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한복판, 디즈니가 점찍었던 자리
2000년대 초, 월트 디즈니사는 동아시아 신규 거점 후보지 중 하나로 서울을 진지하게 검토했다. 후보지는 인천 영종·청라 등 여러 곳이 거론됐지만, 업계에서 특히 상징적으로 회자되는 곳이 과천 서울대공원 일대, 그중에서도 서울랜드 호수 한가운데 작은 섬이다. 호수 중앙 섬에 디즈니 성을 세우고 주변을 테마파크로 둘러싸면, 로고 속 성을 실제 공간으로 재현할 수 있는 드문 입지라는 평가가 나왔다. 옆으로는 지하철 4호선이 지나고, 인근 하루 유동 인구만 수십만 명에 달해 연간 2천만 명 방문객도 꿈만은 아니라는 분석이 뒤따랐다.

장기임대에서 ‘매년 재계약’으로 바뀐 제안
문제는 협상 구조였다. 초기 논의에서 디즈니 측은 서울시 소유 부지를 장기 임대해 테마파크를 조성하는 방식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일정 기간 안정적으로 땅을 쓰는 대신, 시설 투자와 운영은 디즈니가 책임지는 전형적인 모델이다. 그런데 협상이 진행되던 중, 디즈니가 임대 조건을 “장기 확정”이 아닌 “매년 재계약”에 가까운 형태로 바꾸려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땅값이 오를수록 장기적으로는 한국 측이 더 큰 기회를 잃을 수 있고, 토지 사용권을 놓고 도시 계획의 자율성이 제약될 수 있다는 우려가 서울시 내부에서 제기됐다.

서울시가 끝까지 물러서지 않은 이유
서울시는 이미 서울랜드 운영사(한덕개발)와도 10년 유상사용 계약을 둘러싸고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기부채납을 조건으로 20년 무상사용 후 10년 유상사용을 보장받았다고 주장하는 운영사와, 장기 계약을 재검토하려는 서울시의 이해가 부딪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디즈니가 제안 조건을 바꾸자, 서울시는 “한 번 내준 장기 사용권이 향후 도시 전략과 수익 구조를 크게 제약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강경하게 나왔다. 결국 “원안대로 장기 안정 임대냐, 아니면 재계약 조건 수정이냐”를 놓고 평행선을 달리다 디즈니가 발길을 돌리게 됐다.

상하이로 떠난 디즈니, 남은 건 땅값과 원칙
디즈니는 이후 중국 상하이로 방향을 틀어 2016년 상하이 디즈니랜드를 개장했다. 서울에 들어섰다면 가질 수 있었던 ‘수도권 직격’ 입지는 사라졌지만, 대신 중국 내수라는 거대한 시장을 택한 셈이다. 반대로 서울대공원·서울랜드 일대 부지는 이후 개발 압력이 높아지면서 가치가 수십 배로 뛰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0년대 중반 기준 수십억 원대로 거론되던 호수 한가운데 섬과 주변부 가치는, 지금은 단순 토지가격만으로도 당시 디즈니와 논의된 투자액을 능가한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그때 땅을 팔았다면, 지금 우리는 디즈니가 만든 성이 있는 대신, 도시계획의 주도권과 재정적 이득을 놓쳤을 것”이라는 평가가 여기서 나온다.

놓친 호황인가, 지킨 자산인가
테마파크 업계 일각에서는 과천 부지를 디즈니가 놓친 ‘아쉬운 기회’로 이야기한다. 2천만 명이 넘는 수도권 인구, 안정적인 교통망, 높은 소비력까지 감안하면 서울 근교 디즈니랜드는 사업성 면에서 손꼽히는 후보지였기 때문이다. 반대로 도시계획·재정 측면에서 보면 서울시 선택은 “당장의 프랜차이즈 효과보다 토지·공공성·장기 전략을 우선한 결정”으로 읽힌다. 외국계 테마파크의 강력한 브랜드 파워에 기대지 않고, 이미 존재하는 에버랜드·롯데월드·서울랜드 등과의 균형, 도심·환경·교통 부담까지 고려한 종합 판단이었다는 것이다.

서울 한복판의 땅을 보는 기준을 바꾸자
결과적으로 서울 한복판, 지하철·고속도로·공원·주거지와 맞닿은 이 땅은 “누가 가져가느냐”보다 “어떤 기준으로 활용하느냐”가 더 중요한 공간이 됐다. 상징성 높은 글로벌 브랜드 유치만이 해답이 아니라, 도시 전체의 균형·환경·재정·자율성을 함께 보는 시야가 필요하다.
단기 유혹보다 장기 도시 전략을 우선하는 원칙으로, 서울의 땅을 서울 시민 모두의 자산으로 더 가치 있게 키워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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