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 밖 ‘베팅의 유혹’…또 다시 프로야구를 흔드는 도박의 그림자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2026. 2. 28.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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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4인방 대만 오락실 출입 파문에 중징계
경기 스트레스 해소 명목의 ‘짜릿함’이 리그 신뢰 흔든다

(시사저널=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설 연휴를 앞둔 지난 2월 중순, 엠엘비파크 등 야구 커뮤니티는 분노와 허탈함으로 들끓었다.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해 대만 타이난에서 전지훈련 중인 롯데 자이언츠 선수들이 모니터가 있는 오락실에서 게임을 즐기는 CCTV 영상이 퍼졌기 때문이다. 롯데 구단은 즉각 조사에 나섰다. 사실이었다. 훈련이 없는 휴식일에 나승엽·고승민을 비롯해 김동혁·김세민이 숙소 근처 오락실을 방문해 전자 베팅 게임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롯데 구단은 곧바로 이들을 귀국 조치하고, KBO 클린베이스볼센터에 이를 신고했다. 

나승엽 등이 방문한 업소는 대만 정부의 허가를 받은 곳이었다. 불법은 아닌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경품 가액 한도(약 9만원)를 초과하는 고가의 물품(아이폰 16 등)이 지급돼 대한민국 법 및 KBO 규정 저촉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은 속인주의를 택하고 있어 대만 현지에서 합법인 행위였더라도, 한국 법 기준으로 '도박'에 해당하면 처벌을 피할 수 없다. 한국 형법 제246조는 도박을 금지하지만, 일시적 오락 정도면 예외로 둔다. 하지만 아이폰 16 등은 100만원이 넘는 고가의 물품이어서 도박으로 간주될 수 있다. 대한민국 법원은 통상 경품이나 판돈이 수십만원을 넘어가면 오락의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본다.

롯데 자이언츠 선수들이 2월12일 대만 스프링캠프 기간에 현지 게임장을 출입한 모습 ⓒ뉴시스

10년 전 삼성 주전 선수들 도박 파문으로 홍역

KBO는 상벌위원회(2월23일)를 열어 해당 업소를 3차례 방문한 김동혁에 대해서는 50경기, 한 차례 방문만 확인된 나승엽·고승민·김세민에 대해서는 30경기 출장 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KBO 규약 제151조에 따르면, 등록 선수가 도박(불법 인터넷 도박 포함)을 했을 경우 1개월 이상의 참가 활동 정지나 30경기 이상의 출장 정지 또는 300만원 이상의 제재금을 물릴 수 있다. 현재 부산경찰청에도 이들의 도박과 관련한 고발장이 접수돼 경찰이 조사에 들어간 상태다. 

아직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인데도 KBO가 선제적으로 출장 정지 징계 카드를 꺼내든 이유는 전지훈련 시작 전에 클린베이스볼센터 통신문을 통해 선수들에게 카지노 및 파친코 등 사행성 업장 이용은 품위 손상 행위에 해당할 수 있음을 안내했기 때문이다.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 사행성 오락실 출입 자제를 요청했는데도 롯데 선수들은 지키지 않은 것이다. 2차 전지훈련지로 많이 찾는 일본에서는 파친코가 합법이고, 몇 년 전까지도 감독·코치·선수들이 자유롭게 드나들었으나, 최근에는 이 또한 방문을 금지하는 추세다. 품위 유지 및 도박중독 방지 등을 위해서다.

프로야구는 한때 도박 사건으로 크게 홍역을 앓은 적이 있다. 2015년 10월에 터진 삼성 라이온즈 주축 선수들의 해외 원정 도박 사건이다. 당시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삼성 간판 투수들이 오프시즌에 마카오에서 거액의 원정 도박을 했다는 의혹이 보도됐고, 결국 삼성은 의혹이 제기된 안지만·윤성환·임창용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제외했다. 이들이 빠지면서 정규리그 1위 삼성은 두산 베어스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내줬고, 통합 5연패에도 실패했다.

이후 드러난 사실은 안지만이 마카오 원정 도박과 더불어 불법 인터넷 도박 사이트 개설자금 투입 혐의 또한 받고 있다는 점이었다. 안지만은 원정 도박 건에서는 검찰로부터 무혐의(증거 불충분) 처분을 받았으나 도박 사이트 개설 방조 혐의는 유죄로 인정돼 2018년 대법원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윤성환의 경우는 원정 도박 의혹에 대해 안지만과 마찬가지로 증거 부족으로 풀려나며 한동안 마운드에서 던졌다. 하지만 원정 도박 의혹과는 별개로 2020년 지인에게 돈을 받고 승부조작을 시도한 혐의 등으로 징역 1년의 실형을 받았다. 윤성환은 받은 돈을 불법 도박에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박중독이 승부조작으로까지 이어진 사례다. KBO가 가장 경계하는 연결고리다. 

임창용은 수천만원의 마카오 원정 도박 혐의를 인정하면서 단순 도박 혐의로 검찰로부터 벌금 10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KBO로부터는 시즌 50%(72경기) 출장 정지 징계가 내려졌지만 삼성은 임창용을 즉각 방출했다. 이후 기아(KIA) 타이거즈에 입단했으나 '도박' 꼬리표는 계속 따라다녔다. 

당시 일본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스에 속해 있던 오승환은 임창용과 마찬가지로 벌금 10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이로 인해 한신과의 재계약이 무산되며 선수 생활 최대 위기를 맞았다. 오승환은 이후 미국 메이저리그(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진출했고, 2020년 삼성으로 복귀할 때 KBO 징계(72경기 출장 정지)를 모두 소화한 뒤 1군 마운드에 섰다. 한·미·일 통산 549세이브의 대기록을 세운 오승환의 최대 오점이다. 

이들 외에도 2008년 말 채태인과 오상민은 각각 인터넷 도박과 카드 도박으로 약식기소돼 벌금형에 처해졌다. 한 베테랑 야구 선수는 정선 강원랜드 VIP룸을 수시로 드나들다가 들통나 망신을 사기도 했다. 특정 자선행사가 끝난 뒤 선수들이 쪽방에서 1만원권을 다발로 쌓아놓고 카드를 했다는 소문도 무성하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현지 카지노에서 도박을 해서 비난을 받기도 했다.

고승민, 나승엽, 김동혁 ⓒ연합뉴스·뉴스1

선수들, 해외 전훈지에서 파친코·카지노 등 쉽게 접해 

프로야구 선수들이 도박의 유혹에 잘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2015년 원정 도박 사건이 터졌을 때 한 야구 감독은 "연예인과 마찬가지로 스포츠 선수들도 경기 안팎으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데 해소 창구는 마땅치 않다. 음주·섹스를 거쳐 더 자극적인 것을 찾게 되고, 결국에는 도박에 빠지는 선수가 더러 나온다. 도박만큼 짜릿한 게 없다고 하더라"고 밝힌 바 있다. 소위 '쪼는 맛'이 도박만 한 게 없다고 한다. 

파친코·카지노 등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에서 전지훈련을 하다 보니 도박에 거부감이 없어진 것도 있다. 그러나 카지노가 합법인 라스베이거스나 마카오에서 도박을 해도 한국 검찰은 기소할 수 있다. 그게 '오락실'이라고 하더라도 '사행성'이라면 기소될 수 있다는 얘기다. 김동혁이 작년에 아이폰 16을 받고 관련 사진까지 찍은 것을 보면 롯데 선수들이 조금 안일했던 것도 같다. '도박'이 아닌 그저 단순 뽑기 같은 '오락'으로 인지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 안일함으로 인해 롯데는 큰 전력 손실을 보게 됐다. 

'승부'만 놓고 보면 스포츠와 도박은 일견 닮았다. 그러나 스포츠는 공정함을 통해 감동을 주지만 도박은 탐욕을 통해 공정함을 파괴한다. 전문가들은 도박이 또 다른 도박, 즉 자신이 속한 리그에 대한 불법 도박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윤성환의 경우가 꼭 그랬다. 도박이 결국 승부조작이라는 금단의 선을 넘게 만들었다. 1000만 관중의 환호가 비난의 함성으로 바뀌는 것은 한순간이다. 개인의 영광도, 리그의 명예도 도박판의 칩처럼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 승부는 그라운드에서만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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