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북토크를 준비하는 마음
크레타에서 여러 작가를 모시고 북토크를 진행할 때마다, 나는 가끔 상상하곤 했다. 언젠가는 나도 저 자리에 앉아, 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무대 위에 앉은 작가들의 말투, 손짓, 눈빛을 조용히 바라보며, 언젠가 나도 책 한 권 품고 독자들 앞에 서게 되기를 바랐다. 꿈이라기엔 조심스럽고, 계획이라기엔 막연한 마음이었다. 그저 누군가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준다면, 그 시간만큼은 나도 조금은 괜찮은 사람이 될 것 같았다.
그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작년, 열다섯 명의 직업인이 모여 자신의 일과 삶을 담아낸 책,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의 공저자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나는 겨우 2년 차 책방지기였지만, 책과 사람, 그리고 작가와 독자를 연결하는 일의 의미를 누구보다 진지하게 생각하며 글을 써 내려갔다. 책방을 꿈꾸는 이들에게 작은 영감이라도 건넬 수 있기를 바라며, 한 줄 한 줄 마음을 눌러 담았다.
책을 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 글을 읽은 독자들을 직접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나 역시 그랬다. 출간 후, 공저자 세 분을 크레타로 초대해 북토크를 열었지만, 그날 나는 작가가 아니라 진행자로서 역할에 집중해야 했다. 아쉬움이 마음 한켠에 오래 남았다. 그렇게 조용히 품어둔 소망은, 지역 도서관의 도움으로 다시 문을 열 수 있었다. 이번에는 온전히 '나'로서 독자들과 마주 앉을 수 있는 자리였다.
처음에는 많이 망설였다. 단독 저서도 없고, 유명한 인플루언서도 아니며, 겨우 두 번째 겨울을 넘긴 책방지기의 이야기를 과연 누가 궁금해할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신청을 받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많은 분들이 참여를 원했고, 대기자 명단까지 생겼다. 그 순간, 단순한 설렘을 넘어 깊고 묵직한 감사가 밀려왔다. 이름 없는 초보 책방지기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소중한 시간을 내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책을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따뜻하고 깊었다.
북토크를 준비하며 가장 고민했던 건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였다. 꿈을 꾸는 이들에게 좋은 이야기만 들려줘야 할까, 아니면 현실의 무게도 숨김없이 전해야 할까. 오래 고민한 끝에, 나는 마음을 열기로 했다. 책방을 꿈꾸던 시간, 서점을 열며 마주했던 두려움, 15년 넘게 독서모임을 이어올 수 있었던 힘, 그리고 책만 팔아서는 생계를 잇기 어려운 현실까지. 이 자리까지 오는 동안 지나야 했던 크고 작은 파도들을 솔직하게 꺼내보기로 했다.

북토크는 참가자들의 자기소개로 시작했다. 크레타에서 늘 해오던 방식이었지만, 막상 내가 그 자리에 앉아보니, 이전에 초대했던 작가님들의 긴장과 떨림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맑고 진지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 눈빛 속에는 기대와 설렘, 그리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작은 용기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 천천히 자신을 소개했다. 오랫동안 책을 좋아해온 이, 막연히 책방을 꿈꾸기 시작한 이, 일상에 지친 마음을 달래고 싶은 이, 새로운 미래를 그리고 싶은 이...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어느새 마음이 뜨거워졌다. ‘이 사람들도 저마다의 삶 안에서 책을 품고, 조심스레 새로운 꿈을 꺼내 들고 있구나. 그리고 소중한 시간을 들여 내 앞에 앉아주었구나.’ 그 사실이 가슴 벅차게 고마웠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참가자 중 절반이 ‘책방지기’를 꿈꾸고 있었다는 점이다. 순간 깊이 망설였다. 현실을 감추고 응원만 할 수도 있었고, 혹은 너무 냉정하게 선을 그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준비해온 그대로 있는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다른 사람에게 ‘멋있어 보이고 싶은’ 마음에 책을 읽기 시작했던 순간, 고작 책을 읽기 시작했을 뿐인데 소중한 인연들이 이어졌던 시간, 다른 사람들도 책으로 연결되는 새로운 삶을 살아낼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독서모임을 운영해왔던 과정. 그리고 그 시간이 쌓여 결국 책방지기가 될 수밖에 없었던 선택.
무언가를 이룬 것 같은 만족감도 있었지만, 현실은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서점 매출이 단 한 번도 월 300만 원을 넘지 못했던 2023년. 손님이 한 명도 오지 않는 날도 있었다. 그래도 문을 열었다. 작은 변화들이 모여 매달 다양한 작가님들이 찾아오는 공간이 되었고, 어느 순간 월 매출 천만 원을 넘기면서 월세를 내고, 넉넉하진 않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된 2024년의 지금까지. 그 모든 과정을 솔직히 전했다.

북토크가 끝난 뒤,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분들을 바라보았다. '작가'라는 이름은 여전히 어색했지만, 한 분 한 분에게 "젊음은 미리 늙지 않는 것"이라는 문장을 손글씨로 적어드렸다. 故 구본형 작가가 나와 인연을 맺은 뒤 보내주었던 편지의 제목이었다. 그 문장은 내 삶의 긴 터널을 지나가는 동안 수없이 되뇌었던 말이다. 크레타를 열기로 결심했을 때도, 매일 아침 문을 열며 주저할 때도, 그 문장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오늘 이 자리에 온 누군가에게도, 이 문장이 오래도록 작은 버팀목이 되기를 바라며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적어드렸다.
책방을 운영한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매일 문을 열고, 책을 고르고, 사람을 맞이하고, 때로는 고요한 고독을 견뎌야 한다. 그 모든 과정을 지나며 나는 알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꿈이라 불리는 일을 먼저 걸어가는 사람으로서, 이 길이 쉽지는 않지만 분명 한 번쯤 걸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경험이 결국 나를, 그리고 크레타를 조금 더 단단하고 따뜻한 존재로 만들어주고 있다는 것을.
분명, 참여하신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고 싶어 준비했던 자리였지만, 이야기를 마친 뒤에 돌아보니, 결국 내게 가장 큰 힘이 되어준 시간이었다. 그날의 온기와 눈빛, 주고받은 말들과 작은 웃음들이 내 안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때로는 누군가를 위해 건넨 진심이, 가장 먼저 내 자신을 구원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무대 위에서, 책방 한켠에서, 우리는 서로의 작은 용기가 되어주었고, 그것만으로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해진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이따금 삶은 조심스런 꿈을 꺼내어, 가만히 이어붙이는 일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 사유와 자유의 시간골목에서 작은 서점을 운영하면서, 책과 사람이 만나 펼쳐지는 소소하지만 진솔하고, 일상적이지만 이상적인 이야기를 전하려 합니다.
* 글쓴이 - 강동훈부산 전포동에서 '크레타'라는 작지만 단단한 서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책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책을 읽게 만드는 사람이 되려 노력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책을 잘 파는 서점인이 꿈이자 목표입니다.
* 인스타그램 : www.instagram.com/bookspace.cre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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