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우디 리야드 상공에 태극 문양이 그려졌습니다.
한국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가 T-50B 골든이글로 선보인 곡예비행이었죠.
사우디 리야드에서 2월 8일 부터 12일까지 개최되었던 2026 사우디 세계방산박람회장을 찾은 중동 바이어들의 시선이 일제히 하늘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 장면을 가장 주목한 건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중국 언론이었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지난 2월 12일 기사에서 자국의 방산 제품이 아닌 한국과 터키의 활약상을 집중 보도하며 "중동 시장에서 중국이 도전받고 있다"고 자평했습니다.
세계 최대 무기 수출국 중 하나인 중국이 왜 자국 언론으로부터 이런 평가를 받게 된 걸까요?
하늘을 장악한 한국, 땅에 머문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국제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이번 박람회는 중국에게 뼈아픈 대조를 선사했습니다.
한국의 블랙이글스가 중동 방산 전시회 역사상 처음으로 참가해 화려한 곡예비행을 펼치는 동안, 중국은 2024년과 달리 에어쇼조차 개최하지 않았습니다.
2년 전만 해도 J-10 전투기로 하늘을 수놓았던 중국이 말이죠.

전시장 바닥에는 J-10CE와 최신예 J-25A 전투기가 전시되어 있었지만, 관람객들의 관심은 하늘로 향했습니다.
흰 연기로 태극 문양을 그려내는 한국 전투기의 기량은 단순한 쇼를 넘어 기술력의 증명이었던 겁니다.
중국 전시업체 관계자조차 익명으로 "파키스탄이 중국과 공동 개발한 JF-17 썬더 전투기 협상을 주도하고 있다"고 밝힐 정도로, 중국의 존재감은 예전만 못했습니다.
스텔스 전투기 경쟁, 한국과 터키의 약진
중국이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한국과 터키의 기술 발전 속도 때문입니다.
한국은 KF-21 보라매를, 터키는 5세대 KAAN 전투기 모델을 선보이며 스텔스 기능을 갖춘 자국산 전투기 개발에 성공했음을 과시했습니다.
특히 KF-21은 중국과 함께 스텔스 전투기를 독자 개발한 몇 안 되는 국가의 성과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한국 전시업체 관계자는 "모든 전투기는 미국·유럽식과 중국·러시아식으로 크게 두 시스템으로 나뉘지만, 일부 겹치는 시장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곧 중국의 전통적 영역이었던 시장에서도 한국이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했다는 뜻이죠.
터키 역시 무기 수입 의존국에서 세계 11위 무기 수출국으로 변모하며 중요한 글로벌 방산 강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드론 시장만이 유일한 희망
그나마 중국이 자신감을 보인 분야는 군용 드론 시장이었습니다.
윙룽 시리즈와 레인보우 시리즈 드론은 이미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에 공급되며 중동 시장에서 강력한 입지를 구축했죠.
이번 전시회에서도 40시간 비행이 가능한 윙룽X 드론의 실물 크기 모형이 전시되며 바이어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의 티모시 히스 선임연구원은 "중국이 군용 드론 시장에서 훨씬 더 나은 기회를 가질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서방과의 경쟁이 상대적으로 덜하고, 중국산 드론은 저렴하면서도 품질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는 역으로 말하면 전투기 시장에서는 고전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정치가 기술을 이긴다
중국 전투기가 중동에서 고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기술이 아닌 정치입니다.
히스 연구원은 "중국 전투기는 서방 경쟁 기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해 매력적이지만, 전투기 구매 결정은 매우 큰 비용이 들고 상당한 정치적 의미를 내포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의 F-15 전투기 도입 가능성을 언급하자, 록히드 마틴은 즉각 실물 크기 F-15 모형을 전시장에 공개했습니다.
전통적인 미국 동맹국들은 더 저렴한 선택지가 있어도 미국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 미국산이나 서방 항공기를 구매할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가격 경쟁력만으로는 정치적 신뢰를 이길 수 없는 것이죠.
중국이 노려야 할 틈새시장
중국 언론과 전문가들은 중국이 승산 있는 시장을 냉정하게 분석했습니다.
히스 연구원은 "중국이 가장 큰 기회를 잡으려면 러시아의 고객을 빼앗거나 현재 미국이나 러시아 어느 쪽과도 동맹이 아닌 국가의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싱가포르 S. 라자라트남 국제연구소의 콜린 코 선임연구원도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이 유력한 구매 후보국이지만, 우호적인 가격이라 해도 중국산 무기를 대량으로 구매할 여력이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중동 지역이 동남아시아 일부보다 중국의 차세대 공군력에 더 매력적인 시장으로 보이지만, 정작 그 시장에서 한국과 터키에 밀리고 있는 상황인 겁니다.
중국 언론이 자국이 아닌 경쟁국의 활약상을 집중 보도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보여짐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