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용품기업 유한킴벌리가 창사 이래 최초로 외부 인사를 대표이사(사장)로 선임했다. 원재료 가격 인상과 저출산 등 비우호적인 환경으로 주요 사업이 성장동력을 잃자 외부 인사를 발탁해 새 활로를 찾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유한킴벌리는 신임 사장 체제에서 '쇄신'에 방점을 찍고 체질개선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17일 유한킴벌리에 따르면 이 회사는 지난 15일 이제훈 전 홈플러스 부회장을 사장으로 선임했다. 이 사장은 1965년생으로 유통 업계에서 30년 이상 일해온 '베테랑'이다. 외식 프랜차이즈(피자헛, KFC코리아), 편의점(바이더웨이), 화장품(카버코리아) 업계를 두루 거쳤으며, 2021년부터 홈플러스 대표이사로 재직하다 지난해 초 부회장에 올랐다. 그는 오는 3월 유한킴벌리 정기 주주총회에서 사장에 취임할 예정이다.
유한킴벌리가 외부 인사를 사장으로 선임한 것은 창사 이후 최초다. 유한킴벌리의 역대 사장들은 모두 '유한맨' 출신이었다. 조권순, 유승호, 이종대, 문국현, 김중곤, 최규복 등 역대 사장들은 모두 유한킴벌리에서 경력을 쌓은 인물들이었다. 2021년부터 회사를 이끌어온 진재승 사장도 사원으로 시작해 이 자리까지 이르렀다.
유한킴벌리가 파격 인사를 단행한 것은 전방위적인 위기를 맞아 새로운 시각에서 전략을 재구상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유한킴벌리 사업의 주 원재료인 펄프 가격은 꾸준히 오르는 추세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글로벌 펄프 가격은 2023년 6월 톤당 565달러(약 82만원)에서 지난해 4월 820달러(약 119만원)로 상승했다.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45.13% 인상된 것이다. 유한킴벌리의 대표 사업부문인 화장지, 생리대, 기저귀 모두 펄프가 주원료라 회사의 원가 부담이 커진 상황이다.
더구나 원단 업계에 강력한 '메기'가 등장하며 유한킴벌리를 위협하고 있다. 아시아 최대 펄프·종이 생산기업인 아시아펄프앤드페이퍼(APP)는 지난해 국내 원단기업 모나리자와 쌍용C&B를 인수하며 몸집을 키웠다. 한국제지연합회에 따르면 쌍용C&B와 모나리자의 연간 원단 생산량 13만4000톤에 APP가 수입하는 11만톤을 합치면 유한킴벌리(19만4000톤)를 훌쩍 뛰어넘어 업계 1위가 된다.
저출생·내수불황 등으로 어린이 기저귀 수요가 둔화한 것도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소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국내 어린이용 기저귀 공급량은 2019년 7만6145톤에서 2023년 5만9436톤으로 4년 새 21.94% 감소했다.
비우호적인 환경 탓에 유한킴벌리의 실적도 하락세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유한킴벌리는 2023년 매출 1조4440억원, 영업이익 2025억원을 기록했다. 각각 직전년도 대비 4.32%, 3.53% 감소한 액수다. 이에 유한킴벌리는 지난해 정년을 앞둔 직원 일부를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업계는 이 사장이 위기극복을 위해 강도 높은 쇄신과 포트폴리오 개편을 주문할 것으로 보고 있다. 조직개편과 더불어 주요 제품군을 프리미엄으로 확장해 수익성을 확보하고 신사업을 발굴하는 작업 등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한킴벌리 지분 70%를 보유한 모회사 킴벌리클라크도 지난해 운영간소화와 비용절감을 위해 조직을 개편하고 크리넥스 해외사업부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
유한킴벌리 관계자는 "유한킴벌리의 저력과 신임 대표의 경력이 더해져 시너지가 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권재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