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잔의 차가 식어가듯, 사랑도 때로는 서서히 온도를 잃어간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정이 멀어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갑자기 벼락처럼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은 상처들이 켜켜이 쌓이면서 마음의 문이 조금씩 닫혀가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자녀에게 어떤 부모로 기억되고 있을까? 존경받는 인생의 멘토인가, 아니면 피하고 싶은 부담스러운 존재인가? 때로는 사랑한다는 이름으로, 때로는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우리가 무심코 던진 말과 행동들이 자녀의 마음에 어떤 흔적을 남기고 있는지 돌아볼 때이다.

1. 끝없는 간섭과 통제의 그림자
"너를 위해서"라는 명분 뒤에 숨어 있는 것은 무엇일까? 서른, 마흔이 넘은 성인 자녀의 모든 선택에 개입하려 드는 부모의 모습에서 자녀들이 느끼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질식감이다. 어떤 직업을 가질지, 누구와 결혼할지 세세히 관리하려는 시도는 자녀를 독립된 인격체가 아닌 부모의 연장선으로 취급하는 것과 다름없다. 특히 결혼 후에도 계속되는 간섭은 더욱 치명적이다. 며느리나 사위에 대한 불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거나, 다양한 일들에 끊임없이 개입하려 할 때 자녀는 숨이 막혀온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자녀는 자연스럽게 부모와의 만남을 부담스러워하고 점점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를 소유하려 하지 않고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도록 놓아주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2.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전락한 관계
자녀에게 전화를 걸 때마다 쏟아지는 것은 따뜻한 안부가 아니라 신세 한탄과 불평뿐이라면, 그 관계는 이미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다. 몸의 아픔, 경제적 어려움, 인간관계의 갈등을 일방적으로 토해내면서도 정작 자녀의 안부나 고민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부모들이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자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려 할 때 "그런 건 별거 아니다, 나 때는 더 힘들었다"며 무시해버리는 태도다. 이런 일방적인 소통이 반복되면 자녀는 부모를 정서적 지지자가 아닌 에너지를 빼앗아가는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대화는 주고받는 것이어야 한다. 자신의 감정만을 일방적으로 배출하는 것은 소통이 아니라 감정적 폭력에 가깝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3. 독이 된 말, 상처가 된 비교
“누구누구는 뭐뭐 했다더라" 이런 비교의 말들이 자녀의 마음에 어떤 상처를 남기는지 아는 부모는 많지 않다. 다른 집 자녀와의 끝없는 비교는 자녀로 하여금 부모 앞에서조차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절망감을 안겨준다. 비꼬는 말투로 던지는 "그래도 대학까지는 보내줬으니까", "그 나이까지..." 같은 표현들은 격려가 아니라 모독이다. 또한 타인에 대한 험담이나 부정적인 이야기를 자주 하는 부모를 보며 자녀들은 "우리 부모님은 언제나 불만과 원망에 가득 차 있구나"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말은 관계를 만들기도, 무너뜨리기도 하는 강력한 도구다. 자녀 앞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그들의 마음에 어떤 씨앗을 심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때다.

4. 돈과 조건으로 얽매이는 관계
"집 사는 돈을 보태줬으니까"라며 경제적 지원을 빌미로 자녀를 통제하려는 순간, 부모 자녀 관계는 순수한 정에서 계산적인 거래로 변질된다. 돈을 주면서도 그에 따른 조건과 의무를 강요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매수에 가깝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경제적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협박하거나, "내가 죽으면 재산은 다 형에게 줄 거야"같은 말로 자녀를 조종하려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녀는 진정한 효도와 사랑 때문이 아니라 경제적 불안감 때문에 부모를 대하게 된다. 돈으로는 진짜 마음을 살 수 없다는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조건 없는 사랑과 지원이야말로 진정한 부모의 마음이며, 그런 관계에서만 자녀의 진심 어린 감사와 존경이 우러나올 수 있다. 돈이 관계의 윤활유가 될 수는 있지만, 그것이 관계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5. 과거에 매몰된 채 현재를 부정하는 고집
"내가 너를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라는 말로 시작되는 과거 자랑과 희생담은 자녀에게 감사함보다는 죄책감을 안겨준다. 마치 자녀의 존재 자체가 부모에게 빚을 진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이런 표현들은 건강한 관계를 독살시킨다. 자녀들이 살아가는 현실과 가치관을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고 과거의 잣대로만 판단하려 할 때, 세대 간의 간극은 더욱 벌어진다. 과거의 경험은 소중하지만, 그것이 현재를 구속하는 족쇄가 되어서는 안 된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정이 식어가는 것은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작은 상처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벽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벽은 우리가 만든 것이기에 우리가 허물 수도 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처럼, 지금이라도 자녀와의 관계를 돌아보고 진정한 소통을 위한 첫걸음을 내딛어보자. 부모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녀를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며, 서로에게 따뜻한 동반자가 될 수 있다면, 식어가던 정은 다시 따뜻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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