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대별로 골라 사는 면세점 위스키 7

안녕, 베트남에서 세 달 살기 중인 글렌이다. 세 달 살기라고 썼지만 사실은 출장 중이다. 베트남 호치민에 새로운 문화를 체험하게 된 것도 설레지만, 알콜러버로서 공항에 간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면세점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작년 말부터 주류 면세 한도가 두 병으로 늘어 기쁨도 두 배.

주세가 비싼 편인 우리나라에서는 일반 소매가와 면세가는 꽤 큰 차이가 난다. 특히 주세는 가격에 세금을 매기는 종가세여서 원가가 비쌀수록 세금도 비싸진다. 이런 이유로 백화점에서 100만 원이 넘는 고가 위스키가 면세가로는 절반도 되지 않는다. 또, 여러 병을 구입하면 할인이 되는 등 면세점의 다양한 할인 행사를 이용하면 더욱 저렴한 가격에 구매 가능하다.

[면세점에서는 여러 병을 살수록 할인 폭이 커지는 행사가 자주 있다]

면세점 한정으로 출시되는 다양한 리미티드 에디션 또한 면세점 방문을 설레게한다. 많은 위스키 증류소에서 일반 정규 라인업과는 제조 방법, 네이밍, 패키지까지 다른 면세점 한정 에디션을 출시하고 있다. 다만 한정판 위스키라고 무조건 맛이 뛰어난 것은 아니다. 화려한 겉모습에 비해 맛은 떨어지는 이른바 ‘함정판 위스키’도 있으니 즐거운 면세 쇼핑을 위해 주의가 필요하다.

지금부터 여행의 시작과 끝을 설레게 할 면세점 추천 위스키 목록을 공개한다. 편의를 위해 가격대에 따라 정리했으나 가격은 환율이나 행사 등 다양한 이유로 바뀔 수 있음을 참고하길 바란다.


[1]
10만 원 미만

1. 조니워커 아일랜드 그린

조니워커는 부드러운 풍미의 블렌디드 위스키로 유명하지만, 몰트 원액만을 블렌딩 한 블렌디드 몰트 위스키도 있다. 15년 이상 숙성한 몰트 원액만을 사용해 풍부한 풍미를 가졌음에도 비교적 저렴한 10만 원 미만의 가격대에 구할 수 있어 가성비 위스키로 소문이 난 조니워커 그린라벨이다. 하지만 인기가 좋다 보니 오픈런이 아니면 좀처럼 구하기 힘들기도 하고, 가격 역시 10만 원에 근접할 정도로 오르기도 했다.

조니워커 그린라벨에 대한 아쉬움을 충족시켜 줄 만한 또 다른 초록 라벨의 조니워커가 면세점에 있다. 바로 ‘조니워커 아일랜드 그린’이다. 일반 그린라벨과 이름도, 디자인도 비슷하지만 면세점 전용 라인이다. 그린라벨과 마찬가지로 블렌디드 몰트지만 15년이라는 숙성년수 표기는 빠진 NAS(None Aging Statement) 제품이다. 맛은 그린라벨보다 스모키한 피트향이 더 강하다. 그린라벨이 모든 면에서 무난한 둥글둥글한 느낌으로 위스키 입문자에게도 추천할만 하다면, 아일랜드 그린은 위스키를 어느 정도 마셔봤고 피트향에도 익숙한 이들에게 더 좋을 위스키다.

굳이 그린라벨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아일랜드 그린 자체로 매력 있고 맛 좋은 위스키다. 특히 면세가 기준 10만 원 미만에 1L의 대용량을 구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

2.애버펠디 12년, 올트모어 12년

[출처 : 듀어스 애퍼펠디 증류소 공식 인스타그램, 공식 홈페이지]

부담 없이 즐기기 좋은 데일리 혹은 입문용 싱글몰트를 면세점에서 찾는다면 이 두 위스키를 주목해 보자. 국내에는 제주 중문 면세점에서 살만한 가성비 위스키로 인지도를 쌓기 시작했고, 얼마 전 정식 출시되어 현재는 대형마트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두 위스키는 듀어스라는 국내 인지도는 다소 낮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블렌디드 위스키의 핵심 원액으로 사용된다. 두 위스키 모두 부드럽고 밸런스가 좋아 입문자도 부담 없이 마시기 좋다.

애버펠디 12년은 꿀처럼 달큰하다. 병을 오픈할 때부터 기분 좋은 달달한 향이 은은하게 퍼지고, 한 모금 삼키면 그야말로 꿀떡 넘어간다. 호불호가 갈리기 힘든 누구나 좋아할 만한 풍미다.

올트모어 바틀에는 Foggie Moss, 즉 ‘안개 낀 이끼’라는 단어가 적혀 있다. 습하고 안개가 자주끼는 지역에 증류소가 있는데, 위스키 역시 그런 풍미가 난다는 의미. 올트모어 12년은 비 온 뒤의 흙내음, 풀내음이 연상되는 향과 꽃향기처럼 화사하고 섬세한 풍미를 지녔다.

둘 중 좀 더 취향에 맞을만한 것에 우선 도전해보자. 애버펠디는 10만 원 조금 안되는 가격에, 올트모어는 10만 원이 조금 넘는 가격에 1L 바틀을 구할 수 있다.

[바에서 마셔본 올트모어, 21년 맛이 특히 좋았다]

엔트리급 12년을 맛보고 좋았다면 18년 이상 되는 고숙성에 도전해 봐도 좋다. 필자도 최근 올트모어 21년을 마셔보고 매우 만족했다. 사실 위스키 애호가 사이에서 널리 추천되는 면세점 위스키가 고숙성 애버펠디와 올트모어기도 하다. 동급의 다른 위스키 대비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아직 국내 인지도는 낮은 편이지만 언젠가 크게 될 위스키다.


[2]
10만 원대

1.보모어 18년 딥 앤 컴플렉스

이 위스키의 매력을 알기 위해서 셰리와 피트 두 가지 키워드를 이해해야 한다.

스페인 셰리와인을 담았던 오크통에 위스키를 숙성하면 셰리와인이 가지고 있던 풍미가 위스키에 자연스럽게 배어 들어간다. 이렇게 만들어진 건과일과 견과류가 연상되는 화사하고 고소한 풍미를 가진 위스키를 셰리 캐스크 숙성 위스키, 흔히 셰리 위스키라고 부른다.

피트(peat)는 습지 식물이 퇴적되어 만들어진 것으로 스코틀랜드에서 연료로 널리 사용된다. 위스키 제조에 사용하면 특유의 스모키한 풍미가 배어들게 되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위스키를 흔히 피트 위스키라고 부른다.

두 종류의 위스키는 각각을 선호하는 많은 애호가들이 있다. 하지만 셰리와 피트 풍미를 동시에 갖는 위스키는 그리 많지 않은데, 일반적으로 둘은 각각의 개성이 강해 조화를 이루기 쉽지 않다. 그러나 그 밸런스를 잡아낸 맛 좋은 위스키들이 있으니, 위스키 애호가들이 열광하는 이른바 셰리 피트 위스키다. 그 중 입문용으로 추천할 만한 것이 바로 보모어 18년이다.

[보모어만 세 종류가 있지만 18년을 가장 추천]

달큰한 셰리 위스키 풍미에 피트가 은은하게 깔려있어 다채롭고 복합적이다. 면세점에서 판매하는 보모어 18년은 ‘Deep & Complex’라는 문구가 붙어있는 것으로 일반 보모어 18년과는 다른 면세점 전용 라인이다. 일반 보모어 18년이 더 낫다는 평도 있지만, 풍미에 큰 차이는 없다. 면세용인 만큼 가격도 훨씬 저렴하다.

보모어는 피트향이 그리 강하지 않아 피트 위스키 입문용으로도 많이 추천된다. 스카치 위스키를 즐기다 보면 언제가 피트 위스키를 만나게 되어있다. 아직 피트를 경험해 보지 않았다면 밸런스 좋은 보모어 18년이 좋은 가이드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2.디아지오 SR 2022 클라이넬리시 12년

현 시점, 필자가 면세점에서 가장 추천하고 싶은 위스키다. 세계적인 주류 대기업 디아지오는 매년 Special Release(줄여서 SR)라는 이름의 한정판을 출시한다. 디아지오가 소유한 수많은 증류소 중 8~10개 정도의 싱글몰트 위스키가, 물을 타지 않은 원액 그대로인 캐스크 스트렝스로 나온다. 매년 컨셉도 달라지는데, 작년과 올해에는 증류소와 연관된 신화 속 동물들을 형상화한 아름다운 라벨 디자인을 갖고 있다.

위스키 애호가들이 선호하는 도수 높고 풍미 강한 캐스크 스트렝스이자 수집 욕구를 자극하는 한정판이기에, 매년 디아지오 SR이 나올 때마다 큰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매년 증류소의 종류, 숙성년수, 컨셉, 가격 등이 달라지기 때문에 어떤 위스키가 특히 맛 좋은지 옥석 가리기가 필요하다.

[디아지오 SR 2022 라인업]

23년 국내 출시된 SR 2022는 총 8종이며 개인적으로 4종을 마셔보았고 그중 클라이넬리시 12년이 가장 맛있었다. 아카시아꿀이 연상되는 달콤하고 향긋한 풍미가 인상적이며, 58.5%라는 높은 도수임에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고 밸런스가 좋았다. 바틀을 구입하고 싶었으나 30만 원에 달하는 고가라 아쉽게도 포기했는데, 이번 출국길에 인천 면세점에서 반값에 구할 수 있는 것을 보고 무척 반가웠다. 여러 병을 구매 시 할인 폭이 더 커지는 행사를 하는 것을 보고 두 병이나 구입했다. 내돈내산한 이 위스키가 필자에게는 현시점 면세점에서 가장 매력적인 위스키였다. 다만 덜컥 따라 구입하기보다는 필자가 그랬던 것처럼 바에서 미리 맛을 본 후 구입하자. 다양한 SR 시리즈를 비교해 보는 재미 또한 있을 것이다.


[3]
20만 원 대

1.글렌모렌지 시그넷

[출처 : 글렌모렌지 증류소 공식 인스타그램]

위스키 계의 루이비통이 있다. ㅇㅇ계의 샤넬이니 에르메스니 고급스러운 무언가에 붙이는 수식어가 아니다. 루이비통을 소유한 세계적인 명품 회사 LVMH, 즉 루이비통 앤 모엣 헤네시에서 소유한 위스키 증류소, 글렌모렌지다.

LVMH는 2004년 글렌모렌지 증류소를 인수한 이후 바틀 디자인을 명품이 연상되는 그것으로 확 바꾸었다. 그 중에서도 글렌모렌지 시그넷은 위스키 바틀 디자인 중 가장 럭셔리한 축에 들 정도로 아름답다. 괜히 루이비통이 아니다. 이 위스키를 마실 일이 있다면 뚜껑을 직접 따보자. 고급스러운 만듦새에 한 번, 묵직한 무게에 두 번 놀랄 것이다.

글렌모렌지 시그넷은 커피 풍미가 나는 위스키로 유명하다. 로스팅한 몰트로 만드는 흑맥주에서 커피나 초콜릿 같은 풍미가 나는 것처럼, 글렌모렌지 시그넷은 위스키에 로스팅한 몰트를 사용함으로서 커피 풍미의 위스키를 만들어 냈다. 다른 위스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특별한 풍미다.

사실 글렌모렌지 시그넷은 면세점 추천 위스키를 논할 때 자주 포함되는 위스키 중 하나다. 그만큼 인기도 많고, 면세점에서 시중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다.

약 2년 전에는 국내 면세점 전용으로 글렌모렌지 시그넷 리스트레또라는 한정판이 출시되었다. 가격은 당시 시그넷 보다 두 배가량 비싼 450불 정도였으니 꽤 고가였다. 출시 초기에는 많은 기대를 모았으나 마셔본 일부 위스키 애호가들 사이에선 기존 시그넷의 두 배 비쌀 만한 특별한 맛까지는 아니라는 평이었다. 면세점 한정 에디션을 구입할 때 좀 더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일반 글렌모렌지 시그넷은 이미 수많은 애호가를 통해 검증되었으니 믿고 구입해도 좋다.

2.카발란 솔리스트 비노바리끄

[출처 : 카발란 증류소 공식 인스타그램]

대만의 카발란 위스키 증류소는 2000년대가 되어서야 세워진 신생 증류소임에도 각종 세계 대회를 휩쓸며 세계 위스키 시장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대만은 평균 기온이 20도 중반에 달해 숙성 과정에서 증발로 손실되는 양이 많아 위스키 생산에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만큼 숙성되는 속도가 빠른 점을 이용, 4~6년 정도 숙성으로 스코틀랜드에서 10년 이상 숙성한 것 이상의 진한 풍미의 위스키를 선보이며 전 세계 위스키 애호가들을 열광시켰다.

카발란 위스키의 솔리스트 시리즈는 여러 캐스크에서 뽑은 원액을 블렌딩하지 않고 바로 병입하는 싱글 캐스크이자, 물을 타지 않은 원액 그대로의 캐스크 스트렝스 위스키다. 일반적으로 블렌딩과 희석을 통해 증류소에서 추구하는 풍미를 만들어 내는 것에 비해 카발란은 그냥 캐스크에 담긴 원액 그대로 병입해 판매하는 셈이다. 자신들의 위스키 품질에 얼마나 자신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카발란 솔리스트 시리즈]

카발란 솔리스트 시리즈는 하나같이 묵직하고 진득한데, 그중에서도 파란색 비노바리끄를 가장 추천한다. 와인 캐스크에 숙성한 제품으로 화사한 과실향, 진한 초콜렛, 풍성한 볼륨감을 다채롭게 느낄 수 있다.

카발란의 시작을 함께한 증류소의 총책임자인 마스터 디스틸러 ‘이안 창’이 얼마 전 카발란 증류소를 떠나면서 맛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이 있다. 그래서 그의 사인이 있는 구형 바틀의 가격이 오르기도 했다. 필자도 구형과 신형을 비교 시음을 해 볼 기회가 있었는데 맛이 달라졌다는 느낌은 있으나 신형이 특별히 맛이 떨어진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특히 솔리스트 시리즈의 특성상 캐스크에서 바로 뽑아낸 원액이다보니 아예 같은 캐스크에서 나오지 않은 이상 병마다 맛이 다른 것이 이 위스키의 매력이기도 하다. 신형 바틀도 충분히 맛있으니 면세점에서 1L 대용량으로 구해 즐겨보자.


[4]
30만 원 이상

맥캘란 이니그마

[출처 : 맥캘란 증류소 공식 인스타그램]

현 시점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많고, 급등하는 가격으로 그것을 증명하는 맥캘란이다. 그만큼 많은 분이 관심 있을 맥캘란은 사실 면세점에서는 많이 추천되지 않는다. 면세점 전용으로 나오는 맥캘란은 주로 도수 표기가 안 된 NAS 제품들인데 명성에 비해 맛이 떨어진다는 평이 많다. 다른 증류소에 비해 특히 많은 면세 전용 라인업을 출시하면서 맛보다는 너무 마케팅에 치중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다만 이니그마는 면세점 한정 라인이지만 셰리 위스키의 명가 맥캘란다운 매력을 잘 느낄 수 있는 위스키다. 이니그마도 꽤 고가지만 이보다 2배 비싼 맥캘란 18년 셰리오크의 대체재로도 거론될 만큼 어떤 의미로는 가성비가 괜찮다. 면세점에서 맥캘란을 사기로 결심했다면 이니그마를 눈여겨보자.

[다양한 맥캘란 면세 전용 라인업]

지금까지 여행이 조금 더 설렐 수 있는 면세점 추천 위스키 목록을 알아보았다. 최근에는 환율이 많이 올랐지만, 그래도 면세점은 여전히 다양한 위스키를 저렴에 가격에 구할 수 있는 매력적인 구매처다. 이 글을 읽은 당신의 여정에 위스키가 함께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