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고에서 찾아낸 유물이야기] <48> 동래부사이택수선정비와 유원각선생매안감고비
부산박물관(남구 유엔로)을 품은 야외 정원도 봄을 맞이하고 있다. 따스한 봄기운을 느끼며 야외정원을 걷다 보면 동래남문비, 척화비 등 40여 점의 석조물을 직접 볼 수 있다. 부산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유원각선생매안감고비 및 비각’과 맞은 편 ‘동래부사이택수선정비’도 그 중 하나다.

‘동래부사이택수선정비’는 동래부사 이택수(1773년 8월~1774년 6월 재임)에 대한 만세불망비(萬世不忘碑)로, 1774년(영조 50) 3월 통사들이 세웠다. 비의 내용은 1774년 1월 시작한 왜관의 대규모 수리 공사 책임자인 부사의 공을 칭송하고자 소통사가 세운 것이라고 돼 있다.
특히, 왜관을 ‘화관’으로 바꿔 일본식으로 표현한 점은 당시 소통사의 대일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유원각선생매안감고비’는 1906년 9월 박기종 김낙준 등이 대일 교린관계에 종사한 선조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유원(柔遠)’이란 ‘멀리 있는 것을 회유한다’는 뜻으로 일본에 대한 조선의 교린 외교 정책을 뜻한다. ‘초량화집’에는 소통사가 근무하는 곳인 통사청을 유원당이라 하였으므로 ‘유원각선생’은 소통사를 뜻한다.
비문에는 비를 세운 목적과 비를 세운 사람 이름 등이 새겨져 조선 후기 왜관과 개항기 부산의 역사 및 한일 관계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비를 보호하는 비각은 돌로 만든 집의 형태를 띤다, 비각 모양과 짜 맞추는 방법도 전통적인 것과 매우 달라서 건축 측면에서도 주목된다.
두개의 비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소통사(小通事)이다. 소통사는 중앙에서 파견하는 왜학역관인 훈도·별차를 보좌하는 동래부 소속 하급역관이다. 이들은 사절 연향의 준비, 양국인의 왕래 규제, 왜관 물품 관리, 통역 등 왜관의 일상적인 직무는 물론, 통신사행·문위행의 수행 등 다양한 대일교섭 실무를 맡았으며, 통사청이라는 독립된 근무 공간을 가졌다.
조선 시대 현지 역관이라 할 수 있는 소통사는 일부 연구자에 의해 소개되고 있지만, 크게 조명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들은 부산뿐 아니라 대청 외교의 중심지인 의주부(義州府) 등에서도 현지 실무 역관으로서 활약했고, 개항 뒤에도 언어능력을 바탕으로 꾸준히 대외 교섭 활동을 전개했다.
2023년 부산은 2030 부산세계박람회 개최를 기원하는 행사와 다양한 K-문화 중심지로서 주목받고 있다. 조선 시대 외교 최전선에서 활동한 부산의 소통사들은 세계가 주목하는 부산으로 2023년을 기억하고 싶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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