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GOUT People] KIA 타이거즈 박찬호

지도

야구선수라면 누구든 꿈꿔왔을 선수 커리어의 최고점, 아마 골든글러브와 팀의 통합 우승이 아닐까. 그렇기에 만약 박찬호의 삶을 빗댄 지도가 있다면 분명 2024년은 큰 전환점이 됐을 테다. 그토록 바라던 팀의 우승과 매번 비밀이라며 삼켰던 골든글러브의 꿈을 한순간에 이뤘으니 말이다. 그러나 최종 목표에 ‘골인’했다고 말하진 않을 듯하다. 우리가 좇아야 하는 것은 잠시의 골인으로 끝나는 인생이 아닌, 계속해서 ‘코스를 변경’하며 나 자신을 이어가야 하는 인생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막다른 골목에서 실망스러운 결과를 마주한다고 해서 주저앉을 필요는 없다. 그 역시 인생의 방향을 잠깐 바꾸는 것뿐이니. ‘확고한 목표가 없는 영혼은 길을 잃는다’라는 격언을 빌려, 반대로 명확한 꿈을 가진 사람의 길을 소개해 본다. 박찬호라는 지도의 종착지는 과연 어딜까.

Photographer Mino Hwang Editor Seohyeon Kim Location Irvine Great Park Baseball Complex

#굿모닝~이 아니라 15시?

지난 161호(24년 9월 호) 이후 금방 다시 만났어요! (1월 31일 인터뷰)
되게 오래전에 만난 것 같은데 직전 인터뷰가 작년 9월이라니, 생각보다 얼마 안 됐네요?

이번 1차 스프링캠프에는 특별히 선수단 전체가 비즈니스석을 타고 왔다고요.
이전에도 자비를 보태서 비즈니스석으로 다니긴 했거든요. 그래서 이번에 아낀 돈으로 후배들 밥을 사주겠다고 했는데, 아직 휴식일을 한 번밖에 못 보내서 시간이 없었어요. 근데 제가 챙기지 않아도 알아서 잘 돌아다니더라고요. 일단 (박)정우만 한 끼 사줬는데, 조만간 돌아가면서 한 번씩 밥을 사주려고 해요. 일대일로 사줘야 합니다. 다 같이 모여서 먹으면 밥값이 오히려 더 나오든요. 배보다 배꼽이 더 크면 안 되잖아요.

나성범은 비즈니스 좌석도 좁아서 소파에 앉아 온다고 전해줬잖아요. 이번에도 그런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이번에는 제가 화장실에도 안 가고 거의 자리에만 누워서 시간을 보내느라 특별한 에피소드는 기억이 안 나는데… 아! 이번엔 다들 그 소파에 앉아 있던데요? 성범이 형이 혼자 있기에 심심했나 봐요. 몇 명을 데리고 와서 우르르 앉아 있었어요.

휴식일은 어떤 식으로 보내고 있는지 궁금해요.
사실 지금도 계속 시차에 적응하는 중이에요. 운동 끝나고 숙소에 들어가면 그렇게 잠이 오더라고요. 방에서 뒹굴뒹굴하는 데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내요. (숙소를 나가보려고 한 적도 없어요?) 이제 그럴 시기는 좀 지났죠. 전 돌아다니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듯해요. 확실히 제가 나이를 먹었다고 느낀 게, 어린 선수들은 안 피곤한지 밖에 잘 놀러 다니더라고요. 첫날에 여기 도착해서 이틀을 쉬고 사흘째에 훈련을 시작했거든요? 근데 저는 첫 훈련을 시작하기 전날 17시간 동안 내리 잤어요. 얼마나 자는 줄도 모르고 그냥 정신을 잃었나 봐요. 밤 10시쯤 잤나? 근데 눈을 뜨니까 다음 날 오후 3시인 거예요. 그렇게 오래 자 본 적이 없어서 깜짝 놀랐어요. 마치 누가 마취한 듯이 그냥 쓰러진 거죠. ‘아침인가?’ 하고 일어났는데 오후 3시라니… 그때부터는 잠이 안 오니까 훈련 시작하기 전날에 아예 못 자서, 첫 훈련 사이클이 너무 힘들었어요.

가족들과 긴 시간 떨어져야 해서 무척 아쉬웠을 듯한데, 첫째 딸 새얀이는 아빠가 멀리 간다는 걸 알고 있어요?
아직 모르는 것 같은데, 오히려 그래서 다행이에요. 아빠가 집을 떠난다는 걸 이해하면 아이가 슬퍼할 수도 있잖아요. 지금 제 머리도 덥수룩하니 이 꼴(?)인 게, 오키나와 미니캠프에서 돌아와서 이틀 정도 있다가 바로 출국해서 그래요. 집에 있는 동안은 새얀이를 어린이집에도 안 보냈어요. 가족끼리 떨어져 있는 그 조금의 시간도 아깝더라고요. 계속 같이 있었죠.

이젠 새얀이가 말도 제법 하나요?
질문도 먼저 할 정도로 말문이 꽤 트였어요. 둘째가 울고 있으면 “아가, 왜 그래~?” 하면서 자주 달래준다고 아내가 알려주더라고요. ‘까꿍’도 자주 하고요. (그런 표현은 누구한테 배웠을까요?) 아무래도 제가 그런 애정 표현을 아내보다 격하게 하거든요. 오히려 아내가 엄청 살가운 성향이 아니어서, 아마 저한테 배우지 않았을까요?

야구장에서는 볼 수 없고, 새얀이 앞에서만 나오는 제2의 자아인가요?
자존심이 있습니다. 집에서만 그래야 해요. 제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세상에 우리 아내랑 딸 둘밖에 없어요. 궁금해하시면 안 됩니다.

#우승의 맛

지난 인터뷰에서 선수 생활의 가장 큰 목표를 ‘오직 우승’이라고 했는데, 이번에 이루고 나서 새 목표가 생겼나요?
또 우승이요. 이 우승의 맛이 매우 달콤하더라고요. 상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행복했어요.

겉으로 보기에는 무척 담대해 보이는데, 한국시리즈 때 상당히 긴장했대서 놀랐어요.
그래도 제가 아예 긴장을 안 하는 편은 아니고, 항상 어느 정도의 텐션을 유지하는 편이에요. 그 긴장감이 더 나은 퍼포먼스로 나올 때가 자주 있어서 내심 한국시리즈에서도 괜찮은 결과가 나오길 기대했거든요. 근데 경기가 시작하고서는 흥분되는 마음에 몸도 붕 떠 있었나 봐요. 그래서 1, 2차전에는 스스로 컨디션이 좋다고 느꼈는데도 결과로는 이어지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디펜딩 챔피언으로 오게 된 스프링캠프는 지난 캠프와 어떻게 다른가요?
분위기가 훨씬 좋아졌어요. 형들도 후배들을 있는 그대로 믿어주고, 후배들도 알아서 자기 할 일을 찾아 열심히 하거든요. 이제는 서로가 신뢰한다는 게 확실히 느껴져요.

오키나와 미니캠프에서 박정우에게 루틴을 가르쳐줬다던데, 어떤 거였어요?
가르침이라 하면… 네가 뭔데 누굴 가르치냐는 말이 나올 수도 있는데. 사실 제가 훈련을 공부하면서 배운 드릴(Drill, 반복 훈련)을 공유하고, 어떤 느낌으로 운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팁이라고 할까요? 노하우를 전할 뿐이지 코치처럼 정우를 ‘가르쳐 준다’ 하는 단계까지는 아니었어요. 사실 정우가 제가 하는 말을 모두 이해하고 따라오는 스타일이 아니기도 하고요. (웃음) 그래서 편하죠. 예전에는 훈련의 의도나 효과를 말해 주면서 완전히 납득시킨 다음에 시작하려고 했는데, 지금은 그냥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해요. 타격폼을 바꾸려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러다 보면, 오히려 스스로 배우게 되는 것도 있겠어요.
정우가 가진 약점이나 제 문제점, 또 서로 필요로 하는 훈련법이 모두 다르잖아요. 그러니 제가 더 공부하게 되고, 또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면서 메커니즘에서도 깨닫는 게 있더라고요. 정우에게 공유해 주려고 하면서 되려 제가 얻은 바가 더 컸던 거죠.

스스로 지난 시즌의 성적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해요.
사실 대체로 만족해요. 제 개인 지표들도 좋아졌잖아요. 기록 대부분이 커리어 하이였으니까요.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후회 없는 시즌이라고 보는 게 맞겠죠. (지난 인터뷰에서는 커리어 하이라는 말을 부정했잖아요.) wRC+(Weighted Runs Created, 조정 득점 창출력)처럼 다른 선수랑 비교해서 산정되는 상대적 지표는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WAR(Wins Above Replacement, 대체 선수 대비 승리기여도)도 2023년에 비해 좀 떨어졌고요. 근데 타율같이 절대적으로 계산하는 수치는 올라갔기 때문에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있어요. 리그 평균이 상향 평준화된다고 해서 저도 무조건 따라 올라간다는 보장은 없는 법이니까요. 팀의 결과가 좋았으니 개인 성적에도 만족한다는 말이 정확하겠네요.

KIA가 지난해 팀 퍼스트 정신을 발휘할 수 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아무래도 시즌 초부터 스퍼트를 올려서 그런지 모두가 우승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우승이 눈앞에 다가올수록 승리만을 위해서 달렸던 게 특히 좋았죠. 시즌 초부터 계속 이기다 보니까 ‘오늘도 되네’ 싶어서 긍정적인 시너지가 났고, 끝까지 잘 이어질 수 있었어요. 이런 훌륭한 선수들과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게, 또 승리를 위해 하나가 됐다는 게 정말 축복이었죠.

우승 후에 선수단끼리 야유회도 다녀왔잖아요. 김태군과의 야자 타임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예요?
아무래도 술을 마시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얘기가 나왔어요.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고, 그전에도 선수끼리 놀러 가면 형들이 동생들을 위해서 먼저 야자 타임을 제안해 줘서 자주 그러고 놀았거든요. 근데 (김)선빈이 형인가? “나는 야자 타임 안 해. 너랑 태군이랑 하면 되겠네”라고 먼저 말을 던지길래 ‘어떻게 알았지? 나는 태군이 형만 있으면 되는데’ 싶었어요. 그래서 태군이 형한테 “한번 해 주십니까”하고 여쭤봤더니 태군이 형이 “네가 알아서 해”라고 하셔서 급물살을 탔죠. 그래서 제가 태군이 형 성대모사를 하면서 그동안 당했던 걸 똑같이 돌려드렸는데 (황)동하가 갑자기 끼어든 거예요. (황당) (왜 하필 원하던 상대가 김태군이었어요?) 저한테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은 태군이 형밖에 없었어요.

안 그래도 황동하가 ‘아~ 저 XX들 또 시작이네’라고 했다면서요. 지난 호에 출연해서는 그러고도 분위기가 괜찮았다고 자평했는데, 욕먹은(?) 당사자의 입장도 듣고 싶어요.
그래서 “동하야, 너는 야자 타임 하는 거 아니야. 태군이 형이랑 내가 하기로 했잖아~”라고 하면서 넘어갔죠. 분위기가 나빠질 게 없으니까요. 제가 동하한테 얘기한 것도 장난이고, 서로 재밌자고 시작한 건데요. 그런 일로 뭐라 딴지 걸 사람도 없고요. 근데 동하가 참 귀여워요. 술을 마시면 애들이 특히 귀여워지더라고요.

김선빈이 양복을 맞춰주며 골든글러브를 못 받으면 돌려내라고 했다고요. 직접 그런 말을 들었어요?
그것도 야유회 간 날에 나온 얘기였어요. 자기 전에 갑자기 양복점 주소를 보내줄 테니 정장을 하나 맞추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왜요? 웬 정장?” 했더니 “너 상 받을 것 같으니까 가서 맞춰”라고 하는 거예요. 선물은 받았는데 골든글러브는 못 받으면 어떡하냐고 물어보니까 “뱉어내야지” 한마디만 하고 말더라고요. 사실 선빈이 형이랑은 서로 깊은 대화를 안 하거든요? 그래서 당시에는 이 정도로만 얘기하고, 실제로 정장을 맞춘 다음에 고맙다고 연락했죠. 수상하고 나서는 선빈이 형의 형수님께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정장 잘 입었다고, 감사하다고요. 근데 선빈이 형이 제가 상을 받을 것 같다고는 얘기했는데, 실제로 수상 이후에는 축하한다고 안 해주더라고요? (장난)

그런 모습을 보면서 되고 싶은 선배 상(像)이 있는지 궁금해요.
(최)형우 선배요. 형우 선배는 저희랑 몇 살 차이가 안 나는 것 같지 않나요? 형우 선배는 저랑 띠동갑인데,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거든요. 선수단끼리 있어도 동네 형처럼 친근해요. 스스럼없이 잘해주셔서 그런가 봐요. (야구장에서는 카리스마 있어 보여요.) 형우 형이 카리스마가 있다고요? 만약 문신이 없었다면, 전혀 그런 이미지가 아니었겠죠. 제가 가끔 반대쪽 팔에도 똑같이 하시면 안 되냐고 장난치거든요. 문신이 있는 쪽을 보면 멋있는데, 없는 방향을 보면 그저 동네 아저씨 느낌이라서요.

골든글러브 수상 직후 머릿속이 하얘졌다고 말했잖아요. 박찬호답지 않은, 유독 긴장한 모습이었어요.
그런 때가 진짜 ‘긴장’이죠. 한국시리즈 때는 흥분 상태였고요. 수상하러 무대에 올라가잖아요? 일단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 얼굴밖에 안 보이거든요. 근데 대부분 무표정으로 보고 계시잖아요. 와, 저는 그런 상황을 절대 못 버티겠어요. 괜히 몸과 머리가 굳어요. 차라리 2만 명 넘는 관중 앞에서 야구하는 게 나아요.

2년 연속으로 수비상을 받았어요. 유격수로서 수비할 때 가장 중시하는 건 뭐예요?
아직도 도전적인 수비를 선호해요. 안타나 실책이나 상대에게는 똑같은 출루니까요. 개인적으로 제 실책 개수 하나 늘어나는 것에는 크게 여의치 않고요. 그걸 감수하고 플레이해서 호수비로 연결돼 아웃 카운트가 하나 올라가면 그걸로 된 거죠. 제 에러 수가 많다거나 수비가 안정적이지 못하다고 평가할 수도 있는데, 사실 그런 불안정한 수비를 했던 시기는 꽤 지났거든요. 워낙 실책이 많았으니까 어쩔 수 없이 그런 이미지가 남아 있는 거겠죠. 그렇지만 감독님도 제가 그런 평판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게 도와주셔서요. 지금도 도전적인 수비에 대한 마음은 변함없어요.

골든글러브와 수비상을 모두 받아 봤으니, 앞으로 유격수로서 새롭게 얻고 싶은 타이틀이 생겼을까요?
음… 이제 또 뭐가 있을까요? 이제 개인적으로 받을 수 있는 타이틀에는 진심으로 욕심이 없어요. 그냥, 올해도 우승하고 싶단 생각뿐이에요. 우승이요, 그거 정말 장난 아니에요.

3년 연속 20도루 이상씩을 해내고 있지만, 그 수치는 줄어들고 있어요. (2022년 42개, 2023년 30개, 2024년 20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사실 저는 공보다 먼저 들어갈 수 있는 선수가 아니에요. (김)도영이는 포스아웃 상황에서도 살 수 있을 정도로 빠르단 말이에요. 보시면 알겠지만 정말 여유롭게 살잖아요. 반면에 저는 그 정도 달리기가 안 돼요. 포수의 송구가 자동태그로 정확히 오면 죽을 수밖에 없더라고요. 솔직히 작년에는 뛸 때마다 운이 안 따르기도 했고요. 슬라이딩을 했는데, 공이 제 다리를 따라서 들어오는 거예요. 주루 코치님도 그렇다고 인정하셨어요. 사실 도루 성공 개수가 줄어드는 건 상관없거든요? 1년에 2~30개만 하면 되는데, 성공이 줄어드는 것보다 실패 개수가 늘어나니까 자존심이 상했죠. 그래도 어쩌겠어요. 포수가 잘 던지면 주자는 죽어야죠. (웃음) 그런 데 신경을 쓰다 보니 조급해져서 투수가 와인드업하기도 전에 뛰어버리고, 견제사당하고 그랬던 거죠.

#호랑이들이 MBTI를 왜 이렇게 좋아해

MBTI가 상극인 최원준의 칭찬이 빈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고요. 왜 그런 거예요?
원준이는 워낙 말을 예쁘게 잘해요. 그래서 고맙긴 한데, 정말 내가 뛰어나서 들은 말이라는 느낌은 안 들어요. 근데 반대로 선빈이 형이 칭찬한다? 그건 ‘진짜’죠. 선빈이 형은 저한테 직접 격려를 건네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한번은 제가 없는 자리에서 후배들한테 저를 좋게 말해줬대요. 그걸 전해 듣고 그건 진짜다 싶더라고요. ‘내가 좀 컸구나’ 하고요.

그렇다면 박찬호가 하는 칭찬은 100% 진심이에요?
완전 진심이죠. 그렇지만 그냥 ‘너 진짜 최고다’라는 식의 칭찬은 하지 않아요. 아까 도루 얘기할 때도, 도영이는 공보다 빠른 선수고 포스아웃 타이밍에서도 산다고 얘기했잖아요. 그렇게 구체적으로 칭찬하죠. (더그아웃에서 김도영에게 돌았냐고 했던 것도 칭찬이에요?) 그건 극찬이죠. (엄지 척) 긍정적인 의미에서, ‘너는 진짜 미친 거다’라는 뜻으로 표현하는 거예요. 그냥 “홈런 쳤으니까 넌 최고야” 정도를 넘어선 거죠.

그래도 살면서 빈말이 필요한 때가 있지 않아요?
에이, 저도 어느 정도는 하고 살아요. 하는 것 같은데요? 아예 안 하고는 못 살죠. 그랬으면 제 주위에 아무도 없을걸요. 원준이랑 비슷한 성격을 가진 친구들은 워낙 섬세하니까 한마디 한마디를 조심하려고 해요. 사실 MBTI가 생기기 전엔 서로 이해를 못 했어요. 예를 들어서 제가 원준이한테 “이 타석에서 왜 그렇게 쳤어?”라는 식으로 직설적인 질문을 하잖아요? 저는 진짜 이유가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원준이는 상처받았다고 할 정도거든요.

지난 159호(24년 7월 호)에 출연한 최원준도, MBTI 덕분에 박찬호를 이해했다고 하더라고요.
MBTI가 저희를 이어줬어요. 한때는 성격이 너무 달라서 어색하던 시기도 있었거든요. 나이 차이가 크게 나면 누구 한 명이 맞추는 게 일반적이지만, 저희는 두 살 차이라 그것도 아니니까요. 사실 아직도 원준이를 대하는 게 제일 어려워요. 이젠 “나 장난이야, 상처받지 마”라고 말하고 시작해요. 그렇게 하고 나서도 혹시 삐지진 않았을까 눈치를 볼 때도 있지만요. 그래서 말로 대화하기보다는 주로 몸의 대화를 나눕니다. 그냥 서로 툭툭 치면서요. 제가 ‘독고다이’ 스타일이긴 해도, 주변인 반응에 꽤 신경 쓰고 있어요. 굳이 앙금을 쌓고 살 필요는 없잖아요.

특유의 성격으로 주변의 오해를 살 때가 있다고 했잖아요.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남들이 예상치 못한 반응을 해서 상처받은 적도 있어요?
아뇨. 그들이 그렇게 느꼈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해요. 저도 타인을 오해할 때가 있잖아요. 저는 단순히 ‘아’라고 얘기했을 뿐인데, 그 속에서 동그라미와 작대기를 꺼내 보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사실 아내가 ‘F(감정형)’이라서 원준이랑 비슷해요. 그래서 부부 넷이서 밥을 먹을 때면 원준이랑 제 아내가 그렇게 죽이 잘 맞아요. 반대로 원준이 아내는 ‘T(사고형)’라서 저랑 그렇게 말이 잘 통하고요. 그래도 반대로 만나야 더 재밌긴 하죠?

이제 중고참이 되기도 했고, 차기 주장에 대한 욕심도 있는지 궁금해요.
시키면 거절은 안 할 듯해요. 근데 무조건 한 번은 해보고 싶다는 마음까진 아니에요. 믿고 맡겨주신다면 그 신뢰에는 보답하려 할 테지만요. (만약 선수단끼리 박찬호, 최원준을 두고 주장 선거를 한다면 누가 당선될까요?) ‘만약’이요? ‘N(직관형)’이시죠? ‘누가 좋은 선배인가’를 떠나서 캐릭터만을 고려한다면 제가 될 것 같아요. 아무래도 좀 더 외향적인 사람이 낫지 않을까요? 제가 딱 하나 어필하고 싶은 건, 팀을 위한 희생정신만큼은 자신 있단 거예요. 그걸 다른 선수들도 알아주…겠죠? 그렇겠죠? 어느 정도는?

새 시즌, 어떤 ‘박찬호다운 야구’를 보여주고 싶나요?
늘 하던 대로, 승리에 보탬이 되게끔 플레이하는 선수가 돼야죠. 사실 이제는 개인 기록도 가져봤고, 우승도 해봤잖아요. 어쨌든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는데, 그중에서 우승이 모두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거라 가장 좋더라고요. 앞으로도 목표는 팀의 우승밖에 없어요.

FA 시즌을 앞두고 있는데, 이제 박찬호에게 KIA 타이거즈란 어떤 의미예요?
저도 여기가 아닌 곳은 상상해 본 적이 없거든요. 혹시나 이적하게 된다면 처음부터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겁부터 나요. 만나는 사람마다 MBTI도 처음부터 다시 물어봐야 하고요. (웃음) 성격을 알아가야 하는 시간이 정말 오래 걸리잖아요. 사실 저는 뭘 바꾸는 걸 진짜 싫어하거든요. 그냥 이적하는 일이 없었으면 해요. 그런 상상도 잘 안 하고요.

마지막으로 큰 응원을 보내주는 KIA 팬들에게 한마디 하고 인터뷰 마칠게요.
작년에 우승하는 데 팬분들이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열정적인 함성을 들으면서 선수단도 큰 힘이 났고, 그 힘을 받아서 통합 우승이라는 결과로 이어졌어요. 올해도 팬 여러분과 선수단이 함께 2연패라는 목표를 가지고 나아갔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5년 168호 (4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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