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장비 “훨훨” vs. 미국 중장비 “절절”

미국의 인프라 법안 덕분에 건설기계(굴삭기 등 중장비) 업계가 호황을 누리고 있다. 덕분에 국내 건설기계 업체들의 주가도 급등세다. 하지만 세계 최대 중장비 기업인 캐터필러는 올 들어 마이너스 수익률을 보이고 있고, 북미 최대 중장비 대여 기업인 유나이티드렌탈은 연초 대비 큰 변화가 없다. 이 같은 현상은 한국 중장비 업체들이 경쟁사보다 빠르고 공격적으로 미국 시장을 공략한 결과로 풀이된다.

HD현대인프라코어 건설장비 브랜드 '디벨론' (자료: HD현대인프라코어)

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두산밥캣 주가는 올 들어 이날까지 47.11% 올랐다. HD현대인프라코어와 HD현대건설기계의 주가도 연초 대비 각각 27.63%, 8.68% 상승했다. 반면 캐터필러와 디어앤컴퍼니 주가는 각각 9.30%, 10.88% 이상 하락했고 유나이티드렌탈의 주가는 1%대 상승으로 거의 변화가 없었다.

올해 韓美 건설기계 주가 수익률

기준: 美 5월 1일, 韓 5월2일 마감종가

중장비 업계가 호황이라는 데에 이견은 없다. 올 1분기 두산밥캣의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46.6% 증가했고, 영업이익의 경우 90% 늘었다. HD현대건설기계는 매출과 영업이익이 지난해 1분기보다 각각 9.2%, 71% 증가했고, HD현대인프라코어도 매출이 12%, 영업이익이 46% 늘었다. 기업 실적에서 업황이 좋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호황은 국내 업체만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세계 최대 중장비 기업인 캐터필러는 올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7%, 47% 증가했고 유나이티드 렌탈의 매출과 순이익도 각각 26%와 22.9%씩 늘었다.

미국 비주거용 건선 지출 사상 최고치 (자료: 세인트루이스 연은)

올 1분기 중장비 업계가 좋은 실적을 거둔 가장 큰 이유는 미국 건설시장의 호황이 꼽힌다. 실제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연은)에서 발표하는 비주거용 건설 지출액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행정부의 인프라 투자 정책이 중장비 업체들의 실적을 견인했다고 분석했다.

올 1분기 두산밥캣과 HD현대건설기계의 미국 시장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55%, 84% 성장했다. 중국 매출은 급감했지만 이 외 신흥국의 광산채굴 수요와 인도 정부의 인프라 투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중동 사우디 네옴시티, 튀르키에 지진 재건, 러시아 직수출뿐만 아니라 리튬 채굴과 사상 최고가에 육박하는 금값 등으로 금속 관련 채굴 수요가 견조한 것도 중장비 기업들의 실적을 끌어올린 이유로 꼽힌다.


韓-美 중장비 주가 엇갈린 이유?

중장비 산업의 전방위적인 호황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한국 기업들의 주가가 엇갈리는 이유는 한국 업체들이 조금 더 미리, 공격적으로 미국 시장을 공략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캐터필러가 호실적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투자자들은 피크아웃에 대해 우려한다. 1분기 실적은 서프라이즈 수준이었지만 하반기 경기 침체가 발생할 경우 이번 실적 혹은 2분기 실적이 정점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CNBC에 따르면 27일(현지시간) 글로벌 투자은행(IB)인 오펜하이이머의 커스틴 오웬 전무이사는 “(실적발표 후 주가 하락은) 시장의 피크아웃 우려를 반영한다”고 평가했다.

캐터필러, 딜러 재고 증가하고 백로그 정체 (자료: 캐터필러 1분기 실적)

통상 향후 중장비 수요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로 딜러사의 재고와 백로그(일종의 수주잔고)를 본다. 중장비 업체들은 딜러사에 제품을 납품한 이후 딜러사가 최종소비자에게 판매하기 때문에 딜러사의 재고가 늘어나면 향후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고 해석한다. 올 1분기 캐터필러의 딜러사 재고는 전년 동기 대비 14억 달러 늘었다. 딜러사 재고가 쌓여가는 추세인 것이다. 반면 백로그란 향후 제품을 인도받기 위해 주문을 넣은 것으로, 일종의 수주잔고인 셈이다. 따라서 백로그가 증가해야 향후 중장비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해석한다. 그런데 캐터필러의 백로그는 전분기 대비 거의 늘지 않았다.

가격 인상으로 대부분 이익 끌어올린 캐터필러 (자료: 캐터필러 1분기 실적)

업계 관계자는 피크아웃에 대한 우려가 발생하는 또 하나의 이유로 기존 실적 개선의 주된 요인이 가격 인상 덕분이었다는 점을 꼽았다. 지난 1분기 영업이익의 구성 항목에 따르면 판매 대수 증가에 따른 이익 증가는 1억9200만달러(한화 약 2575억원) 수준인데 비해 가격 인상으로 인한 이익 증가는 18억9400만달러(한화 약 2조5400억원)에 달한다. 캐터필러의 호실적은 가격 인상이 이끌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급등하던 물가가 점차 안정화되는 상황에서 가격 인상으로 실적을 올리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번 실적이 정점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유나이티드렌탈은 제조업체로부터 중장비를 구입한 후 최종소비자에게 대여하기 때문에 이들이 향후 얼마나 중장비를 구매할 계획인지가 상당히 중요한 변수다. 지난 1분기 중장비 구매에 지불한 비용은 작년 같은 기간 7억9700만달러에 비해 4억900만달러로 줄었다. 올해 유나이티트렌탈이 계획하고 있는 구매 규모도 작년 35억5000만달러에서 22억5000만달러로 줄일 예정이다.


美 재고떨이 열중하는 동안, 韓 딜러망 확대

세계 최대의 중장비 기업이 이렇게 절절 매고 있는데 국내 중장비 기업들은 전혀 다른 분위기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중장비 업체들의 재고는 평균 대비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두산밥캣의 평균 딜러 재고는 4개월 수준인데 반해 현재 2개월도 채 안 된다. HD현대건설기계의 북미지역 수주잔량은 통상 6개월 수준인데 비해 현재 10개월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미국 업체들이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로 제품가격을 인상하고 재고 떨이에 집중하는 동안 국내사들이 북미 시장에서 공격적으로 딜러망을 확충하고 제품 믹스(제품군 배합 전략)를 개선한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중장비가 호황을 제대로 누리기 위해서는 딜러망 확충이 핵심이다. 중장비는 제조사가 딜러망에 판매한 후 최종소비자에게 전달되는 사업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두산밥캣은 작년까지 지난 2년 간 100여개의 딜러사를 늘렸다. HD현대인프라코어는 같은 기간 북미에서 8개 유럽과 러시아에서 8개의 딜러사를 추가로 확보했다.

딜러망을 확대하려면 제품의 상품성이 담보돼야 한다. 시장의 특성상 신흥시장은 도로를 비롯한 인프라, 광산 채굴 등 중후장대한 공사가 이뤄진다. 반면 선진시장은 기존 인프라에 대한 보수 공사나 추가 공사가 더욱 많이 이뤄지기 때문에 선진 시장에서는 중소형 중장비가, 신흥시장에서는 대형 중장비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따라서 미국 시장에서는 중소형 장비 수요가 상대적으로 많다. 가장 큰 문제는 중국이었다. 국내 중장비 기업들도 과거 중국 의존도가 높았던 당시 대형 중장비의 비중이 높았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중국의 부동산 시장 경기의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중국 내 중장비 판매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작년 1월부터 9월까지 대중국 건설기계 수출은 47.4% 감소했다.

HD현대건설기계는 과거 중국 중심의 대형 중장비 포트폴리오에서 벗어나 중소형 장비까지 풀라인업을 확보했다. 중장비는 다양한 제품을 묶어 패키지로 딜러사에 판매하기 때문에 딜러사 입장에서는 풀라인업을 갖고 있는 곳을 선호한다. 업계 관계자는 “풀라인업 덕분에 미국 딜러사들의 선호도가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두산밥캣은 미국 내 소형 장비 시장 1위의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갖고 있다. 미국 매출이 전체의 약 70~75%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미국 내 수요가 큰 영향을 미친다. 관계자는 “공급망 차질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고가 장비의 생산에 집중한 덕분에 미국 시장 성장률이 좋았다”고 설명했다.


삼프로TV 이주호 기자 6illionaire@3protv.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