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성애의 상징인데… 지금은 멸종위기라는 '한국 물고기'

사라지는 생명, 가시고기를 아시나요
가시고기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재연한 사진입니다. / 위키푸디

가시고기는 새끼를 위해 생을 마친다. 단 한 번의 번식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알을 지키는 동안 먹지 않고, 둥지를 떠나지도 않는다. 알이 부화하면 수컷은 죽는다. 그 몸은 새끼의 첫 먹이가 된다. 이 작은 민물고기는 ‘부성애’라는 단어를 생물의 삶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지금, 자연에서 이들의 모습을 보기 어렵다. 깨끗한 하천이 줄었고, 외래종이 밀려들었다. 서식지도, 개체 수도 함께 사라지고 있다. 가시고기는 이제 멸종위기 생물로 분류돼 보호받고 있다.

등에 가시 단 물고기, 생을 걸고 지킨 둥지

가시고기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재연한 사진입니다. / 위키푸디

가시고기(Pungitius sinensis)는 몸길이 5~6cm 남짓한 민물고기다. 등이 바늘처럼 뾰족한 가시를 갖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몸은 가늘고 납작하며, 옅은 갈색 바탕에 얼룩무늬가 있다. 물살이 느린 하천 중하류에서 살며, 1·2급수 수준의 맑은 물에서만 서식한다. ‘수질 판별기’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다.

가시고기의 번식기는 4~8월이다. 이 시기 수컷은 풀잎, 갈대, 나뭇잎으로 둥지를 만든다. 암컷은 잠시 머물러 알을 낳고 떠난다. 이후 수컷은 둥지를 지키며 산소를 공급하고 포식자를 막는다. 먹이도 찾지 않고, 둥지 주변을 맴돌며 새끼를 위해 쉼 없이 움직인다.

알은 10일 정도 지나 부화한다. 수컷은 지쳐 죽는다. 그 몸은 부화한 새끼의 첫 양식이 된다. 가시고기의 새끼 생존률은 90%를 넘는다. 단 한 번의 돌봄에 모든 것을 건다. 이처럼 헌신적인 삶은 문학에도 반영됐다.

2000년 출간된 조창인의 장편소설 '가시고기'는 이 물고기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소설 속 아버지는 백혈병에 걸린 아들을 위해 모든 걸 바친다.

가시고기 절반 이상 사라진 하천

가시고기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재연한 사진입니다. / 위키푸디

가시고기는 2005년부터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이다. 과거 전국 23곳 하천에서 발견됐지만, 지금은 절반 이하만 남아 있다. 도시화와 산업화가 주된 원인이다. 하천 개발, 폐수 방류, 농약 사용 증가로 서식 환경이 크게 훼손됐다.

이화여대 고명훈 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 확인된 서식지는 23곳이었으나 2015년 재조사에서는 12곳만 남았다. 정동진천처럼 개체 수가 많던 하천도 관광지 개발로 생물 대부분이 사라졌다. 서식지 자체가 파괴된 셈이다.

외래종 유입도 가시고기에게 큰 위협이다. 제천의림지는 한강 수계에서 가시고기가 살던 대표적 장소였다. 하지만 2015년에는 가시고기 대신 배스, 블루길 같은 외래종이 번식했다. 크고 빠른 외래종은 먹이와 서식지를 차지하며 토종 어류를 밀어낸다.

연구팀은 이 상황을 국제 기준에 따라 평가하면 ‘EN(Endangered)’ 등급에 해당한다고 분석했다. 절멸 위험이 높아진 단계다. 빠르게 개체 수를 늘리고, 서식지를 복원하지 않으면 야생에서 사라질 수 있다.

생태계의 균형을 잇는 작은 연결 고리

가시고기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재연한 사진입니다. / 위키푸디

가시고기는 하천 생태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미생물, 곤충 유충, 물벼룩 등을 먹으며 하위 생물의 개체 수를 조절하고, 수달이나 따오기 같은 포식자의 먹이가 된다. 먹고 먹히는 과정 속에서 균형을 이루는 중요한 고리다. 이들이 줄어드는 건 생태계 전반의 변화 신호이기도 하다.

멸종 가능성이 높아지자, 국내 연구기관도 복원에 나섰다. 국립수산과학원 중앙내수면연구소는 2018년부터 인공종묘생산기술을 개발해왔다. 어미 가시고기를 양식 시설에서 길러 수정란을 얻고, 치어를 부화시켜 하천에 방류하는 방식이다. 기존에 연어, 넙치 등에 적용되던 기술을 멸종위기종에도 도입한 사례다.

연구팀은 1년간 치어 부화에 성공했고, 2019년 강원도 하천에 방류했다. 수산과학원은 관상어로의 활용 가능성도 언급했지만, 먼저 개체 수를 안정적으로 늘리는 것이 우선이다. 가시고기의 생존 자체가 하천 생태계의 회복 여부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가시고기는 작다. 물속에서 조용히 살아간다. 하지만 그 존재는 결코 작지 않다. 한 생명을 위해 모든 걸 내어주는 방식으로 살아간다. 그 생명은 지금 사라지고 있다. 기억하고 지키는 일이 우리에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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