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급 취업 일반의 591명중 341명 ‘피안성정’ 몰려
수도권 대형병원 응급의학과 레지던트로 일했던 김모 씨는 최근 집에서 가까운 외과 의원에 취업했다. 수련병원을 떠난 지 7개월 이상 지나다 보니 수입이 끊겨 경제적으로 버티기 어려웠다고 했다. 김 씨는 “한창 배울 시기에 환자를 떠나 쉬고 있는 게 너무 불안했다”고 말했다.
2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사직 전공의 재취업 현황’에 따르면 이달 19일 기준으로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해 사직했거나 임용을 포기한 레지던트 9016명 중 3114명(34.5%)이 의료기관에 재취업해 의사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절반이 넘는 1719명(55.2%)은 1차 의료기관인 동네 의원에서 근무 중이었다.
재취업 레지던트 중 중증·응급의료를 책임진 ‘상급종합병원’에 취업한 비율은 1.7%(52명)에 그쳤다. 또 병상 수가 30∼299개인 ‘병원급’에 취업한 레지던트는 829명(26.6%)이었고,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급’에 취업한 경우는 514명(16.5%)이었다. 6명은 병의원을 개원해 운영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전진숙 민주당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7월 말 기준으로 의원급 의료기관에 취업한 일반의 591명 중 341명(57.7%)이 ‘피안성정’(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정형외과) 의원에서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원급에 취업한 일반의 수는 2022년 378명, 2023년 392명에 비해 크게 늘었는데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사직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수도권 쏠림도 심해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에 과반인 367명(62.1%)이 근무하고 있었다. 서울에선 강남구와 서초구에 과반(54.1%)이 몰렸다. 일반의는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지 않은 의사를 말한다.
재취업한 사직 레지던트 55% 동네의원行… 상급병원은 1.7%뿐
[출구 안 보이는 의료공백]
동네의원 몰리는 사직 전공의
전문의 자격 필요없는 ‘일반 의원’… 수도권-치료 부담 적은 과로 몰려
정형외과학회 연수 강좌 200명 신청… 의협 “개원의-사직 전공의 연결 계속”
1차 의료기관인 동네 의원에 취업한 사직 레지던트 1719명 가운데 가장 많은 인원이 몰린 곳은 587명(34.1%)이 취업한 ‘일반 의원’이다. 일반 의원은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지 않은 일반의가 개설한 의원으로 간판에 ‘정형외과 의원’처럼 전문 과목을 표기하지는 못한다. 의료계에선 이들이 ‘○○ 클리닉’ 등의 간판을 달고 피부·성형 미용 시술을 하는 프랜차이즈 의원 등에 많이 몰린 것으로 보고 있다. 높은 의학적 지식이 필요하지 않고 레이저나 주사 시술 등을 금세 배워 바로 의료 현장에 투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비인후과(148명)와 안과(127명), 피부과(126명) 등도 전공의들이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진료과들이다. 인기과로 꼽히는 정형외과에도 사직 전공의 172명이 취업했다. 지난달 4일 대한정형외과의사회가 주최한 ‘근골격계 초음파 연수 강좌’에는 전공의 약 200명이 몰리기도 했다. 서울에서 정형외과 의원을 운영하는 전문의는 “만성 통증이나 가벼운 부상으로 오는 환자들은 전공의들도 충분히 진료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의원 취업도 인기과-수도권에 몰려
서울과 지방의 편차도 크다. 이달 19일까지 의원에 재취업한 사직 레지던트 1719명 중 1134명(66%)이 수도권에서 취업했다. 서울 534명, 인천 120명, 경기 480명 등이다. 반면 전남 14명, 전북 30명, 경북 33명 등 지방의 의료 취약지에서 취업한 전공의는 많지 않았다. 지방 국립대병원을 사직한 필수과 전공의는 “지방 개원가는 의사를 추가 채용하는 병원이 많지 않아 서울의 집 주변 병원에서 당분간 일할 생각”이라고 했다.
전공의들은 예전에 받던 급여보다 낮은 금액을 감수해야 할 때가 많다. 과거에는 소수였던 일반의 공급이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상대적으로 ‘몸값’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수련병원에서 일하다가 최근 피부과 의원에 취업한 한 레지던트는 “월 1000만 원 이상이었던 보수가 지금은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구직 경쟁이 치열하니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 “전공의 공급 넘쳐… 선후배 인맥 채용”
동네 의원도 사직 전공의를 채용하는 데 부담을 느낄 때가 많다. 경기 하남시에서 내과 의원을 운영하는 전문의는 “로컬(의원급)에서 의사 한 명을 채용하면 급여의 최소 2배는 벌어야 하는데, 환자 단독 진료를 해본 적 없는 전공의들에게 그 정도를 기대하긴 어렵다. 알고 지내던 후배를 환자가 많은 요일에 시간제로 채용했다”고 말했다.
의사단체는 7월 시작한 전공의 진로 지원 프로그램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대한의사협회가 7월 말 출범한 ‘전공의 진로 지원 태스크포스(TF)’에는 이달 4일까지 개원의 116명, 사직 전공의 843명이 등록했다. 현재 개원의 77명과 사직 전공의 160여 명을 연결해 각 의원에서 진료 참관 및 채용을 진행하고 있다. 박근태 대한개원의협의회장은 “입원 환자를 주로 보는 수련병원과 달리 외래 환자들을 직접 진료하며 시각을 넓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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