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사형을"...만삭 아내 살해 의사, 출소 뒤에도 '의사' [그해 오늘]
[이데일리 박지혜 기자] “자신의 아이를 임신해 출산이 한 달 남짓 남은 아내의 목을 졸라 태아까지 사망에 이르게 해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
13년 전 오늘, 2011년 9월 15일 서울서부지법 형사12부(한병의 부장판사)는 만삭의 아내를 목 졸라 살해한 혐의(살인)로 구속기소된 의사 백모(당시 31) 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하며 이같이 밝혔다.
재판부는 “사건 직후 현장을 떠나 적극적으로 알리바이를 만들려 했고 피해자와 태아에 대한 애도를 엿보기는 힘든 데다 오로지 자신의 방어에만 몰두한 것으로 보인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유명 대학병원 의사인 백 씨는 112신고로 출동한 경찰에게 “아내가 혼자 욕조에서 넘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씨의 목에는 상처가 있었고 몸 곳곳에선 멍 자국도 발견됐다.
검찰은 백 씨가 아내 박 씨와 다투다가 박 씨의 목을 졸라 숨지게 했다며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이에 백 씨 측은 “검찰이 제시한 증거는 신빙성이 없거나 사인 등을 단정짓기에는 부족하다”며 “재판부가 유죄라고 판단한다면 사형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1심과 2심은 백 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그런데 대법원은 “사망 원인 등을 치밀하게 다시 검증할 필요가 있다”며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 과정에서 백 씨 측은 캐나다의 유명 법의학자를 증인으로 불러 치열한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2012년 12월 열린 파기환송심은 백 씨에게 다시 징역 20년을 선고했고, 2013년 4월 대법원에서 재상고가 기각되면서 2년여 법정 다툼 끝에 형이 최종 확정됐다.
대법원 재판부는 “발견 당시 자세 등을 볼 때 아내 박 씨가 실신 등으로 인한 이상자세로 질식한 것이 아니라 목 눌림에 의한 질식사한 것으로 인정한 원심의 판단은 사실이나 법리를 오해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이어 “백 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고, 부인과의 다툼으로 인해 생긴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발견된 점, 사건 당일과 그 이후 의심스러운 태도를 보인 점 등을 고려할 때 백 씨가 아내를 목 졸라 살해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백 씨 손톱에는 아내의 피부 조직이 남았고 팔에는 긁힌 상처가 있었다.
특히 재판부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자격 1차 시험을 마치고 새벽까지 게임을 했고 대부분 다음날 휴식을 취하는 것과 달리 3시간도 자지 않은 상태에서 오히려 평소보다 일찍 도서관을 갔던 점을 이상하게 여겼다.
평소 안부 전화를 하지 않던 장모에게 먼저 연락해 박 씨가 오후 4시까지 통화가 안 될 것이라고 하고 이후에 계속 휴대전화를 받지 않은 점, 출근하지 않은 딸을 찾는 장모의 연락을 받고도 다급해하지 않았던 점, 엘리베이터에서 팔에 난 상처를 확인한 점, 아내의 빈소에서 판타지 소설을 봤던 점 등도 납득할 수 없다고 밝혔다.
징역 20년 형을 받고 복역 중이지만 백 씨의 의사 면허는 그대로 살아 있기 때문이다.
형법 제72조에 따르면 유기형은 형기의 3분의 1이 지나면 모범적 수감 생활 등을 이유로 가석방될 수 있다. 단, 잔여 형기가 10년을 초과하면 안 되기 때문에 백 씨는 형 집행일로부터 이르면 10년 뒤 출소해 다시 의사로 활동할 수 있다.
당시 의료법상 의료 관련 법을 위반한 경우에만 면허 취소가 가능했다. 살인이나 성폭력 등 강력 범죄를 저질러도 의사 면허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또 면허가 취소됐어도 취소 사유가 없어지거나 개전의 정, 다시 말해 잘못을 뉘우치는 마음이 뚜렷하다고 인정되면 면허를 재발급했다. 금고 이상 형을 선고받고 집행 중인 의료인에겐 취소된 날로부터 최대 3년 이내로 재교부 제한을 뒀다.
정부는 지난해 의료법을 개정해 의료인 결격·면허취소 사유를 기존 ‘의료 관계 법령 위반 범죄 행위’에서 ‘모든 법령 위반으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는 경우’로 확대하고 같은 해 11월부터 시행했다.
다만 의료 행위의 특수성을 고려해 의료 행위 중 업무상과실치사상죄를 범한 경우는 면허 취소 사유에서 제외하고 있다.
이와 함께 강력 범죄로 면허가 취소된 의료인은 40시간 이상 의료 윤리 등의 교육을 받으면 면허를 재교부 받을 수 있게 했다.
박지혜 (nonam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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