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것들이 있다.
떠난 사람이 두고 간 물건. 그게 반지일 때도 있고, 책 한 권일 때도, 낡은 재킷일 때도 있다. 그리고 때로는 벨트다. 가죽으로 만든, 허리를 조여매는 그 흔한 물건이 누군가에게는 버팀목이 된다.

노시환은 지금 문동주의 벨트를 차고 있다.
5월의 고척 하늘 아래, 노시환의 방망이가 키움 배동현의 초구를 강타했다. 비거리 135m. 만루에서 터진 그랜드슬램. 담장을 훌쩍 넘어간 타구가 외야 잔디에 닿는 순간, 노시환은 베이스를 밟으며 중계 카메라를 향해 허리춤을 가리켰다. 거기 있었다. 벨트 하나가.
문동주는 4월 초, 오른쪽 어깨에서 이상 신호를 느꼈다. 관절와순 손상. 시즌 아웃. 팀을 떠나기 전, 그는 노시환에게 벨트를 건넸다. 말이 많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물건은 문장이 된다. 문동주의 벨트는 아마 이런 뜻이었을 것이다. '나 없어도, 잘 쳐줘.'

사실 그 시기의 한화는, 잘 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외국인 투수 둘이 먼저 빠졌다. 마무리도 흔들렸다. 불펜이 무너졌다. 그리고 타선의 중심이어야 할 노시환은 타율 0.145의 수렁에 빠졌다. 55타수 8안타. 숫자는 냉정했다. 팬들의 말도 냉정했다. 트럭이 구장 앞을 지나갔다. 온라인엔 격문이 쌓였다. 노시환이 타석에 들어설 때, 그 어깨 위에는 기대가 아니라 실망이 내려앉아 있었다.
2군으로 내려갔다. 조용히.
무엇이 바뀌었냐고 물으면, 노시환은 멋없이 대답한다. "쓸데없는 생각을 버렸습니다." 홈런을 쳐야 한다는 욕심, 타율을 올려야 한다는 부담, 팬들의 시선, 팀의 기대. 그것들을 다 내려놓고 타석에 들어섰더니 투수만 보였다고 했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마음으로 치고 있다." 별것 아닌 것 같은 그 말이, 사실 가장 어려운 경지다.

5월 타율 0.364. 홈런 6방. 노시환이 돌아왔다.
강백호가 4번에 들어서면서 노시환은 5번 타석으로 밀렸다. "4번에 대한 프라이드가 좀 있었다"고 그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웃었다. 해보니 5번이 편하다고. 강백호가 워낙 위협적이니 상대 투수들이 정면 승부를 꺼린다. 자연스럽게 뒤의 노시환에게 찬스가 쌓인다. 이날도 강백호는 3안타 1홈런 2볼넷, 5번이나 출루하며 앞에서 불을 질렀다. 그 불 위에 노시환이 기름을 부었다.
"백호 형 덕분에 제가 지금 계속 올라오고 있는 것 같다."
이 말을 노시환이 할 줄은 몰랐다. 간판타자의 자존심이라는 게 있으니까. 그런데 그는 거리낌 없이 말했다. 문동주의 벨트를 차고, 강백호의 그늘에서 힘을 받으며, 류현진이 버티는 마운드 뒤에서 방망이를 불태우는 노시환. 이 팀에서 그는 혼자 뛰는 사람이 아니었다.

홈런을 칠 때마다 문동주에게서 연락이 온다고 했다. 벨트 찬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다고. 벨트가 끊어지면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 노시환은 웃으며 대답했다. "동주가 직접 제작해서 나한테 줘야 한다. 그래야 기운을 받는다."
그라운드에 없는 문동주는 그렇게 여전히 거기 있다. 노시환의 허리에.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 가면 더 멀리 간다는 말이 있다. 한화 이글스의 5월은, 그 말을 몸으로 증명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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