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미래가 교차하는 곳 ‘오토모빌 카운실 2025’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만난 클래식카 마니아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있다. 어느정도 연배가 있는 분들이라 그런지 몰라도 다들 '현재의 유산'을 어떻게 다음 세대에 전달해 줄지에 대한 것이다. 이미 클래식카 소비 시장은 고령화되었고, 남겨진 유산이 다음 세대에 온전하게 전달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올해 10주년을 맞은 오토모빌 카운실은 그런 부분에 있어 어느 정도의 방법을 찾은 것 같았다. 전통과 미래, 클래식과 모던, 과거와 현재 등 이들이 내세우는 키워드에는 자동차는 세대를 가리지 않는다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다.
지난 4월 11일부터 13일까지 일본 치바현 마쿠하리 메세에서 열린 오토모빌 카운실 2025는 역대 최대 규모로 개최되었다. 총 180여 대가 넘는 차가 출품되었으며, 토요타, 혼다, 마쓰다, 미쓰비시 등 완성차 업체의 헤리티지 컬력션이 함께 선보였다. 오토모빌 카운실은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도쿄오토살롱이나 도쿄모빌티리쇼에 비해 규모는 작을지 몰라도 특정 테마의 집중도가 높고 실제 판매자와 소비자가 직접 대면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다.

오토모빌 카운실은 매년 특별한 메인 테마를 선정한다. 2023년 페라리 슈퍼카 라인업 특별전, 2024년에는 마르첼로 간디니 특별전, 올해는 랠리 특별전과 20세기 자동차 디자인의 거장 조르제토 쥬지아로의 특별전으로 꾸며졌다. 토요타와 혼다, 마쓰다 역시 자신들이 가진 헤리티지 테마를 선보였는데 토요타는 역대 수프라를 한곳에 모은 수프라 특별전, 혼다는 얼마전 새롭게 출시한 프렐류드를 중심으로 중형 스포츠 쿠페 프렐류드 특별전을 준비했고, 마쓰다는 2005년 발표한 컨셉트카인 센쿠부터 현재 디자인 컨셉트인 쿠에로로 이어지는 컨셉트카 특별전을 준비했다.

The Golden Age of Rally In Japan

지난 해 11월 나고야에서 열린 랠리 재팬을 시작으로 일본 순회전시에 들어간 랠리카 컬렉션은 오토모빌 카운실 2025의 백미였다. 몬테카를로 랠리로 유명한 미니를 비롯해 피아트 X1/9, 란치아 스트라토스 HF, 피아트 131 아바쓰, 르노5 터보, 아우디 콰트로가 전시된 부스는 랠리 팬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이탈리아의 컬렉터로부터 직접 공수한 랠리카 컬렉션은 WRC 출범 이전의 그룹 2, 그룹 4 시절을 거쳐 본격적인 WRC가 시작된 시기, WRC의 황금기라 불린 그룹 B 대표 경주차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귀한 기회였다.   

란치아 스트라토스 제로
올해 오토모빌 카운실의 주인공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가장 많은 관심을 모았던 차는 1970년 토리노 모터쇼에서 공개된 콘셉트카인 란치아 스트라토스 제로. 베르토네와 란치아의 협업으로 탄생한 스트라토스 제로의 디자인은 마르첼로 간디니가 담당했는데 양산 버전인 스트라토스는(랠리 버전과 일반도로 버전 포함 492대 생산) 1973년에 공개되었다.
미드십에 올라간 엔진은 란치아 WRC 전설의 시작이라 불리는 풀비아 HF에서 사용한 1.6ℓ V4로 최대출력은 약 113마력. 사고로 망가진 란치아 풀비아 HF1600 랠리카 섀시를 활용한 스트라토스 제로는 차체 높이가 고작 846mm에 불과하며 유리섬유로 제작했다. 패스트백 형태의 보디 디자인, 접이식 스티어링 휠, 완전 개방형 앞 유리 도어, 일체형 버킷 시트 등 1970년대 당시 넣을 수 있는 모든 디자인 요소와 기술이 집대성되었다.

항공기에서 영감을 받은 쐐기형의 보디 스타일은 1970년대 자동차 디자인 흐름을 바꿔 놨으며, 마세라티 부베랑, 람보르기니 우라코, 쿤타치, 벡터, 로터스 에스프리, 마세라티 버드케이지(2005), 드 토마소 판테라 같은 한 시대를 풍미한 고성능 스포츠카와 콘셉트카 디자인에 영향을 주었다.

일본 클래식카 업계의 젊은 피, 랑데부  

랑데부의 아사오카 료타 대표를 처음 만난 건 3년 전 오토모빌 카운실에서였다. 그가 처음 전시했던 차는 포르쉐 930으로 그는 오래된 창고에서 발견된 이 차 한 대로 클래식카 공동소유 서비스를 시작해 지금은 꽤 자리를 잡았다. 보수적인 일본 클래식카 시장에서 처음에는 고전도 했지만, 지금은 누구나 인정하는 차세대 주자로 꼽힌다.
무엇보다 료타 대표는 클래식카를 통해 세대 간의 통합과 공유, 자동차를 통해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차에 점점 흥미를 잃어가는 젊은 세대들에게 클래식카의 즐거움과 거기에 관련된 다양한 문화를 소개하는데 초기 포르쉐 930 한 대로 시작한 클래식카 공동소유 사업은 19대까지 늘어났으며, 지금은 회원들이 원하는 차를 찾아 공급하고 있다. 이밖에 요코하마와 도쿄 두 곳에 클래식카를 공동으로 소유하는 회원들을 위한 전용 라운지를 운영 중이다.

행사장 어디에서도 한 번에 눈에 띄는 랑데부의 부스는 역시 젊은 감각으로 꾸며졌다. 부스 중앙에 전시한 포르쉐 930은 료타 대표가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구한 차로 3년 간의 풀 리스토어를 마치고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20세기 자동차 디자인의 거장 조르제토 쥬지아로

현대차 포니, 드로리언 DMC12, 폭스바겐 골프 Mk.1, 로터스 에스프리, BMW M1의 디자인으로 유명한 거장 조르제토 쥬지아로도 이번 오토모빌 카운실에서 빼 놓을 수 없었다. 90세에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2번의 공개 토크쇼를 통해 자동차에 대한 열정, 디자인 방향성에 대해 정성스럽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혹자는 그를 20세기를 대표하는 자동차 디자인의 거장 혹은 마에스트로라고 부르지만 토크쇼에 참석해 보니 화려한 수식어는 거들 뿐 조르제토 쥬지아로 시대를 뛰어넘는 존재라는 것 외에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에 걸친 그의 토크쇼는 시간은 짧았지만, 어린 디자이너 지망생부터 나이 지긋한 클래식카 마니아까지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 그가 걸어온 길을 경청했으며, 그의 노고에 힘찬 박수를 보냈다.   

오토모빌 카운실은 전문 트레이더와 소비자가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일본에서 가장 큰 클래식카 이벤트일 뿐 아니라 그 안에서 오고 가는 다양한 정보, 시세, 부품 거래까지 생각하면 종합 선물 세트 같은 느낌이다. 워낙 도쿄 오토살롱이나 도쿄 모빌리티쇼가 규모가 커서 상대적으로 작아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을 채우고 있는 콘텐츠의 내용이나 깊이는 다른 자동차 관련 전시회 못지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