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맥 판막 자가이식 수술, 20여 년만에 성공적 시행

- 2000년대 초반 이후 중단됐던 ROSS 수술, 성공적으로 마쳐
- 기계판막, 조직판막 단점 상쇄하는 자가이식 수술법
- 김호진 교수 “ROSS 수술 안정적 시행 기반 만들 것”

환자 본인의 폐동맥 판막으로 손상된 대동맥 판막을 대체하는 ‘로스(ROSS) 수술’이 약 20여 년만에 시행돼 성공적으로 끝났다. 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김호진 교수가 최근 ROSS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며 대동맥 판막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제시했다.

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김호진 교수(오른쪽)가 ROSS수술을 하고 있다 / 출처 : 서울아산병원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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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맥 판막은 심장과 대동맥 사이의 혈액 흐름을 조절한다. 심장에서 대동맥으로 혈액이 나갈 때 열렸다가 닫힘으로써 혈액이 심장으로 역류하지 않도록 한다. 판막이 제대로 닫히지 않으면 혈액이 역류하게 되고, 이때 심장은 더 많은 힘을 들여 혈액을 내보내야 하므로 호흡 곤란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며, 심장에 부담이 과중되므로 흉통이나 심부전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

또한, 판막 손상으로 인해 대동맥으로 나가는 혈액량이 줄어들면, 전체적인 혈액순환에도 문제가 생긴다. 전신 곳곳에 산소와 영양소를 충분히 공급하기 위한 혈액량이 부족할 수 있기 때문에, 어지러움과 피로감 등을 느낄 수 있다.

대동맥 판막은 선천성 기형을 제외하면 보통 심장질환, 염증성 질환으로 인해 기능이 저하되거나 손상을 입는다. 혹은 나이가 들면서 판막이 두꺼워지거나 석회화돼 기능이 떨어질 수도 있다. 증상이 심하지 않으면 약물 치료를 통해 호전될 수 있으나, 심각할 경우 수술적 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

ROSS 수술은 무엇인가

ROSS 수술은 1967년 영국의 도널드 N. 로스라는 의사가 개발한 대동맥 판막 질환 수술법이다. 환자 본인의 폐동맥 판막 조직을 활용하는 자가이식 수술법으로, 폐동맥 판막을 떼어내 손상된 대동맥 판막을 대체해 이식한다. 비게 되는 폐동맥 판막 자리에는 인공판막이나 다른 생체판막, 혹은 타인 기증으로 확보한 ‘폐동맥 동종 판막 조직’을 이식하게 된다.

이는 폐동맥 판막보다 대동맥 판막의 기능이 더 중요하다는 점에 착안한 수술 방식이다. 실제로 대동맥 판막은 더 큰 압력을 견딜 수 있어야 하며, 생체 적합성이 뛰어나고 면역 반응이 적어야 한다. 대동맥 판막 자리에 본인의 조직을 사용하기 때문에 생체 적합성이 뛰어나며, 이후 재수술 부담을 크게 줄여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7년 미국 심장학회지인 「JACC(Journal of the American College of Cardiology)」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ROSS 수술 후 20년 장기 생존율은 95%에 달한다. 기계판막을 사용해 수술한 경우 20년 장기 생존율 68%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다.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극소수 병원과 의료진이 ROSS 수술을 시행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폐동맥 판막을 획득한 다음, 이를 보관하는 기술이 완벽하지 않아 감염 우려가 있었다. 기계판막 또는 소·돼지 등 동물 조직판막이 대안으로서 적합성을 인정받아 ROSS 수술은 중단됐었다.

기존 수술법들의 장점과 단점

기계판막을 이식하는 수술은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재수술 필요성이 거의 없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기계판막은 금속이나 플라스틱 같은 재료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혈액이 오가는 과정에서 혈전 형성을 유도할 수 있다. 또한, 생체 판막에 비해 강한 압력을 받으며 작동하기 때문에, 혈류 변화 등에 따라 혈전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때문에 기계판막을 이식할 경우 평생 항혈전제를 복용해야 한다. 약을 먹는 것 자체에 심리적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점도 문제지만, 항혈전제는 혈액 응고를 막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출혈 위험을 증가시킨다. 출혈 발생 시 상처가 잘 아물지 않아 추가 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다.

게다가 정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해 혈액 응고 상태를 모니터링해야 하고, 약물 종류에 따라 특정 음식을 피해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삶의 질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동물 조직판막의 경우, 생체 기반 조직이므로 기계판막이 갖는 혈전 등과 관련된 우려는 적다. 하지만 수명이 10~15년 정도로 짧기 때문에, 언제가 됐건 이식 후 재수술이 반드시 필요하다. 최근 흔히 시행되는 ‘대동맥 판막 스텐트 시술’ 역시 근본적으로 조직판막이기에, 일정 시간이 지난 뒤 재시술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고령의 환자에게 주로 시술하는 방법이다.

항혈전제 필요 No, 재수술 가능성 낮아

ROSS 수술은 근본적으로 이러한 단점들에 구애받지 않는다. 환자 본인의 폐동맥 판막을 사용하므로 기계판막이 갖는 한계에서 자유롭다. 항혈전제 복용이 필요 없으므로, 그에 수반되는 출혈 부작용 위험, 정기적 모니터링, 식단 조절의 번거로움 등 모든 단점이 사라진다.

자가조직을 이식하는 것이므로 면역 반응이 적고, 환자의 성장 및 변화에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기 때문에 조직판막 이식에 비해 퇴행성 변화가 상대적으로 느리다. 즉, 조직판막의 주요 단점인 짧은 수명 문제도 해결하는 방법이 된다.

단점은 오직 하나, 떼어낸 폐동맥 판막을 보관하는 기술의 부족이었지만, 이 역시 현재는 해결된 문제다. 이에 따라 ROSS 수술은 기존 방법들의 단점을 모두 상쇄하면서 스스로의 단점까지 극복한 최적의 치료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젊은 여성 환자의 경우, 임신 가능성 등을 고려해 조직판막 이식 후 10~15년 후 재수술을 하는 방법을 시행해왔다. 항혈전제를 평생 복용해야 하는 기계판막의 경우, 임신 시 문제가 될 수 있으므로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셈이다. 하지만 ROSS 수술이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하나 더 늘어났다.

심장학 분야 등 국제 학술지에는 ROSS 수술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연구결과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는 일부 메이저 병원을 중심으로 ROSS 수술을 흔히 시행하고 있다.

폐동맥 동종판막 확보가 중요

ROSS 수술이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좋은 결과를 보이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의 성공적인 적용을 위해서는 해결할 과제가 하나 남는다. 바로 ‘폐동맥 동종 판막 조직’ 확보다. 대동맥 판막을 이식하기 위해 떼어내는 폐동맥 판막 자리에 이식할 조직이 필요한 것이다.

폐동맥 판막 자리 역시 이론적으로는 인공판막이나 동물로부터 확보한 조직판막을 이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애초에 대동맥 판막 이식에 있어 고려해야 하는 항혈전제 복용이나 일정 기간 후 재수술이라는 단점이 똑같이 발생한다.

이에 따라 최선의 방법은 동종 판막 조직 이식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심장이식 수술을 받는 수혜자로부터 심장판막을 기증받고, 이를 통해 동종 판막 이식을 시행한다. 하지만 심장이식 수술 건수가 많지 않고, 면역 거부반응과 같은 적합성 문제가 있기 때문에 원활하지는 않다.

서울아산병원은 김호진 교수를 중심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사례 및 환경을 참조해 ROSS 수술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제도 및 절차가 뒷받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아산병원 김호진 교수 / 출처 : 서울아산병원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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