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시흥시 정왕동 배곧신도시 상가 시장이 극심한 냉각기를 맞고 있다. 경매에서 줄줄이 외면받으면서 감정가의 10분의 1 수준에 낙찰되는 충격적인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지역 부동산 업계에서는 이를 배곧신도시 상권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 6억 상가, 6천만원에 낙찰된 충격적 사례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에 따르면 지난달 시흥 배곧동의 한 근린상가가 6,250만원에 낙찰됐다. 이 상가는 배곧신도시 중심상권 외곽에 2018년 준공된 오피스텔의 1층 점포로, 전용면적 43.5㎡(13평) 규모다. 1층 상가인데다 오피스텔 675실을 배후수요로 두고 있어 당초 감정가는 6억3,700만원으로 평가됐으나, 7차례 유찰을 거듭하면서 최저 매각가격이 5,200만원대로 내려왔고, 결국 감정가의 9.8%인 6,250만원에 매각됐다.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원소유주는 2019년 초 약 6억500만원에 이 상가를 매입했으며, 제2금융권인 새마을금고에서 4억원대 대출을 받았다. 불과 6년 만에 투자금의 90% 이상을 잃은 셈이다.
▶▶ 배곧신도시 상권 침체의 원인
배곧신도시 상권 침체의 주요 원인으로는 개발 지연과 소비 패턴 변화가 지목되고 있다. 배곧신도시는 1980년대 한국화약(현 한화그룹)의 화약 성능시험장을 시흥시가 신도시로 탈바꿈한 도시개발사업이다. 2020년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된 후 육·해·공 무인이동체 연구단지와 글로벌 교육·의료 복합클러스터 조성 계획이 발표되며 상권 활성화 기대가 컸다.
그러나 당초 주민들이 기대했던 서울대 시흥캠퍼스의 교육시설과 학부생 이전은 이뤄지지 않았다. 서울대병원 건립도 지연되고 있으며, 배곧대교 건설 무산 등 주요 개발 호재들이 실현되지 않으면서 투자자들의 기대감이 사라졌다.
여기에 코로나19 이후 소비자 생활 패턴이 온라인 중심으로 급격히 변화하면서 오프라인 상권은 더욱 타격을 입었다. 특히 배곧과 같이 중소형 아파트가 많은 신도시는 맞벌이 부부 비중이 높아 온라인 쇼핑과 대형마트 이용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 지역 상가 이용률이 낮은 상황이다.
▶▶ 유령 상가로 변한 신도시 상권의 현실
현재 배곧신도시 인근에서 경매로 나왔다가 최저 매각가격이 감정가의 50% 이하로 내려온 상가만 무려 50곳에 달한다. 배곧신도시 중심 상권의 한 상가는 경매에서 11차례 유찰을 거듭해 최저 매각가격이 감정가 2억5,700만원의 25%인 6,425만원까지 내려왔다.
지역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에 따르면 "주변 상가 대부분이 임차인을 구하지 못해 공실 상태이거나, 들어와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다른 개업중개사도 "처음엔 바로 옆에 서울대학교가 들어온다고 해 상권 활성화가 기대됐다"며 "상가를 분양받고 기뻐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은 인근에 진행 중인 경·공매만 100건에 육박할 정도로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 신도시 상가 공실 문제, 전국적 현상으로 확산
신도시 상가 공실 문제는 배곧신도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최근 신도시 상가 '공실 장기화' 실태조사에 나섰다. 유철환 권익위원장은 "신도시 상가 공실 문제는 비단 특정 상가 소유자 개인이나 해당 신도시 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이는 국가와 지자체, 공공기관 등이 함께 힘을 모아 해결해야 할 국가적 현안"이라고 강조했다.
위례, 광교, 배곧 등 신도시에도 '불 꺼진 상가'가 늘어나고 있다. 신도시에서 공실이 발생하는 데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수분양자들은 신도시 조성에 대한 기대감으로 높은 가격으로 상가를 매입하고, 은행에서 빚을 내 이자를 만회하기 위해 임대료를 높게 책정한다. 그러나 높은 임대료 부담에 공실은 늘어나고, 임대인들이 뒤늦게 월세를 낮춰도 이미 상권이 죽어 들어오는 임차인이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 전문가들의 경고와 투자 시사점
부동산 전문가들은 감정가보다 크게 낮아진 가격에도 일대 상가들이 낙찰자를 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연세대 상남경영원의 한 교수는 "지역 상가를 이용하는 비중이 적기에, 저렴한 가격에 낙찰받더라도 임차인을 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진단했다.
또한 "상권이 침체한 곳은 경매 최저 매각가격이 감정가의 10% 수준으로 내려가는 경우도 있다"면서 "섣불리 경매에 참여하기 전에 낙찰 이후 수익성 확보 가능성을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상가는 '분양상품'이 아닌 '운영상품'으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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