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밥 대신 김밥·커피 선결제…탄핵집회로 이어진 5·18 대동정신
MZ세대 색깔 있는 목소리 ‘눈길’
촛불 대신 응원봉·노래는 최신곡
전 세대 어우러진 ‘문화의 장’으로
12·3 비상계엄 사태로 인해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집회가 광주·전남을 중심으로 거세지고 있다.
연일 탄핵 촉구 집회가 열리는 가운데 지역 1020세대가 거리로 나서면서 탄핵집회가 과거 ‘투쟁’ 일변도에서 개성있는 의견표출의 광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하지만 44년 전 광주에서 퍼진 희생, 나눔, 봉사 등의 대동정신은 여전했다.
◇세대를 뛰어넘는 대동정신= 광주민주항쟁의 상징인 헌혈과 주먹밥 나눔 등 대동정신이 탄핵집회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탄핵집회가 열릴 때마다 추운 날씨에 집회 참가자들을 응원하기 위해 사비를 털어 집회 현장 인근 카페와 식당 등에 선결제를 하고 “마음껏 나눠 드시라”는 글이 SNS에 올라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A씨는 지난 8일 충장로의 분식집에 김밥 50줄을 선결제했다.
A씨는 광주일보와 통화에서 “7일 국회 앞 집회에 참여했다가 감기에 걸려 다음날 시위에는 나가지 못하게 돼 이렇게라도 연대하고 싶었다”며 “서울에 살지만 민주화의 성지인 광주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 김밥이라도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 7일 한 시민은 광주시 동구 충장로의 김밥 가게에 김밥 100줄을 선결제 한 뒤, ‘X(옛 트위터)’에 “김밥집에서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무료로 김밥을 드시라”는 내용의 게시글을 올렸다. 김밥 100줄은 3시간만에 모두 동이 났다.
5·18민주광장과 가까운 충장로의 카페에도 선결제를 하겠다는 전화가 쇄도했다.
서울에 사는 정우주씨도 지난 7~8일 이틀간 충장로의 한 카페에 커피 102잔과 빵 16개를 선결제했다. 정씨는 “고향인 광주는 민주주의의 성지이고, 언제나 앞장서 목소리를 냈던 의미있는 지역”이라며 “추운 날씨 거리로 나온 시위 참가자들이 배고프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과 탄핵이 될 때까지 함께 맞서 싸우자는 각오로 커피 나눔을 했다”고 설명했다.
◇‘탄핵 촉구’ 한 마음=탄핵 촉구 집회 현장이 남녀노소 전 세대가 어우러지는 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기성세대 뿐 아니라 2030 젊은 세대, 책가방을 멘 10대 학생까지 집회에 참여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고 있다.
최근 광주시 동구 금남로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집회에 참가한 정다빈(여·23)씨는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투표권을 포기하고 나가버리는 국민의힘 의원들을 보며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며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한자리에서 모여 소리내고 싶어 시위에 나갔다. 당일 비가 왔는데도 ‘옛날에는 총알이 떨어졌는데 이깟 비 떨어지는게 대수냐’며 모두가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고 설명했다.
이어 “내가 나온 수피아여고는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소설 ‘소년이 온다’의 등장인물 ‘은숙’이 다니던 학교고, 모교인 전남대는 5·18 역사의 살아있는 현장”이라며 “선배들이 피로 지켜낸 민주주의를 위해 힘을 모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광주에서 나고 자란 김현조(31·서울 용산구)씨는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시위에 참여했다. 김씨는 “우리나라 미래가 달린 일에 젊은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목소리를 내는 것을 보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선의와 연대의 힘을 믿고, 행동하는 국민이 더욱 많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기성세대는 성숙한 정치, 완성된 민주주의를 젊은 세대에게 물려주지 못했다는 사실에 미안해 하면서도, 고마워했다.
9일 5·18민주광장 집회 현장에서 만난 오경진(여·52)씨는 시위 현장에서 젊은세대를 보며 “어른으로서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다”고 말했다.
오씨는 “비록 우리 정치는 후퇴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미래 세대의 시민 의식과 민주주의는 꾸준히 발전해 왔다고 생각한다”고 웃어보였다.
◇개성 표출 탄핵집회=최근 탄핵 촉구 집회는 기존 집회 현장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아이돌 응원봉과, K-POP 대중가요가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7~8일 이틀 사이 5·18민주광장과 서울 국회의사당 등지에서 열린 집회 현장에서는 촛불 대신 밝은 빛을 내는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 나온 젊은 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응원봉 외에도 수유등부터 촛불모양 전구, 크리스마스 전등까지 빛이 나는 물건이라면 가리지 않았다.
어린 아이와 반려견을 데리고 나온 가족단위 집회 참가자들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돗자리와 방석 등을 깔고 준비해온 음식을 나눠먹고, 시위 참여 인증샷을 찍어 SNS에 올리는 등 마치 나들이를 즐기는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집회 현장에서 나오는 음악도 달라졌다. 스피커에서는 ‘상록수’, ‘동지가’, ‘바위처럼’ 등 젊은층이 잘 모르는 민중가요 대신 로제의 ‘아파트(APT.)’, 소녀시대의 ‘다시만난세계’ 등 대중가요가 흘러나왔다. KIA타이거즈 소속 야구선수 소크라테스의 응원가 가사를 ‘탄핵’으로 넣어 바꿔 부르는 등 재치 있는 선곡도 이어졌다.
/김다인 기자 kdi@kwangju.co.kr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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