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주 돈 54억 꿀꺽한 그놈, 수사 중에 또…15억 사기 딱 걸렸다[베테랑]

김지은 기자 2024. 10. 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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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황 경기 평택경찰서 수사2과 수사11팀 경위
[편집자주]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2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이정황 경기 평택경찰서 수사2과 경위. /사진=독자제공

"인테리어 비용 지원해드리겠습니다."

최근 3년간 경기도 일대 신축 상가 건물에는 인테리어 비용을 지원한다는 안내 문구가 등장했다. 건축주들이 불경기로 상가 임차인을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이같은 문구가 나타났다.

40대 남성 A씨도 2022년 1월 해당 문구를 보고 경기 평택의 한 건축주를 찾았다. 그는 헬스장과 골프연습장을 차리고 싶다고 했다. 건축주는 약속대로 A씨에게 인테리어 지원금 8억원을 선지급하고 계약을 맺었다.

A씨는 시간이 흘러도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용도 변경 허가를 못 받았다" "누수가 발견됐다" 등 온갖 핑계를 대며 둘러댔다. 임대료도 제때 내지 않자 건축주는 지난해 12월 A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당시 사건을 맡았던 경기 평택경찰서 이정황 경위는 9개월 동안 수사하면서 새로운 사실들을 찾아냈다. A씨 일당은 평택 외에 시흥, 화성, 천안 등 총 4곳에서 같은 수법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A씨가 뜯어낸 인테리어 지원금은 29억원, 건축주에게 미납한 월세는 21억원에 달했다.

A씨는 회원들 돈을 가로채기도 했다. 헬스장과 골프연습장을 개업하고 연회비를 받아낸 뒤 1년도 안돼서 문을 닫았다. 피해를 본 회원은 360명, 피해금은 4억원이었다.

수면 위로 드러난 새로운 사실들… 어떻게 발견했나

A씨가 운영했던 사업장이 돌연 폐업한 모습. /사진=독자제공

이 경위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두 가지였다. 전체 피해 규모를 파악하고 사기 혐의를 입증하는 것. 그는 다른 경찰서에도 A씨와 관련된 고소장이 접수됐는지 파악했다. 직감대로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사건을 수사 중이었다. 이 경위는 평택서를 중심으로 빠르게 사건을 병합했다.

이 경위는 온라인을 통해 일부 회원들이 A씨에게 피해를 본 사실도 확인했다. 직접 피해자 카카오톡 채팅방에 들어가 상황을 공유해달라고 요청했다. 덕분에 많은 회원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렸고 이를 바탕으로 전체적인 피해 규모도 파악할 수 있었다.

자금 추적도 중요했다. 인테리어 지원금이 어떻게 이용됐는지 파악해야 고의성도 증명할 수 있었다. 입출금 거래 내역을 살펴보니 A씨는 A씨가 관리하는 또 다른 계좌로 연이어 이체했다. 이 경위는 "보통 돈을 받으면 제 3자에게 흘러가는 게 정상인데 자신에게 돈을 이체시키는 게 이상했다"고 말했다.

A씨가 운영했던 사업장이 돌연 폐업한 모습. /사진=독자제공


이 경위는 3개월 넘게 퍼즐을 맞추듯 흩어진 계좌 내역을 순서대로 맞춰나갔다. 휴대폰 포렌식 과정에서 수집한 20만개 파일도 일일이 살폈다. 1시간 넘게 녹취된 수십 개 녹음 파일도 듣고 또 들었다.

경찰은 지난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 위반(사기) 혐의로 A씨를 구속 송치하고 공범 3명을 불구속 송치했다. 또 공인중개사법 위반 등의 혐의로 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수개월간 잠복 수사를 비롯해 주거지 압수수색, 휴대폰 포렌식 작업을 진행한 결과였다. 사건 보고서 페이지만 1만장이 넘었다.

A씨는 당초 사업을 진행할 능력과 자금이 부족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인테리어 지원금 중 일부는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타 사업장 운영비로 돌려막았다. 인테리어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아 영업도 안되고 매출도 떨어졌다. 악순환이 반복돼 개업 자체를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경기 평택경찰서 수사2과 수사11팀 모습. /사진=독자제공


A씨는 수사가 진행되는 도중에도 천안 소재 상가 건축주와 임차 계약을 맺고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해당 사실을 눈치챈 수사팀이 곧바로 피해 사실을 알렸고 약 15억원 추가 피해를 막았다.

이 경위는 "건축주들이 특히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다"며 "인테리어 지원금을 주고도 영업을 제대로 운영하지 않으니 손해가 큰 상황이었다. 팀원들과 9개월 동안 고생한 만큼 도움을 줄 수 있어 뿌듯했다"고 말했다.

2년 차 경찰인 이 경위는 "매일 같이 야근하고 수천장의 보고서를 읽다 보면 지치는 순간도 있다"며 "경찰은 피해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힘을 얻는다.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경찰이 되겠다"고 했다.

김지은 기자 running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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