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로로의 노래가 가진 힘 [콘텐츠의 순간들]
벌써 몇 달이 지났는데도, 음원 차트 상위권에 있는 한로로의 이름이 여전히 낯설 때가 있다. 흔히 말하는 ‘나만 알고 싶은 가수’라는 주장을 하고 싶은 건 전혀 아니고, 언젠가는 통하리라고 생각했지만 이런 식으로 통한다는 게 신기해서라는 것이 적절한 표현일 테다. 한로로의 노래가 ‘벽돌 차트’라고 불리는 국내 음원 차트에 처음 이름을 올린 건 지난해 가을 즈음이었다. 당시 그의 인기를 견인했다고 알려진 엠넷의 음악 프로그램 〈라이브 와이어〉에 출연해 부른 ‘사랑하게 될 거야’ 영상은 조회수 500만 회를 훌쩍 넘겼다.
노래는 노래대로, 예능은 예능대로 반응이 좋았다. 해당 방송에서 인터넷에 도는 ‘댄싱머신’ 수식어를 해명하겠다며 도전한 ‘라이크 제니(like JENNIE)’ 댄스 챌린지는 쇼츠와 릴스로 재가공되어 멀리멀리 퍼져 나갔다. ‘아기 록스타’라는 단맛과 짠맛이 공존하는 별명에 딱 맞는 쌍끌이 흥행이었다. 2025년 10월 음원 차트 100위권에 등장한 ‘사랑하게 될 거야’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조금씩 순위를 상승시켰다. 마침 지난해 발매된 한로로의 새 앨범 〈자몽살구클럽〉 수록곡 ‘0+0’도 동반 상승을 시작했다.
재미있는 건 좋은 반응을 얻은 두 곡 모두 공교롭게도 전부 타이틀곡이 아닌 수록곡이라는 사실이다. 타이틀곡 ‘시간을 달리네’를 제치고 순위에 오른 ‘0+0’처럼, ‘사랑하게 될 거야’도 한로로가 2023년 발표한 첫 EP 〈이상비행〉의 마지막 트랙이었다. 타이틀곡은 ‘금붕어’와 ‘화해’였다. 꼭 노린 것만 성공시키는 게 아닌 재주는 연말 시상식에서도 빛났다. ‘멜론뮤직어워드’에서 ‘트랙제로 초이스’로 선정되며 시상식의 문을 연 것은 물론, ‘교보문고 출판어워즈’에서는 앨범 〈자몽살구클럽〉과 함께 출간한 소설 〈자몽살구클럽〉으로 ‘올해의 콘텐츠’상을 받기도 했다. ‘한로로 전성시대’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기세였다.

워낙 갑작스럽게 인기가 높아진 탓에 깜짝 인기 가수로 그를 오해하는 이들도 많지만, 사실 한로로는 데뷔곡부터 주목받은 싱어송라이터다. 2022년 3월 발표한 ‘입춘’은 지금까지도 한로로의 대표곡이자 그의 음악이 가진 매력의 정수를 엿볼 수 있는 노래다. 방탄소년단의 RM이 자신의 SNS를 통해 ‘샤라웃(Shout-out)’하며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노래는, 언젠가부터 인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봄이 돌아오면 한 번쯤 꼭 꺼내 듣게 되는 필수 코스가 되었다. 이제 막 스물두 살이 된 젊음이 한 음 한 음 간절함을 담아 짚는 노랫말과 멜로디에는 매해 봄마다 잊지 않고 피어나는 새싹 같은 여린 강단이 있었다.
‘입춘’ 성공 이후 한로로의 활동을 찬찬히 되짚어보면 ‘꾸준했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린다. 2022년 데뷔부터 지금까지 음악 발매만 기준으로 해도 6개월 이상 공백기를 가진 건 앨범 〈자몽살구클럽〉과 선공개 곡 ‘도망’을 발매하기 전 가진 9개월여, 단 한 번이다. 물론 그 여백 또한 무수히 많은 활동으로 채워졌다. 그는 국내에서 열린 거의 모든 페스티벌 무대에 섰고, 그 사이 단독공연 장소는 최대 400명이 수용 인원인 ‘KT&G 상상마당 홍대 라이브홀’에서 3500석 규모의 ‘고려대학교 화정체육관’으로 바뀌었다.
희망과 사랑을 들고 당당하게 소리치다
라이브 외의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정규 3집 수록곡 ‘물수제비’ 프로듀싱에 참여하거나 TV와 라디오를 넘나드는 방송 출연도 서슴지 않았다. 이십 대 한로로의 일상을 그대로 담은 풋풋한 브이로그 ‘ROROLOG’나 한로로를 호스트로 앉힌 토크쇼 ‘당밤나밤’ 등의 콘텐츠도 꾸준히 제작했다. 음악을 시각적으로 푸는 시도도 흥미로웠다. 그의 음악이 품고 있는 푸르고 시린, 달콤씁쓸한 감성은 뮤직비디오와 앨범 대표 이미지, 단독공연의 무대 연출이나 의상까지 맥락 있게 이어졌다. 한로로의 음악이 좋아지면 가수 한로로를, 가수 한로로에게 관심이 생기면 한로로의 음악을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되는 직속 통로였다. 한마디로 그는 한국에서 비(非)케이팝 음악가가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시도했고, 그것으로 성공했다.
그 중심엔 당연하게도 음악이 있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노래’였다. ‘입춘’을 처음 들었던 4년 전부터 한로로에 대한 흔들리지 않은 믿음이 하나 있다. 그건 그가 자신의 노래를 들려주고 싶은, 그러니까 그 노래가 꼭 필요한 사람을 정확히 조준한 음악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흔한 말로 닳아 없어질 때까지 호명되는 시간이 만든 길 위에서, 한로로는 계속 걷는다. 한 손에는 희망, 다른 한 손에는 사랑을 들고 나의 동료, 나의 청자를 찾는다. 누군가는 비웃더라도 바로 지금, 실제 그 시간을 뜨겁게 건너고 있는 사람으로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소리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용서하고/ 사랑하게 될 거야(사랑하게 될 거야)’ ‘난 널 버리지 않아/ 너도 같은 생각이지?(0+0)’···. ‘사람은 어차피 혼자’라며 고립을 자청하는 얼음 심장도 조금쯤 녹아 손을 내밀 법한 꿋꿋한 온기다. 다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인기 비결로 ‘음악’을 꼽은 대답엔 그런 자신의 음악에 대한 확신이 밑바탕에 놓여 있을 것이다.
확실히 느끼고, 확실히 부르며, 확실히 전한다. 갑작스러워 보이지만 결코 갑작스럽지 않은 지금의 결과는 한로로가 차분히 쌓아온 노래와 메시지의 힘이 만들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다시 한번, 노래의 힘을 믿는다. 지난 수년 동안 ‘아름다운 청춘의 한 장/ 함께 써 내려가자’며 달려 나간 데이식스, ‘소외됐던 사람들 모두 함께/ 노래를 합시다’라며 손을 내민 실리카겔의 노래가 얼마나 많은 차가운 심장을 울리고 녹였나. 나아가 이런 노래들이 만든, 조금 더 다정하고 말랑해진 사람과 그들이 만든 세상의 힘을 믿는다.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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