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유익한 인터뷰 ] 너는 나의 봄, 오월광주 - 천하람·하헌기·문정은

여야를 대표하는 청년 정치인, 광주의 봄을 말하다.
5·18민주화운동 44주년, 진실과 기억
“오월 진실의 힘으로, 시대의 빛으로”
왼쪽부터 천하람 제22대 개혁신당 국회의원 당선인, 문정은 정의당 광주시당위원장, 하헌기 (전)더불어민주당 청년대변인.
‘이토록 유익한 인터뷰’는 알아두면 유익한 지식과 함께 삶을 통찰하는 지혜를 전하고자 합니다. 사회, 문학, 철학, 경제, 과학 등 각 분야에서 종횡무진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 그리고 만나고 싶은 셀럽들의 인터뷰를 통해 여러분의 지식창고를 채워보시기 바랍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잊히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어떤 일들은 잊고 싶어도 어느 순간 문득 떠올라 몸과 마음을 힘들게 한다. 특히 그 일을 납득할 수 없을 때 기억은 아프고 쓰라리다.44년 전, 평범한 광주 시민들의 일상을 잔혹하게 짓밟았던 역사의 기억은 지워지고 왜곡된 채 철저히 은폐됐다. 참혹했던 5·18의 진실은 사라지고 가해자의 기록만이 마치 진실인 양 기억되고 있다. 어쩌면 5·18민주화운동은 기억과 망각의 싸움일 지도 모른다. 그 싸움은 치열했고 지금도 여전히 치열하게 진행 중이다. 기억은 힘이 약하지만 우리가 함께 기억하며 연대할 때 충분히 강해질 수 있다.

사실 여·야를 막론하고 5.18의 진실에 대한 분노와 부채의식이 자신을 성장시켜준 힘이 되었다고 고백하는 정치인들이 많다. 그것은 함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의 감정이었고, 그 부끄러움은 부채의식으로, 하나의 역사의식으로 공유되어 한국 사회를 움직여왔다. 하지만 1980년 이후 44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5·18민주화운동은 누구나 공감하는 모두의 기억으로 남아있지 않다. 왜 5·18은 광주만의 기억과 기념으로 축소되어 가는 것일까. 위정자들과 정치인들이 광주를 민주화의 성지로 추앙하고 소모할수록 5·18을 향한 국민의 관심은 점점 더 멀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오월의 역사는 비단 오월세대, 그리고 광주만의 역사는 아닐 것이다. 5·18민주화운동의 광주정신을 널리 알리고 계승하는 일은 이제 우리 시대의 몫으로 남았다. 5·18민주화운동을 겪지 않은 청년세대들에게 80년 광주의 오월이 살아있는 시대정신으로 이어지도록 우리 모두 진지한 고민과 소통이 필요한 때다.

1980년 이후 세대인 청년들에게 5·18민주화운동은 어떤 의미와 가치로 인식되고 있는지 여·야를 대표하는 청년 정치인 세 명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천하람 제22대 개혁신당 국회의원 당선인.

Q. 광주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궁금해요.

광주에 대해 처음 떠오르는 것은 5·18민주화운동입니다. 민주화운동의 대표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다음에는 선거 때나 프로야구 시즌에 기아타이거즈에 대한 응원 등에서 나타나는 좋게 말하면 ‘단결력’ 나쁘게 말하면 ‘배타성’입니다.자세히 살펴보면 좋은 곳이 많이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보면 다른 광역시에 비해 발전이 더디다는 인상도 있습니다.(천하람)

부채의식입니다. 제가 이십대 때는 주로 일베(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등을 통해 ‘7시’, ‘홍어’ 같은 악랄한 인터넷 용어들이 만들어져서 호남혐오를 유머처럼 소비하는 것을 봤습니다. 동시대 사람으로서 솔직히 미안했습니다. 그런 걸 보는 광주와 호남분들의 감정은 어떻겠습니까? 아직까지 해소가 되지 못하고 있는데 광주를 바라볼 때마다 공동체적 부채의식이 있습니다.(하헌기)

광주는 제가 사는 곳이라 어떤 이미지라고 말하기 어색한 측면이 있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오래도록 생활하셨던 아버지가 전라도 출신 어머니를 만나 결혼하셨는데, 저에게 유독 ‘전라도 사투리를 쓰지 말라’, ‘일부러 광주 출신이라 밝힐 필요 없다’고 했던 때를 오래도록 곱씹어보게 됩니다. 1997년 대통령 선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즈음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을 기원하며 속앓이하던 외가 식구들의 간절한 마음들, 밤새워 TV 앞에 앉아 있던 가족들의 심정은 어떤 것들이었을지 문득 돌아보게 됩니다.(문정은)

Q. 5·18민주화운동을 언제 처음 알게 되었나요?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 때 부모님과 광주에 와서 5·18민주묘지를 참배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그전에도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당시의 기억이 선명한 것을 보면 5·18민주묘지를 참배하면서 어린 마음에도 다소 놀랐던 것 같습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기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국가 폭력에 의해서 희생되었다는 점에 대해서 말입니다. 이후에 특별히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정치를 하면서 제가 5·18 민주화운동을 존중만 해도 주위에서 높게 평가해 주셔서 그것이 더 이상했습니다.(천하람)

5·18민주화운동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된 건 학교 다닐 때 수업을 통해서였습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제게 5·18은 그냥 역사화 된 이야기였습니다. 평생을 영남에서 살았기 때문에 제 입장에서는 책에서만 본 이야기였습니다. 성인이 되고 나서야 호남 출신 지인에게 “전두환이 한 도시에서 집집마다 있는 제삿날을 같은 날로 만들어버렸다.”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아, 이거 아직 역사화된 거 아니구나’라고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물론 역사적 ‘평가’는 끝났습니다만, 생존자가 남아있고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최근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그리고 여전히 왜곡하려는 사람들이 많은 현실에서, 진실의 토대 위에 제대로 ‘청산’을 해야 진짜 역사화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하헌기)

광주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저는 학교 내 계기 교육으로 진행된 5·18과 관련된 다양한 방식의 수업과 경험담, 이야기, 체험, 견학 활동을 경험했습니다. 그중에 가장 강렬한 기억은 5·18묘역과 금남로에서 마주했던 그날의 참혹한 피해를 보여주는 사진들이었습니다. 집 근처에 있던 5·18기념공원이나 시내 곳곳에 놓여있던 5·18 관련 사적비 등도 그냥 지나치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을 알게 된 후였습니다. 너무도 잔인한 진실 앞에 두려웠고 괴롭고 피하고 싶고 알고 싶지 않은 마음도 오래 갔습니다. 믿기 어려운 역사의 진실 앞에 광주에서 벌어진 일들을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생각,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서까지 알리고자 한 진실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널리 알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문정은)

Q. 광주 안팎에서 바라보는 5·18민주화운동의 인식 차이가 큰가요?

현재와 과거의 차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5·18과 관련한 광주의 아픔은 현재진행형입니다. 당시에 고등학생, 대학생이었던 분들은 아직도 60대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2020년에 오월 희생자들의 모습으로 대형 인형을 제작하여 금남로에서 행진을 했던 오월시민행진에 참여했었는데, 반대편 차선에서 그 행진을 보시던 택시 기사님과 버스 승객들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떠나보낸 가족과 친구가 떠올랐기 때문일 겁니다. 아직도 광주에서는 5월에 축제를 하지 않습니다. 광주 밖에서는, 특히 5·18 이후에 태어난 청년 세대는 광주민주화운동은 교과서에서 배운 과거의 사건이라는 인식을 갖습니다.(천하람)

광주 안에서 바라보는 5·18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바깥에서 바라보는 인식보다는 더 현재진행형이고, ‘본인의 일’에 가까운 것 아닐까 추정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광주 밖에서 보는 5·18도 대체적으로 지역의 역사나 다른 지역의 비극이 아니라 한국의 위대한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헌법 전문에 포함시킨다는 논의가 그래서 나오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광주 밖에서도 5·18은 우리의 역사이고, 자신들의 일로 여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5·18에 대한 청산이 진행될수록, 점점 더 보편적인 인식으로 자리 잡을 거라고 믿습니다.(하헌기)

광주시민들에게 5·18은 삶이고 일상입니다. 매일 아침 출근길이나 등굣길에서 만나는 5·18사적지와 거리마다 가득한 사연들은 광주가 오롯이 5·18의 현장이고 역사였음을 알려줍니다. 40여 년의 세월이 흘러 그 빛과 색이 바랬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미얀마로 홍콩으로 더 넓게 퍼져가는 오월 광주정신에 대한 자긍심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광주 밖 시민들에게 5·18은 여전히 엄숙하고 비장한 역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으로는 5·18을 이념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광주 오월은 특정 세력들이 전유하는 유일한 가치도 아니며, 안과 밖 할 것 없이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여전히 알아야 할 것이 있고, 기억할 것이 남았고, 이어가야 할 것들이 많은 민주주의의 무궁무진한 보고라고 생각합니다.(문정은)

Q. 타지역과 청년 세대들에게 5.18민주화운동을 제대로 알릴 방법이 있을까요?

대부분의 MZ세대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제대로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주변만 보더라도 대부분 학교 교과과정을 통해서든 영화 같은 문화콘텐츠를 통해서든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는 아니더라도) 타당한 인식을 갖고 있다고 여겨지며, 왜곡된 시각을 가진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인터넷 공간에서 시끄러운 사람들이 일부 있는 것 같지만, 5·18민주화운동은 우리 세대에서 논란의 대상이 아닙니다. 당연히 민주화운동이라고 알고 있습니다.(천하람)

5·18에 대한 왜곡이 가장 심했고, 그 음모론을 그대로 믿는 젊은층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젊은층에 접근할 수 있는 벽을 낮추기 위해 그들과 ‘같은 문법’, ‘같은 도구’로 대응했습니다. 유튜브를 이용한 것입니다. 교과서에서 나오는 것은 한정적입니다. 이미 원본자료와 다양한 역사 자료가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묶어 콘텐츠로 소비할 수 있게 하느냐를 고민하는 게 관건일 것 같습니다. 지식 정보를 전하는 유튜브 채널은 생각보다 인기가 많습니다. 요즘은 텍스트가 아니라 영상으로 정보습득을 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하헌기)

단적인 예로 BTS 제이홉에 의해 알려진 노래 속 가사 한 줄에 전 세계인들이 광주를 알게 되고, BTS 팬덤인 아미(ARMY)들이 광주를 찾거나 5·18의 진실을 알리는데 함께 해주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유명인에 기대는 홍보가 필요하다는 것을 넘어 그동안 역사적 진실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단순 주입하고 당위적으로 설명해 온 우리 교육과 환경에 대해서 원점부터 다시 고민해야 하는 숙제를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MZ세대가 5·18을 알고, 관심을 두도록 하기 위해서는 광주 오월 정신이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며, 일상의 민주주의를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이고 효능감 있는 변화를 동반할 때에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문정은)

왼쪽부터 천하람 제22대 개혁신당 국회의원 당선인, 하헌기 (전)더불어민주당 청년대변인, 문정은 정의당 광주시당위원장.

Q. 5·18민주화운동의 왜곡과 폄훼를 근절시킬 수 있을까요?

음모론을 근절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5·18민주화운동을 왜곡하고 폄훼하는 세력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 고립되었다고 생각합니다. 5·18이 민주화운동이라는 점에 이견이 거의 없는 우리 세대에서는 음모론은 더욱 자리 잡기 어려울 것입니다. 정치적 영역에서는 5·18 민주화운동이 정치적 진영을 초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절반은 국민의힘 또는 민주당을 좋지 않게 봅니다. 5·18민주화운동이 민주당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을 갖는 순간 스스로 진영논리의 한계에 갇히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국민의힘이 더욱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천하람)

담론 시장에서 이겨야 합니다. 저는 SNS와 유튜브 등을 많이 이용했습니다. 지난 대선에서는 온라인 등에서 5·18을 폄훼하던 사람이 대선 캠프에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문제를 지적하자 ‘유공자 이름을 하나하나 적어 현판에 걸면 되는 일인데 왜 숨기느냐’는 식으로 나오기에, 유공자 명단은 이미 ‘5·18공원에 비석으로 새겨져있다’고 했더니 반론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사실 자체를 모르니 선동에 속는 것입니다. 치열하게 토론하고 다투는 과정을 통해 담론 시장에서 이겨야 합니다. 기성 언론이나 뉴미디어 채널을 가리지 않고 정확한 정보를 확산시켜서 왜곡과 폄훼가 결국에는 주변화되게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하헌기)

안타깝게도 우리 역사는 제대로 된 심판이 미흡했습니다. 진실규명의 출발이자 종착은 무엇보다 폭력에 대한 엄중한 처벌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1990년 노태우 정권에서 민자당 단독으로 처리한 ‘광주보상법’이 철저한 진상규명과 가해자 사과 없이 보상 위주의 급속한 화해 조치로 갈무리되면서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는 불명예스러운 역사를 만들고야 말았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라도 가해자에 대한 철저한 기록부터가 해결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5·18에 대한 새로운 증언은 그동안 5·18의 왜곡과 폄훼의 핵심적 문제였던 가해자를 정확히 지목함으로써 5·18의 왜곡과 폄훼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최근 제정된 이른바 ‘5.18 왜곡 처벌법’ 등의 실효성 등도 꼼꼼히 살펴봐야겠습니다.(문정은)

Q. 광주도 변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겠죠?

특별히 광주 내부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굳이 답변하자면 5·18민주화운동을 특정 정치 진영의 전유물로 삼으려 드는 시도는 비판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런 행태는 5·18정신의 확산을 방해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천하람)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광주정신이 제대로 평가받고 계승되게 하는 것은 한국 전체의 과제이고 문제입니다. 광주 내부에서 무엇이 변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고 불공정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솔직히 개인적으론 광주 내부에서 무엇이 바뀌어야하는지 그 선결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떠올리기 힘듭니다. 그 문제에 관해서는 정치권에서, 그리고 공론의 장에서 더 열심히 해야 할 일입니다.(하헌기)

광주 오월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5·18 당사자를 넘어 오월 이후 세대의 적극적 역할을 대폭 지원해야 합니다. 주요한 의사결정 단계에서부터 참여할 수 있도록 과감히 지역사회에 개방해 다양한 세대와 계층, 소수자들과 함께해야 합니다. 사실상의 독점 정치 체제에도 균열이 필요합니다. 집행부를 견제해야 할 의회가 한 정당과 한 몸이 되면서 비판과 견제가 작동하지 못해 유례없는 참사로 무고한 시민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했습니다. 다당제 민주주의를 통해 경쟁하는 체제를 만들어 다양한 시민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정치를 만들어야 합니다. 광주 독점 정치세력이 육참골단의 자세로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에서부터 변화는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문정은)

Q. 청년정치인으로서 광주에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사실은 실은 한 사람 한 사람의 결단으로 이뤄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결단을 내려야 했던 주체 중에 지금의 저보다도 훨씬 젊은 분들이 적지 않았다는 점이 무겁게 다가옵니다. 저도 결단을 해야 하는 순간에 조금이나마 우리 사회와 역사에 도움이 되는 결단을 하고 싶고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천하람)

저는 광주의 변화를 느끼고 있습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는 5·18을 폄훼하는 정치인들의 존재나 유튜브 상에서 확산되는 5·18 희생자와 유공자들에 대한 모욕 때문에 분노하고는 했습니다. 몇 년 지나지 않은 지금은 그때와 그래도 상황이 많이 변했습니다. 보수정당에서도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고 우리 공동체도 노력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아직 매듭 되지 못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대한민국 정치인으로서 대한민국 전체의 과제이자 역사인 오월 광주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겠습니다.(하헌기)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한 5·18은 이제 아시아 민주화 운동과 전 세계 민주주의의 모범이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44년이 흘러도 여전히 왜곡과 혐오로 끊임없이 고통 받는 광주시민의 아픔을 가슴 깊이 새기고, 2030년 5·18이 50년 되는 해에 우리는 어떤 광주를 마주하게 될까? 생각해 봅니다. 1980년 5월 그 밤 도청을 지킨 젊은 청춘들과 의로운 시민들이 만들고자 했던 광주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숭고한 죽음으로 꽃피운 민주주의를 극심해지는 불평등과 차별을 넘어 모두가 평등하게 인간의 존엄을 누릴 수 있는 저항과 연대의 도시로 만들어가는 데 저의 소명을 다해나가겠습니다.(문정은)

/글·사진=정지효 기자 1018hyohy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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