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에선 서민이 살아갈 수 없다”…‘IT붐’에 가려진 최악의 양극화 [Books]
소프트웨어산업 올라탔지만
경제활동인구 절반 농업종사
암바니 등 세계부호 넘쳐도
서민들 생활은 여전히 팍팍
‘도덕 실패’ 정치 기능 안해
사회 전체가 신뢰없이 분열
값진 가치만큼 아름답게 빛나지만 굉장히 희소하다는 의미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 인도의 IT 산업은 가파르게 성장했지만, 2005년 기준 소프트웨어 산업은 인도 국내총생산(GDP)의 단 2%에 불과했다. 고용 기여도는 이보다 더 낮았다. 같은 해 소프트웨어 산업은 인도의 4억2000만명에 달하는 경제활동인구 가운데 130만명만을 고용하고 있었다. 인구 100명당 고속인터넷 연결 대수도 2020년 기준 스리랑카와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보다도 뒤쳐져 있었다. 인도는 여전히 빛이 비치지 않는 곳이 더 많다.
신간 ‘두 개의 인도’는 인도계 미국인이자 경제학자인 아쇼카 모디 미국 프린스턴대 국제경제정책학과 교수가 독립 인도의 정치와 경제를 파헤친 책이다. 1947년 독립을 맞이한 인도에서 출발해 오늘날 116개 유니콘 기업을 거느리고 있는 나렌드라 모디 집권기까지 인도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두 개의 인도는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빛나는 인도’와 나머지 절대 다수의 ‘빛나지 않는 인도’를 뜻하는 말로, 인도가 겪고 있는 극심한 불평등과 이로 인한 위기를 다룬다.
초대 총리였던 네루는 국가 주도의 대규모 산업화를 추진했지만, 노동집약적 산업과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부족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초등 교육은 경시하면서 인도 공대를 설립하는 과오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제 개발에 악영향을 미쳤다. 인디라 간디는 주요 산업과 은행을 국유화하고 부패를 척결하지 못했고 인도인들의 도덕과 책임의식, 시민의식은 제대로 길러지지 못했다. 현재 집권 중인 모디 총리에 대해서도 “디지털화와 경제 개혁을 추진했지만 국민들의 굶주림을 외면하면서 대규모 실업과 빈곤 문제를 오히려 악화시켰다”고 평가했다.
인도의 GDP 성장률은 1999년에서 2001년 사이 하락한 뒤 연간 8%로 가속화됐다. 그러나 이 같은 성장에도 인도와 중국의 제조업 수출 격차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중국은 제조업체와 노동자의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향상된 반면, 인도는 그렇지 못했다. 더 많은 교육을 받은 노동자들이 투입되지 못했고, 생산 과정에서의 낭비를 줄일 수 있는 시스템이나 노동자들의 의식도 없었다. 심지어 공장장들은 자신들의 생산 품질이 한국, 일본 등 경쟁업체에 비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에 관심 갖지 않았다.
상업용 부동산, 고층 주택, 쇼핑몰에 자금이 쏟아진 인도의 금융 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2000년대 초반 취업자 중 정규직으로 임금 수준이 양호하고 건강보험과 연금 혜택을 받는 사람은 약 8%에 불과했다. 인도 기업은 금융과 건설을 발판 삼아 고도의 성장을 이뤘지만 건설 산업은 부패와 범죄의 온상이 되곤 했다. 예컨대 인도에서 가장 흔한 건설 관련 범죄는 건축에 필요한 콘크리트 생산을 위해 시멘트와 자갈에 혼합되는 모래를 하천에서 불법 채취하는 것이었다. 모래 채취는 하천을 마르게 하고 지형과 토지의 안정성을 뒤흔들어놨고, 토양의 산도를 높여 지하수를 오염시켰다.
두 개의 인도는 점점 더 크게 갈라서고 있다. 인도에는 무케시 암바니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 회장 고탐 아다니 회장 등 세계적인 부호들이 넘쳐나지만, 그 화려함 뒤에 가려진 평범한 인도인들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인구 14억명 인도의 생산연령인구 10억명 가운데 경제활동인구(재화나 용역을 생산하기 위해 노동을 제공할 의사와 능력이 있는 사람)는 6억7000만명에 불과하다. 게다가 경제활동인구의 46%는 아직도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1960년 70%에서 반세기가 넘도록 10%p밖에 줄어들지 않은 셈이다. 여전히 인도의 여성들 상당수는 공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모디 교수는 “인도의 경제 상황이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정치가 기능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도덕의 실패 때문이다. 즉, 모두가 함께 발전해야 한다고 믿는, 공동의 발전을 중시하는 공공 윤리가 부재한 것”이라며 “이러한 공공윤리의 부재는 사회 규범과 정치적 책임 의식 약화로 이어졌다. 누구나 자신이 속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피해자가 되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먼저 속이려는 경향이 만연해 있다”고 짚었다. 분열된 인도의 이야기는 한국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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