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슈, 한국고대사 기행(4)] 일본, 고대사 콤플렉스 '요시노가리'

전정희 기자 2026. 5. 31.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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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후쿠오카공항에서 차로 40분대 요시노가리역사공원
ㆍ연천전곡리유적지 같은 일본 선사시대 유적지 살피다
ㆍ한반도로부터 벼농사 비법 이식되며 '문명화' 과정 밟아

한일관계는 역사 교육을 통해 더욱 돈독한 이웃으로 발전할 수 있다. 무엇보다 MZ세대는 일본을 마실 다니듯 한다. 그들에게 삶의 공간이기도 하다.  한일관계 상생의 재해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2025년 한 해 동안 일본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은 950만여 명. 역대 최다였다. 그중에서도 규슈 지방과 간사히, 간토 지방은 한국인 관광 3대 핵심 지역. 무엇보다 규슈의 관문 후쿠오카공항을 통해 월평균 12~20만 명이 입국할 정도로 규슈는 호감도가 높다.

규슈는 빼어난 자연경관과 온천을 즐기려는 관광객이 대부분이다. MZ세대에게 더욱 그렇다. 그런데 그 규슈 땅은 한국고대사의 신화가 머물고, 한국에 뿌리를 둔 역사와 문화가 자리한 곳이다.

그 한국고대·중세사의 현장을 '백제 무령왕 탄생지 가카라시마'를 시작으로 임진왜란 당시 끌려간 도공의 발자취가 서려 있는 땅 '아리타·이마리'까지 한국 역사가 배어 있는 주요 지점을 둘러보고 이를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일본 후쿠오카공항에서 남서쪽 45km 지점 요시노가리역사공원 선사시대 취락 입구. 사진=전정희 기자

일본 규슈 후쿠오카공항에서 남서쪽으로 45㎞ 요시노가리역사공원. 마치 경기도 연천 '연천전곡리유적지' 같은 곳이다. 일본 선사시대인 소위 야요이시대(기원전 3세기~기원후 3세기) 취락과 옹관 묘지 유적을 보존·정비한 곳으로 1991년 특별사적으로 지정됐다.

이 요시노가리공원(35만 평)은 한국의 에버랜드 리조트 전체 부지보다 살짝 적다. 하지만 전곡리유적(24만 평)보다는 넓다.

지난 21일 이 방대한 유적지를 찾았다. 공원 정문에 도착해 타게 강을 건너는 '하늘다리'

를 지났고 곧이어 야요이시대 취락 정문에 해당하는 '도리이' 형태의 구조물과 마주했다. 이어 마주한 V자형 해자 환호(環濠)는 이방인의 발길을 주춤하게 했다. 일본 신사 등 어느 곳에서도 자주 띄는 도리이, 그리고 일본성의 특징인 해자 등이 여기서 출발한 것 같았다.

 
벼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마을(村)이 형성되고 약탈과 방어가 시작되면서 이같은 해자 방어 시설 환호(環濠)가 조성됐다.  목책도 보인다.  사진=전정희 기자
취락의 움집에서 거하는 야요이시대 사람들 모습을 재현해 놨다. 사진=전정희 기자
일본 선사시대 주거지를 복원해 놓은 요시노가리역사공원. 사진=전정희 기자

요시노가리역사공원은 방어용 내·외부 환호, 지배 계급 거주지인 내곽(內廓), 창고와 시장 터, 옹관묘 등이 복원되어 있다. 여기에 더해 제사 광장, 시장 광장, 고대 식물 숲, 숲 체험관, 놀이동산, 야외취사 코너, 커피숍과 상업 시설 등 현대식 공원화로 재구성했다.

요시노가리는 일본의 '특별사적'이다. 일본 전역에 1800개가 넘는 사적 중 우리가 잘 아는 오사카성, 에도성, 금각사 등과 함께 특별사적 지위를 얻었다. 특별사적은 전체 사적의 3% 정도인데 우리로 치자면 '국보'이다.

특별사적이란 얘기는 문헌 기록이 빈약한 일본이 자신들의 고대사(야요이시대) 비밀을 풀 수 있는 '대체 불가능한 단 하나의 유적'이라는 선언과 같다.

이 환호취락에서는 대형 옹관과 함께 동검, 유리제 관옥 등의 부장품, 낫 도끼 글 검 창 화살촉 등의 철제 유물, 청동기기가 제작됐던 공방 터, 조개 팔찌와 견직물, 가래 괭이 뜰채 등 목재 유물 등이 출토됐다. '마을(村) 중심에서 국가 중심 사회'로 발전하는 모습이 이 '마을'에 담겼다. '고대사 콤플렉스'로 주눅 든 일본의 자부심이다.

한데 이 요시노가리유적은 역설적이게도 '일본 속의 고대 한국'을 보여주는 야외 박물관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출토된 한국식 동검과 잔무늬거울 등은 우리나라 청동기 문화의 상징적 유물이며, 토기 또한 한반도계 민무늬토기이다. 무덤은 우리의 영산강 유역에서 유행하던 그대로이다.
요시노가리역사공원 내에는 스타벅스, 스노우피크 등 편의 시설이 있어 찾아가고 픈 역사 교육 현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사진=전정희 기자

이와 관련 유홍준 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자신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한반도 정세의 변화와 그에 따른 이민 물결이 요시노가리 마을 조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음을 얘기한다. 학계도 이를 뒷받침한다.

일본은 4세기 백제 왕인·아직기가 한자를 전한 후 7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사용했다고 말한다. 그전에는 말로 기억하는 구전의 시대였다. 따라서 요시노가리 옹관묘에서 청동 거울이 나오고, 그 청동 거울에 글씨가 새겨져 있다 한들 그것은 단지 그림일 뿐이다. 그만큼 일본은 그 땅 주인이었던 조몬인의 수렵시대가 지속됐고, 비로소 한반도 도래인이 선사시대부터 밀려들면서 문명이 시작됐다는 이야기이다.

요시노가리 일대는 비옥하다. 이 땅에서 소국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모내기로 수경 재배한 한국 조상들의 비법이 적용되면서다. 문명을 가진 한국의 원삼국시대 고대국가들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패자가 된 이들이 남해안과 서해안에서 해류 뱃길을 따라 규슈 새로운 땅에 닿으면서 일본은 문명의 길을 걷게 됐다. 일본식 용어로 그들은 '도래인'이었다.

유홍준 교수는 책에서 "넓은 들판과 따뜻한 날씨, 그리고 풍부한 강수량을 보유한 규슈 땅은 정말로 농사짓기 좋은 곳이었고, 요시노가리는 '좋은 들판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처럼 벼농사의 최적지였다"고 말했다.

요시노가리 유적은 청동기를 사용할 줄 아는 도래인들이 일군 취락이다. 그리고 일본의 청동기 시대는 한반도에서 이식된 것이다.

따라서 일본이 자랑하는 요시노가리 유적은 한반도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일본 내 고대 한국의 전시장 표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계속>

 

사가(일본)=전정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