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KS로 간다!”…20세기 마지막 LG-삼성의 가을야구

[이재국의 엘팬알백] <57>1998년 PO 승리…구단 역사상 4번째 KS 진출

“상승세의 OB를 꺾은 무드를 이어가겠다. 삼성에 대해 충분히 연구분석을 마쳤다.”
-LG 트윈스 천보성 감독
“모든 준비는 끝났다. 트레이드마크인 공격력으로 승부를 내겠다.”
-삼성 라이온즈 서정환 감독

1998년 가을야구 첫 관문에서 OB 베어스를 격파한 LG는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덕아웃 시리즈’로 불린 3전2선승제의 준플레이오프(준PO)에서 가뿐하게 2연승을 거두고 PO 무대에 올랐다.

페넌트레이스 2위 삼성은 1년 전 플레이오프에서 LG에 당한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벼르고 있었다.

LG는 준PO를 거쳤다고는 해도 체력 면에서 밀릴 이유는 없었다. 준PO를 2차전 만에 끝낸 덕분이었다.

[엘팬알백-LG 트윈스 팬이라면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 <57편>은 전자업계 라이벌 LG와 삼성이 만난 1998년 플레이오프 이야기다. 한국시리즈(KS) 티켓을 잡기 위한 여정. LG와 삼성의 20세기 마지막 포스트시즌 맞대결이기도 했다.

1998년 플레이오프 2차전 1회말 LG 유격수 류지현(왼쪽)이 삼성 이승엽의 슬라이딩을 피해 날아오르며 더블플레이를 성공시키고 있다. ⓒ스포츠서울

◆그룹 라이벌 대결 구도

LG와 삼성이 가을야구에서 격돌하는 것은 이번이 역대 4번째였다. 종전 3차례 대결에선 LG가 2차례 이겼다. 1990년 한국시리즈에서는 LG가 4승무패로 구단 최초 우승을 차지했고, 1993년 PO에서는 삼성이 3승2패로 KS에 진출했다. 그리고 1997년 PO에서 LG가 3승2패로 이기면서 KS행 기차에 탑승했다.

1990년대에는 LG와 삼성의 라이벌 의식이 요즘보다 더 강했다. 그룹의 자존심을 건 대리전쟁이었다. 단적인 예로 삼성은 1990년 KS에서 LG에 무기력하게 0승4패로 패퇴하자 준우승을 이끈 정동진 감독을 곧바로 해고했을 정도였다.

1998년 플레이오프에서 맞붙게 된 LG 천보성 감독(오른쪽)과 삼성 서정환 감독. ⓒ스포츠서울

양 팀은 이런 그룹 라이벌 관계 외에도 많은 이야깃거리를 낳았다.

LG 천보성 감독(1953년생)과 삼성 서정환 감독(1955년생)은 경북고 2년 선후배 사이로 특급 내야수 출신. 1982년 삼성 원년 멤버로 함께한 인연도 있었다.

천 감독은 프로 감독 데뷔 2년차, 서정환 감독은 프로 감독 데뷔 시즌. 둘은 적장이 되어 상대를 넘어뜨려야 살아남을 수 있는 PO 외나무다리에서 맞붙게 됐다.

호랑이에서 사자가 된 '라이거'. 1998년 해태에서 삼성으로 이적한 이순철(왼쪽))과 조계현이 덕아웃 벤치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스포츠서울

양 팀에 수혈된 해태 출신들의 대결도 흥미로운 대목이었다.

삼성은 1998년을 앞두고 해태 왕조를 건설했던 외야수 이순철과 투수 조계현, 포수 정회열을 영입했다. 당시만 해도 단 한 번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한 삼성은 이들을 통해 우승 DNA를 이식하겠다는 의지였다.

1997년 해태의 KS 엔트리에서 제외된 이순철은 김응용 감독과 마찰을 빚다 구단에 방출을 요구하면서 결국 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어 삼성으로 이적했다.

그렇잖아도 해태는 당시 IMF(국제통화기금) 사태의 직격탄을 맞고 재정이 극도로 악화돼 선수단을 대거 정리하려던 시점이었다.

정회열도 이순철과 함께 해태의 12명 방출자 명단에 올라 삼성이 영입을 하게 된 케이스였다.

조계현은 당시 역대 현금 트레이드 최고액인 4억 원 기록을 세우며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해태에서 LG로 이적한 투수 최향남(왼쪽)과 송유석. ⓒ스포츠서울

LG에서는 투수 최향남과 송유석이 해태 출신이었다.

1990년 목포영흥고를 졸업한 뒤 해태에 입단한 최향남은 해태 시절엔 1승밖에 거두지 못해 존재감이 미미했다. 하지만 1997년 LG 이적 후 야구인생의 꽃을 피웠다. 1997년 8승을 올린 뒤 1998년엔 12승을 수확하면서 그해 다승왕(18승) 김용수와 함께 LG의 강력한 원투펀치로 자리 잡았다.

송유석은 투창 선수 출신으로 광주진흥고 진학 후 뒤늦게 야구선수가 됐다. 1985년 연습생으로 해태에 입단한 뒤 선발과 불펜 가리지 않고 ‘마당쇠’로 활약하면서 ‘해태왕조’ 구축에 헌신했다. 1996년 11월 6일 최향남, 동봉철과 함께 3대2 트레이드에 묶여 LG 유니폼을 입은 그는 1998년 55경기에 등판해 3승3패3세이브(평균자책점 2.97)를 올리면서 LG에서도 마당쇠 노릇을 했다.

삼성의 이승엽-양준혁 좌타 쌍포와 LG의 김재현-서용빈-심재학-이병규 좌타 라인의 대결, 한국야구 유격수 계보를 잇는 삼성 류중일과 LG 류지현의 대결 등도 관심사였다.

1998년 LG 선수들. 오른쪽부터 투수 전승남, 타자 이병규, 최동수, 서용빈 등의 얼굴이 보인다. ⓒ스포츠서울
삼성은 이승엽(왼쪽)과 양준혁으로 대표되는 가공할 장타력이 트레이드마크였다. ⓒ스포츠서울

◆사상 최초 PS 우천 노게임이 불러온 변수

3전2선승제의 플레이오프. 1차전은 당초 10월 14일(수요일) 야간경기로 예정돼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삼성 서정환 감독이 PO를 앞두고 “선발투수 예고제는 우리만 불리하다”며 1차전 선발투수를 밝히지 않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선발투수 예고제는 페넌트레이스 합의사항일 뿐 포스트시즌까지 적용된다는 규정 자체가 없다는 주장. 아무래도 선발투수 카드가 많지 않은 삼성으로선 연막 작전을 쓰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여론과 언론에서 이에 대해 ‘꼼수’라며 질타를 거듭하자 서 감독은 결국 외국인 투수 스코트 베이커를 예고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외국인선수 제도가 처음 도입된 1998년 삼성에 입단한 좌투수 베이커는 15승을 거두면서 단숨에 팀 내 에이스가 됐다.

정공법을 선호하는 LG는 최고령 다승왕 김용수를 1차전 선발로 예고했다. 김용수가 준플레이오프에서 부진했지만 한국시리즈 MVP만 두 차례(1990년, 1994년) 수상한 관록의 투수. 그 경험과 노련함을 믿었다.

10월 14일 오후 6시 대구구장에서 1차전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날 내내 잔뜩 구름을 머금고 있던 하늘은 경기 시작 10분 전에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이 비가 변수를 몰고 왔다.

1998년 플레이오프 1차전 도중 장대비가 내리자 심판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다. 뒤쪽으로는 삼성 직원들이 그라운드에 고인 빗물을 걷어내는 장면. ⓒ스포츠서울

비로 인해 경기 개시 시간도 10분 늦춰졌다. 오후 6시10분에 플레이볼이 선언됐다. 비가 흩뿌리는 가운데 LG가 1회초 시작부터 베이커를 공략하며 선취점을 뽑았다.

선두타자 류지현과 1사 후 3번타자 김선진의 우전안타로 1·3루 찬스를 잡은 뒤 외국인타자 주니어 펠릭스의 중견수 희생플라이로 1-0으로 리드했다.

삼성은 1회말 곧바로 반격했다. 2사 후 이승엽의 볼넷과 양준혁의 우중간 안타로 만들어진 1·3루에서 김한수의 우전 적시타가 터지면서 1-1 동점이 됐다.

기세가 오른 삼성은 2회말 정경배의 좌중월 솔로홈런, 강동우와 김종훈의 연속 2루타로 2점을 추가하며 역전에 성공했다.

LG에는 준PO부터 뜨거운 방망이를 자랑한 펠릭스가 있었다. 3회초 류지현의 우익선상 2루타로 차려진 2사 2루 찬스에서 장쾌한 중월 2점홈런으로 3-3 동점을 만들었다.

4회초에는 빗줄기가 굵어지면서 그라운드 상태가 더욱 악화됐다. 이로 인해 상대의 연이은 실책이 빚어졌다.

선두타자 심재학의 땅볼 타구. 침착한 수비로 정평이 나 있는 삼성 베테랑 유격수 류중일이 공을 더듬었다. 이병규의 희생번트로 1사 2루. 여기서 이종열의 2루수 쪽 땅볼을 처리하려던 삼성 2루수 정경배가 빗물이 흥건해진 그라운드에서 미끄러지면서 공을 가랑이 빠뜨리는 실책을 범하면서 심재학이 홈을 밟았다. 4-3 역전.

1998년 플레이오프 1차전은 장대비 속에서 경기를 치르다 LG가 4-3으로 앞선 상황에서 우천 노게임으로 선언됐다. 4회초 LG 마지막 타자 이종열(현 삼성 단장)이 비를 맞으며 타석에 들어서 있다. ⓒ스포츠서울
1998년 PO 1차전이 우천 노게임으로 선언되기 전까지 기록표. ⓒ스포츠서울

그런데 여기서 장대비는 더욱 굵어졌고, 급기야 심판진은 경기 중단을 선언했다. 36분간 기다렸지만 비는 멈추지 않았다.

결국 심판진은 더 이상 경기 진행이 어렵다는 판단을 내리면서 ‘노게임’을 선언했다. LG의 4-3 리드도, 펠릭스와 정경배의 홈런도 빗물에 쓸려가 버렸다.

KBO 역대 포스트시즌에서 경기 진행 중 ‘노게임’이 된 것은 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LG로선 재역전을 하고 계속된 1사 1루 찬스를 날려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판을 전체적으로 넓혀 손익계산을 해보면 나쁠 것도 없었다. 김용수 카드가 날아간 LG보다 베이커 카드가 사라진 삼성에게 더 타격이 큰 상황이었다. LG 좌타선을 상대할 투수가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1998년 플레이오프 1차전 9회초 승부에 쐐기를 박는 2점홈런을 날린 김동수가 서용빈의 환영을 받고 있다. 서용빈은 2회초 솔로홈런을 쏘아올렸다. ⓒ스포츠서울

◆PO 1차전…신바람 타선 폭발! 짜릿한 뒤집기쇼

LG는 12승 우완투수 최향남을, 해태는 11승을 올린 언더핸더 박충식을 선발로 내세웠다. 팀 내 2선발 격이었지만 기선을 잡아야하는 중요한 임무를 짊어지고 마운드에 올랐다.

하지만 믿었던 최향남이 1회말 시작하자마자 3점을 내주면서 흔들렸다. 선두타자인 신인 강동우에게 좌전안타와 도루를 허용한 뒤 김종훈에게 좌전 안타를 맞았다. 이때 좌익수 김재현이 공을 더듬는 실책을 범하면서 선취점을 내줬다. 김한수와 최익성의 연속 적시타까지 이어지면서 3실점하고 말았다.

어수선한 분위기. 이때 어두운 먹구름을 일시에 걷어준 해결사가 나타났다. 바로 7번타자 서용빈. 시즌 개막에 앞서 턱뼈 골절로 정규시즌 내내 결장했던 서용빈은 OB와 맞붙은 준PO에서 맹활약(8타수 4안타)했는데 PO 무대에서도 식지 않은 타격감을 자랑했다.

1차전 2회초 1사 후 첫 타석에 들어선 서용빈은 박충식과 11구 승부 끝에 중월 솔로홈런을 날리며 추격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한 번 폭발한 LG 타선은 신바람이 났다. 3회초 선두타자인 ‘꾀돌이’ 류지현이 볼넷을 골라 나가자 ‘캐넌히터’ 김재현이 초구를 때려 총알 같은 1타점짜리우중간 2루타를 날렸다.

이어진 1사 3루에서 심재학의 좌전 적시타로 3-3 동점, 계속된 1사 만루에서 서용빈의 중견수 희생플라이로 4-3 재역전에 성공했다. 빅이닝을 빅이닝으로 되갚아줬다.

LG는 6회초 1사 2루서 손지환의 우익선상 2루타로 5-3으로 달아난 뒤 9회초 2사 1루서 김동수의 좌월 2점홈런으로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7-3 승리.

'LG 할머니'로 유명한 신계순 할머니가 대구구장을 찾아 1998년 PO 1차전을 응원하고 있다. 신계순 할머니는 LG의 오키나와 스프링캠프까지 찾아갈 정도로 열성팬이었다. ⓒ스포츠서울

최향남은 1회에 흔들렸지만 2회말부터 8회말 1사까지 단 1개의 안타만 내준 채 삼성 타선을 완벽하게 봉쇄했다. 7.1이닝 동안 100구를 던지며 6안타 2볼넷 5탈삼진 3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1997년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갑자기 맹장염 수술을 받아 이탈했던 최향남은 1998년 준PO 2차전 승리에 이어 이번 가을야구에서만 2연승을 수확해 ‘가을남자’로 변신했다.

'이젠 향기나는 남자' 1998년 PO 1차전 승리투수가 된 최향남. ⓒ스포츠서울

최향남에 이어 등판한 최창호(0.1이닝 0실점)와 송유석(1이닝 0실점)도 좋은 컨디션을 발휘했다.

LG는 플레이오프 사상 최초로 1회부터 9회까지 매이닝 안타를 기록하는 등 장단 14안타를 뽑았다. 김재현과 이병규는 3안타씩을 때렸고, 서용빈과 김동수는 홈런포를 가동하며 뜨거운 타격감을 이어갔다.

반면 삼성 잠수함 투수 박충식은 LG 좌타선에 맥을 추지 못하고 2.1이닝 만에 4실점하면서 강판돼 불펜에 부담을 안겼다. 삼성의 쌍포 이승엽(3타수 0안타)과 양준혁(4타수 1안타)도 힘을 쓰지 못했다.

LG '캐넌히터' 김재현은 1998년 PO 2차전에서 연타석 홈런을 날리며 영웅이 됐다. ⓒLG트윈스

◆PO 2차전…김재현 연타석 홈런! 적지에서 2승

2차전 선발투수로 LG는 손혁을, 삼성은 김상엽을 예고했다.

손혁은 프로 데뷔 3년생 투수로 1998년 처음으로 두 자릿수 승리(11승8패, 평균자책점 3.70)를 거두며 LG 선발 트로이카로 자리매김했다.

‘만딩고’ 김상엽은 한때 삼성 에이스로 활약했지만 1998년 8경기에 등판해 3승3패, 평균자책점 5.40으로 급격한 내리막길을 탔다.

2차전도 선취점은 삼성의 몫이었다. 1회말 무사 1·3루에서 이승엽의 좌전 적시타로 삼성이 1점을 뽑았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사고가 발생했다. 2회초 LG 5번타자 이병규의 큼지막한 타구를 잡으려 뒤로 달려간 삼성 중견수 강동우가 점프를 하며 공을 잡다 펜스에 부딪히면서 왼쪽 정강이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은 것이었다.

강동우는 1998년 삼성 1차지명 신인으로 첫해부터 3할 타율을 올린 기대주였다. 하지만 단국대 1년 선배 이병규의 타구를 처리하다 치명적인 부상으로 들것에 실려나가고 말았다.

(안전펜스가 설치된 요즘과 달리 당시엔 각 구장마다 딱딱한 시멘트 벽에 얇은 스펀지만 입혔기 때문에 이런 대형 사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계기로 점차 전국 야구장에 안전펜스가 설치되기 시작했다. 한편 현재 LG 퓨처스팀에서 이병규는 감독으로, 강동우는 타격코치로 활약하고 있다.)

삼성 강동우가 1998년 PO 2차전에서 다리 골절상으로 들것에 실려나가 응급조치를 받고있다. ⓒ스포츠서울

LG는 3회초부터 반격에 나섰다. 이종열과 손지환의 연속 사구(몸에 맞는 공)와 류지현의 희생번트, 김재현의 1루수 쪽 땅볼로 1-1 동점을 만들었다.

이어 4회초 선두타자 심재학의 중월 3루타와 이병규의 중전 적시타로 2-1 역전에 성공했다.

계속된 무사 1·2루에서 삼성 서정환 감독은 김상엽을 빼고 고졸 신인 김진웅을 호출하는 결단을 내렸다. 하지만 LG 7번타자 서용빈이 우익선상 2루타로 두들기며 3-1로 달아났다.

삼성은 안방에서 2연패를 당할 수 없다는 듯 6회말 타선이 폭발했다. 거포 이승엽이 우월 솔로홈런을 날렸다.

LG 선발 손혁(5.1이닝 2실점 1자책점)이 강판한 가운데 계속된 2사 1·2루에서 최익성이 LG 3번째 투수 차명석을 상대로 2타점 우중간 2루타를 날리면서 삼성이 4-3으로 재역전했다.

1998년 LG 마무리투수를 맡은 외국인 마이클 앤더슨. ⓒ스포츠서울

엎치락뒤치락 거듭되는 혈전. 7회초 2사후 류지현이 좌전안타로 출루하자 김재현이 타석에 등장했다. 여기서 미사일 같은 역전 좌중월 2점홈런이 터졌다. 5-4로 재재역전되는 순간이었다.

김재현은 9회에는 김진웅을 상대로 솔로홈런을 터뜨리면서 6-4 승리를 자축했다. 적지에서 1승1패 구상을 하고 온 LG는 이로써 2연승이라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리면서 기분 좋게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김재현은 7회초 역전 투런포에 이어 9회 쐐기 솔로포까지 PO 역사상 2호 연타석 홈런을 날려 최고의 히어로가 됐다.

7회초 등판해 1이닝을 삼자범퇴로 처리한 대졸 입단 2년생 전승남은 개인통산 첫 가을야구 승리투수가 되는 영광을 안았다.

8회말 최창호가 두 타자를 처리한 뒤 마이클 앤더슨이 마무리투수로 등판해 1.1이닝 3탈삼진 무실점으로 세이브를 올렸다.

1998년 외국인선수가 도입된 뒤 페넌트레이스 최초 승리투수가 됐던 앤더슨은 OB와 준PO 1차전에서는 포스트시즌 최초 외국인 승리투수가 된 바 있다. 아울러 이날은 외국인 최초로 KBO 가을야구 무대에서 세이브를 달성하는 역사를 썼다.

지금은 추억이 된 아날로그 풍경. 1998년 PO 3차전 입장권을 구하기 위해 팬들이 잠실구장 매표소 앞에서 밤샘을 하며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당시엔 인터넷 예매가 없어 현장에서만 표를 살 수 있었다. ⓒ스포츠서울

◆PO 3차전…3점 선취하고도 대패

LG는 1승만 추가하면 한국시리즈로 갈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 1차전 우천 노게임으로 3이닝만 던진 김용수를 3차전 선발 카드로 뽑아들었다.

벼랑 끝에 몰린 삼성은 또 다른 외국인투수 호세 파라를 선발로 내세우면서 스코트 베이커를 뒤에 붙인다는 구상을 하고 나왔다.

LG는 2회말 3점을 뽑아내며 기세를 올렸다. 2사 1·3루에서 류지현의 2타점 좌중간 2루타가 터지자 삼성은 곧바로 베이커를 마운드에 올렸다. 여기서 김재현이 좌전 적시타를 치면서 3-0으로 앞서나갔다.

사실상 3연승으로 KS행 기차에 탑승하는 분위기. 하지만 1~2차전을 통해 선취점을 뽑은 팀이 모두 패하는 묘한 징크스가 있었기에 LG로서도 긴장의 끈을 풀 수 없었다.

1998년 삼성으로 이적한 이순철이 PO 3차전에서 결승 6회초 결승 2타점 적시타를 치고 있다. LG 포수는 김동수. ⓒ스포츠서울

아니나 다를까. 3회초 1사 1·2루에서 양준혁과 정경배에게 연속 적시타를 맞고 말았다. 이어 4회초 무사 1·3루에서 최익성의 3루수 앞 병살타 때 3루주자 류중일이 득점하면서 3-3 동점이 됐다.

삼성은 6회초 한꺼번에 5점을 뽑으면서 승기를 잡았다. 류중일과 김종훈의 좌전안타, 최익성의 희생번트를 LG 포수 김동수가 1루에 악송구하면서 무사 만루가 빚어졌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이순철. 2차전까지 벤치를 지키다 강동우의 부상 이탈로 이날 2번 우익수로 선발출장한 이순철은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펄펄 날았다. 해태 왕조 건설의 중심축이었던 그는 2타점 좌전 적시타를 날리면서 승부사 기질을 발휘했다. 삼성이 5-3으로 치고 나갔다.

이순철은 1루를 밟자마자 3루쪽 관중석에서 환호하는 팬들을 향해 두 팔을 앞으로 쭉 뻗어 더 큰 응원을 유도했다.

1998년 PO 3차전에서 LG 치어리더들이 힘찬 율동으로 LG 선수단과 팬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스포츠서울

삼성은 계속된 1사 1·2루에서 정경배의 좌중간 2타점 2루타, 1사 만루에서 정회열의 투수 앞 스퀴즈번트로 8-3으로 달아났다.

7회에는 1사 2루에서 이순철의 좌월 3루타, 양준혁의 희생플라이가 더해지며 스코어를 10-3으로 벌렸다.

LG는 8회말 1점을 뽑은 뒤 4-11로 뒤진 9회초 김재현의 우월 솔로홈런으로 상심한 팬들을 달래줬다. 김재현으로선 PO 들어 3번째 홈런포를 가동했지만 패배를 되돌릴 순 없었다.

LG 김재현이 1998년 PO 4차전에서 1회말 2루도루를 시도한 뒤 중심을 잃으면서 태그를 하는 삼성 유격수 류중일의 머리를 붙잡고 있다. ⓒ스포츠서울

◆PO 4차전…펠릭스의 역전 3점포! “우린 KS로 간다”

4차전 선발투수는 LG 최향남과 삼성 김진웅이었다.

LG는 1회말 시작하자마자 류지현의 우월 2루타와 김재현의 우전 적시타로 선취점을 뽑았다.

삼성이 3회초 이승엽의 적시타로 1-1 동점을 만들며 반격을 시도했지만, LG가 3회말 2사 1루서 심재학의 우중월 2루타로 2-1로 다시 앞서나갔다.

하지만 4회까지 3안타 5탈삼진 1실점으로 호투하던 최향남이 흔들렸다. 몸에 맞는 공 2개와 볼넷 1개로 1사 만루 위기. 정경배에게 유격수 쪽 내야안타를 맞고 2-2 동점, 김한수에게 2타점 좌전 적시타를 내주면서 2-4 역전을 허용했다. 4.1이닝 4실점한 뒤 송유석에게 마운드를 넘기고 강판됐다.

송유석(1.1이닝)~김기범(0.2이닝)~차명석(0.2이닝)이 7회까지 무실점으로 버텼지만 2점차를 극복하는 것이 힘겨워 보였다.

삼성 마운드에는 김진웅(2.2이닝)과 전병호(0.2이닝)에 이어 왕년의 강속구 투수 박동희(작고)가 등판해 있었다.

2연승 후 3차전 대패. LG로서는 4차전마저 내준다면 KS행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1998년 PO 4차전에서 0.2이닝을 막은 뒤 승리투수가 된 LG 마당쇠 투수 차명석. ⓒ스포츠서울

5차전 승부까지 생각해야할지 모르는 분위기. 여기서 LG 타선의 대폭발이 일어난다.

7회말 선두타자 이종열의 볼넷과 손지환의 희생번트로 만든 1사 2루에서 류지현의 좌전 적시타로 3-4로 따라붙었다.

삼성 벤치는 호투하던 3번째 투수 박동희를 내리고 외국인 좌완투수 베이커를 마운드에 올렸다. 베이커는 3차전에서 4.1이닝 동안 73구를 던진 투수였지만, 좌타자 김재현을 상대하겠다는 포석이었다. 하지만 김재현은 좌전 안타로 1사 1·2루로 찬스를 이어줬다.

타석에는 주니어 펠릭스. 준PO에서 홈런 포함 9타수 5안타로 맹활약했던 외국인타자였다.

하지만 PO 1차전에서 친 홈런이 노게임으로 무효 처리된 뒤 갑자기 부진에 빠졌다. PO 1~3차전에서 15타수 3안타에 그쳤다. 이날 4차전에서도 앞선 3타석에서 모두 삼진을 당했다. PO 타율은 0.167(18타수 3안타)로 더 떨어졌다.

스위치히터인 펠릭스는 이날 삼진 3개를 당했던 좌타석을 버리고 좌투수 베이커를 공략하기 위해 우타석에 들어섰다.

베이커라면 우천 노게임 때 홈런을 뽑아낸 상대. 삼성도 알고 있었지만 투수를 소모한 상태라 교체 없이 밀어붙였다.

1998년 PO 4차전 7회말 극적인 역전 3점홈런을 친 LG 주니어 펠릭스가 동료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스포츠서울

볼카운트 0B-1S. 베이커의 손을 떠난 2구째 공이 스트라이크존 한복판 높은 곳으로 밀려 들어왔다.

메이저리그 출신인 펠렉스가 이를 놓칠 리 없었다. 방망이는 거침없이 돌았고, 배트에 맞은 타구는 좌익수 뒤 외야 관중석 중단을 향해 힘찬 포물선을 그렸다.

재역전 3점홈런!

LG는 단숨에 스코어를 6-4로 뒤집었다. LG 덕아웃과 관중석은 열광의 함성으로 뒤덮였다.

PO 4차전 7회말 주니어 펠릭스가 좌월 역전 3점홈런을 날린 상황. 2루주자 류지현, 1루주자 김재현이 타구를 바라보고 있다. ⓒ스포츠서울

삼성이 8회초 1사 1·3루에서 최익성의 희생플라이로 6-5로 턱밑까지 추격해 오자, LG는 8회말 추가 득점에 성공한다. 2사 2루서 류지현이 우전 적시타를 날리면서 스코어를 7-5로 한 발 더 벌렸다.

8회초 등판해 실책 속에 1이닝 1실점(비자책점)한 마무리투수 마이클 앤더슨이 9회초 첫 타자 이순철을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삼성 타순은 3번 이승엽~4번 양준혁으로 이어지는 좌타 라인. LG는 시즌 중반 박종호를 현대에 내주고 영입한 좌완 최창호를 호출했다. 여기서 이승엽을 1루수 땅볼, 양준혁을 3루수 플라이로 잡았다.

7-5 승리!

LG는 결국 PO 4경기 만에 삼성을 3승1패로 물리치고 팀 창단 후 4번째 KS 무대에 오르게 됐다. 1990년과 1994년에는 KS 우승을 차지했고, 1997년에는 PO에서 3승2패로 KS행 자격을 얻었다.

LG는 역대 가을야구에서 삼성과 4차례 만나 3번 이기고 1번을 지는 전적을 만들었다. 1990년 KS에서는 삼성을 상대로 4승무패로 우승했고, 1993년 PO에서는 2승3패로 삼성에 뒤처졌다. 그리고 1997년 PO에서 3승2패, 1998년 PO에서는 3승1패로 KS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이것이 삼성을 상대로 거둔 포스트시즌 마지막 승전이기도 했다. 21세기 들어 삼성과 두 차례 만났지만 모두 패하게 된다.

1998년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현대 유니콘스의 김재박 감독(가운데)과 신언호 코치가 LG-삼성의 플레이오프를 관전하며 전력분석을 하고 있다. 김 감독과 신 코치는 LG 출신. ⓒ스포츠서울

한편 LG는 PO를 4차전에서 끝내면서 사흘간의 휴식을 취한 뒤 10월 23일부터 현대 유니콘스와 대망의 한국시리즈를 치르게 됐다.

현대 사령탑은 LG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의 김재박 감독. 페넌트레이스 1위를 차지해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현대 유니콘스는 인천팀 역사상 최초로 한국시리즈 우승 꿈을 꾸고 있었다.

[베팬알백] <58편>에서 계속

1998년 한국시리즈 진출을 확정한 LG 선수단이 플래카드를 펼쳐놓고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스포츠서울

이재국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인생이 야구여행이라고 말하는 야구운명론자.

현 스포팅제국(스포츠콘텐츠연구소) 대표 / SPOTV 고교야구 해설위원 / 유튜브 '이재국의 와일드피치' 운영

전 스포츠서울~스포츠동아~스포티비뉴스 야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