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했는데 '돈 버는 족족 전부인'에게 보내면서 친구로 지내는 국민가수

이혼했지만 돈 버는 족족 전부인에게 보내고, 지금도 친구처럼,...

이들 양육비는 물론, 생활비까지 책임지며 여전히 친구처럼 지낸다는 이 남자.
보통은 원수처럼 지내기 마련인 이혼 후 관계 속에서, 그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요? 놀랍게도 그 주인공은 수많은 히트곡을 남긴 ‘국민가수’입니다.

그 주인공은 1997년 부활 5집으로 데뷔한 박완규입니다. 사실 그는 1994년, 군 복무 중이던 22세 나이에 첫사랑과 혼인신고를 했습니다. 하지만 데뷔 초 연봉이 200만 원에 불과해 생활은 버거웠고, 이미 첫째가 태어난 상태였습니다. 그때 그는 청춘의 힘으로 버티자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전했습니다.

1998년 둘째가 태어나자 더는 버틸 수 없어 솔로곡 ‘천년의 사랑’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악덕 기획사의 횡포로 한 달 100만 원을 겨우 받았고, 가족을 부양하기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히트곡을 냈지만 결국 별거에 들어갔어요.

회사 명의로 겨우 얻게 된 집도 불안정한 처지였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그는 가족을 낡은 빌라로 다시 보내고 눈치를 보며 지내야 했습니다. 이후 ‘부활’과의 재회로 기회를 잡았지만, 때마침 아이 엄마는 “편모면 급식비가 면제된다”며 이혼을 제안했습니다.

현실적인 상황에 맞선 결단

그렇게 박완규는 2011년 아내와 이혼에 합의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이혼 후에도 가족에 대한 책임을 놓지 않았습니다. 소득의 대부분을 전 부인과 아이들에게 보내며 자신은 소주값과 생활비만 남긴다고 밝혔습니다.

전 부인과도 자주 연락하며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단지 부부로서의 인연이 끝났을 뿐이라며 존중의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박완규 왈, “현실을 냉정히 본 아내의 판단을 이해한다”

그를 둘러싼 모든 선택과 과정을 담담히 털어놨습니다. 이혼 이후에도 변함없는 그의 책임감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안겼습니다. 그는 음악뿐 아니라 인생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진짜 ‘천년의 사랑’ 주인공입니다.

출처=사진 속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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