단순한 기업 인수를 넘어 한국, 일본, 호주, 미국이 얽힌 복잡한 외교적 이슈가 되었다는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