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인도의 실리콘밸리’ 벵갈루루는 왜 인프라 붕괴 위기에 놓였나
교통 체증·물 부족·환경 파괴 등 생활 여건 악화
하이데라바드 등 경쟁 도시 부상…대안 모색 시급
인도의 대표 기술 도시 벵갈루루가 급격한 성장의 그늘에 부딪혔다. 20년 넘게 이어진 글로벌 IT 투자와 서비스업 호황은 도시를 ‘인도의 실리콘밸리’로 만들었지만, 교통·물·환경 등 핵심 인프라는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벵갈루루가 직면한 위기는 단순한 지역 문제가 아니라 인도 경제 전반의 성장 지속 가능성을 시험하는 상징적 사례로 떠오르고 있다.

26일(현지 시각)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인도 남부 카르나타카 주에 위치한 벵갈루루는 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IT 기업과 월가 대기업의 캠퍼스가 모여 있는 도시다. 사무실 내부는 실리콘밸리처럼 첨단 시설로 가득하지만, 출퇴근길에는 9마일(약 14km) 도로를 달리는 데 4시간이 걸린다. 상수도 부족으로 직원 100만명이 물탱크 트럭에 의존하는 현실 역시 실리콘밸리와는 대조적이다. 벵갈루루가 한때 ‘연금 수급자의 천국’으로 불리던 평화로운 도시에서 콘크리트 숲으로 변모한 과정은 인도의 도시화 난맥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외곽 순환도로 상업지구에 입주한 500여 글로벌 기업을 대표하는 마나스 다스 협회장은 “도시는 이런 성장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실제로 기업들은 스스로 물을 조달하고 지하철 연장을 로비해야 할 정도로 공공 인프라의 부재를 메우고 있다. IT와 서비스업은 현재 인도 경제의 3000억달러 성장 엔진이지만, 인력난과 기반시설 부족이 겹치면서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인도의 서비스 수출은 2005년 530억달러에서 2023년 3380억달러로 6배 뛰었다. 그러나 보고서는 “탄력적 성장을 당연시할 수 없다”며 벵갈루루의 물 위기를 지목했다. 실제로 올 상반기에만 센트럴파크 절반 규모의 사무실 거래가 몰리며 도시는 숨 쉴 틈 없이 팽창했다. 매년 반복되는 홍수와 악화되는 기후는 개발 속도에 뒤처진 도시 계획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비판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제약업계 억만장자 키란 마줌다르-쇼는 “국가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약탈하듯 규정 위반 건축을 방치한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한 부동산 기업 대표는 “이제는 신규 사무실 임대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도 과학연구소의 라마찬드라 교수는 “물을 공급하지 못하는데 왜 성장을 허용하느냐”며 도시가 ‘살기 좋은 공간’을 잃었다고 꼬집었다.
벵갈루루의 급격한 변모는 1990년대 인포시스와 위프로 등 IT 대기업이 본사를 옮기면서 본격화했다. 당시 저렴한 임대료와 넓은 부지를 강점으로 삼았지만, 현재 도시의 88%가 콘크리트 구조물로 뒤덮였다. 인구는 60년 전 100만명에서 지금은 1400만 명으로 불어났다. 그러나 도로·교통·상하수도는 최소 15년 뒤처졌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평가다.
이 틈새를 파고드는 도시도 있다. 북쪽 350마일 떨어진 하이데라바드는 벵갈루루의 대안으로 급부상 중이다. 구글·마이크로소프트·JP모건 등이 이미 대규모 사무실을 두고 있으며, 저렴한 인건비와 낮은 이직률, 더 나은 인프라를 무기로 삼고 있다. 텔랑가나 주의 IT 수출은 10년 만에 세 배로 뛰었고, 스타트업 투자는 최근 2년간 160% 증가했다. 다만 벵갈루루가 가진 50여개 유니콘 기업의 ‘규모의 경제’를 따라잡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최근 벵갈루루를 찾아 지하철 노선을 개통하며 26억달러 교통 투자를 약속했다. 그는 “벵갈루루는 새로운 인도의 상징”이라며 도시 계획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현지 업계는 “몇 가지 기본적 조치만 취해도 문제의 40%를 해결할 수 있지만 성장 속도가 너무 빨라 근본적 해법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 전문가는 “지금과 같은 무계획적 팽창이 이어진다면 벵갈루루의 성공 신화가 오히려 인도 경제의 약점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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