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빠순이의 이야기 담아 영화계에 충격 안긴 99년생 덕후 감독
일그러진 팬심을 붙잡고 명작을 탄생시키다
<성덕> 오세연 감독 인터뷰
오빠를 사랑한 건 죄가 아니었습니다!
오빠가 죄를 지은 것도 제 탓이 아니었지만...어쩐지 제 탓인 거 같은 이유는... 왜죠?열렬히 사랑했고, 오빠의 눈에 들고 싶어 따라다녔고, 오빠의 자랑스러운 팬이 되고 싶어 열심히 살았는데... 덕질 5년 만에 돌아온 건 ‘실패한 덕후’였습니다.
영화 <성덕>은 어느 폭망한 팬의 이야기를 영화로 담아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영화 개봉 후 전국의 빠순이, 아니 팬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오세연 감독과 인터뷰했습니다.
만나기 전 상상했던 모습과 딱 맞는 성격을 가졌던 감독님. 정말 유쾌하고 재미있는 분이셨어요.
게다가 1999년생이라뇨. 아직 학생이라고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에 재학 중인 오세연 감독님은 과거 알아주는 정준영의 '성덕'이었습니다.
아픈 과거를 자꾸 들춰서 뭐 하냐고요? 2019년 뉴스에서 '단톡방 사건'이 터진 후 오세연 감독은 충격과 실망, 분노로 휩싸였지만 일그러진 팬심을 겨우 부여잡고 자신의 경험을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답니다. 그것도 휴학까지 하면서 말이죠.
자신의 아픔뿐만 아니라, 같은 슬픔을 겪었던 수많은 팬들의 간증, 그리고 아직도 구오빠 곁을 지키고 있는 남아 있는 팬들의 심정도 궁금했습니다. 그렇게 오 감독은 카메라를 들 수밖에 없었죠.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성덕>의 표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던 수많은 관객이 생각납니다.
이제부터, 피케팅의 주인공 오세연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키노라이츠 (이하 키노 🚦)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최고 화제작이었어요.
그동안 상도 받으셨고 여러 영화제에 초청받으셨던 걸로 알아요. 영화 개봉 소감이 어떠세요?
오세연 감독 (이하 오 감독 🎬)
“아직 실감이 잘 안 나고 떨려요. <성덕>은 누군가를 비난하고 욕하려고 만든 영화가 절대 아니에요. 오히려 팬이 주인공인 영화예요.
많은 관객분이 봐주셨으면 좋겠고, 특히 아직 남아 있는 팬들이 꼭 봐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키노 🚦
정말 좋아했었는데 범죄자가 되어버린 나의 최애.
왜 하필 그 사람을 좋아했을까 후회는 없었나요?
오 감독 🎬
“처음에는 분노하고 상처받았는데 지나고 보니 운명이다 싶었어요. 그 사람 때문에 지금의 가치관, 즐겨 듣는 노래, 사람 보는 눈이 형성되었으니까요.
자랑스러운 팬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전교 1등도 탈환했고, 서울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지키려고 공부도 열심히 해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갔죠. 게다가 이 경험을 살려 영화감독까지 되었으니 후회는 없어요.
다만 무대 위 서울 콘서트장에서 만날 줄 알았지, 법원에서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요. (ㅎㅎ)”
키노 🚦
그 사건 이후 국민들도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스스로 덕질 역사를 까발리고 실패한 덕후가 된 흑역사를 담으면서까지 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면서요?
오 감독 🎬
“주변에서 재미 삼아 경험을 영화로 만들어 보라는 말을 덥석 물어 버린 거예요.
덕질 역사 5년간 겪었던 일과 동병상련 팬들, 그리고 남아 있는 팬들의 존재가 묘하게 다가왔죠. 어떻게 그 사건을 접하고도 남아 있는 건지 궁금했어요.
저를 되돌아보고, 자가 치유도 하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영화에 담아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키노 🚦
그럼... 조심스러운 질문 하나 추가하겠습니다.
그분은 탈덕했지만 한 번 덕후는 영원한 덕후 아니겠어요?
덕질을 아예 끊으신 건 아닌지 궁금해요.
오 감독🎬
”요즘은 셀프덕질 중이에요. 제가 먼저 저를 좋아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저에게 덕질은 나보다 더 중요한 게 생기는 거였어요. 내가 나의 최애면 누군가를 좋아할 시간이 부족해져요. 누군가를 계속 좋아만 하다가 지금은 잠시 쉬는 중이에요.“
키노 🚦
영화에서 보면 웃픈 장면이 유독 많아요.
지금까지 모아온 자식 같은 굿즈를 떠나보내는 굿즈 장례식, 성덕사에 방문하고 종 치기, 기발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왔을까요?
오 감독 🎬
“성덕으로서, 성덕이란 영화를 성덕사에서 인터뷰하고 종도 쳐볼까? 이런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사실은 성덕대왕신종 종소리를 넣고 싶었죠.
전국의 성덕사 중 창원에 있는 성덕사로 결정했고, 제목이 성덕이니까 말장난 치다가 넣은 장면이었어요. 많은 분들이 그 부분을 재미있어하시더라고요. 덕후들의 고해성사처럼 해보자는 의도였어요.”
“굿즈 장례식 장면을 보면 정말 가슴 아프죠. 내가 이 아이를 얻기 위해 했던 과거가 스쳐 지나가고... 다행히 저는 청소년이었기에 돈 백만 원 선에서 끝났지. 제가 어른이었다면... 아마... (쿨럭)”
키노 🚦
20~30대 팬들의 인터뷰를 쭉 보다가 어머니와 사건의 최초 보도자인 박효실 기자가 나오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출연하게 된 계기도 궁금해요.
오 감독 🎬
“엄마도 어떤 분의 팬이었어요.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어둠 속에서 혼자 자판을 타닥거리며 팬카페에 글 남기는 모습을 지켜봤었죠.제 또래의 경험뿐만 아니라 확장된 팬심도 필요해서 출연해 달라고 했죠. 제 덕질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서포터까지 해준 사람이니까요.”
“박효실 기자가 처음에는 너무 미웠어요. 엉뚱한 사람을 이상하게 몰아간다면서요. 그 사건이 터지고 영화를 만들면서 자꾸만 떠올랐어요. 무서워서 어렵게 연락을 드렸는데 흔쾌히 답장을 주시더라고요.
따뜻한 환대에 오히려 감동했어요. 저 같으면 무시했겠죠. 그런데 "연락 해줘서 고맙다. 위로된다.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 달라. 인생의 한 챕터를 멋지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라면서 오히려 감사하다고 해주셨어요.
저를 위로하려고 만든 영화인데 더 큰 의미도 받아들여 주시니 영광이었습니다.”
키노 🚦
감독님의 팬클럽 ‘오덕’ 팬미팅을 성황리에 마쳤다는 소식 들었어요. 누군가의 팬이었는데 이제는 그 반대 자리에 계시네요.마음가짐이 남다르실 것 같아요.
오 감독 🎬
“팬미팅 때 진짜 놀랐어요. 저를 성덕으로 만들어준 한복을 입고 갔지요. 한복대여점에서 빌려 입고 갔는데 다들 너무 좋아해 주시는 거예요. 꼭 연예인이 된 기분이었어요.
기억에 남는 팬이 몇 분 계세요. 멀리 지방에서 오셨던 분, 군산서부터 유명한 빵을 사서 서울까지 오신 분, 다음에는 둘 다 성장해서 만나자고 해주시니 감동이었죠. 참, 수지와 구교환 배우를 좋아하는 팬이 저를 좋아해 주시는데 그분들과 제 공통점이 뭘까... 한참을 생각해 봤다니까요. (하하)
아무튼, 절 생각해 주시는 분들이 생긴 거잖아요. 감사하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키노 🚦
요즘 아이돌급 스케줄로 아주 바쁘다고 들었습니다. 학업과 개봉 두 마리 토끼를 잡고 계시네요. 기쁜 소식이 또 있다면서요?!
오 감독 🎬
“하하하. 제가 요즘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요.
10월 말쯤 저의 《성덕 일기》라는 책이 나와요. 영화를 재미있게 보셨다면 《성덕 일기》도 사랑해 주세요. 영화에서 못다 한 개인적인 이야기나, 영화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은 에세이랍니다.”
키노 🚦
재미있게도 오 감독은 ‘키노라이츠’와 구면이라고 합니다. 한국 사람은 세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란 말 진짜인가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은 인연인가 봅니다.
오 감독 🎬
“제가 고등학생 때였는데요. 나름 씨네필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던 때죠. 부산영화제에서 시민평론단으로 있었을 때 연락받은 적이 있어요. 그때 키노라이츠라는 사이트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
기자, 평론가, 작가, 유튜버, 인플루언서 등이 인증회원으로 있는 영화평가 앱이라고요.저보고 인증회원으로 참여하고 리뷰도 써달라는 제안을 받았었어요. 시간이 지나 키노라이츠와 인터뷰라니 정말 신기해요.”
키노 🚦
마지막으로 키노라이츠 유저에게 추천하고 싶은 ‘인생 영화’가 있으세요?
오 감독 🎬
“음... 인생 영화는 에드워드 양 감독의 <하나 그리고 둘>이에요. 요즘 들어서 유머 감각이 있는 영화가 훌륭한 영화임을 느끼고 있어요.
오즈 야스지로의 <안녕하세요>나 아녜스 바르다의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도 좋아해요. 아녜스 바르다 감독님을 너무 좋아해서 요기에 타투까지 했어요.
저는 다큐멘터리로 시작했지만 앞으로 극영화도 만들어 보고 싶어요. 앞으로 제 영화 또 나오면 많이 사랑해 주세요.”
<성덕>은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스타에게 배신 당한 팬의 자전적인 경험을 담은 영화입니다. 그로 인해 이어지는 슬픔, 분노, 인정, 성찰의 감정을 전달하죠. 덕질의 강제 종료에 머리가 얼얼해졌고, 남들 앞에 ‘한 때 그 사람을 사랑했다’라고 선뜻 드러내기 어려운 사연을 웃음으로 승화한 작품인데요. 과거 누군가를 미치도록 좋아했던 경험이 있다면, 러닝타임 동안 충분히 보상받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을 거예요.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해도, <성덕>은 '성장'을 주제로 충분히 재미있는 다큐멘터리입니다.혼자서 각본, 연출, 촬영, 편집, 출연까지 다 소화한 영혼을 갈아 넣어 만든 올해의 데뷔작. 빵빵 터지는 웃음 포인트 발랄한 톤앤매너와 사랑스러움이 가득한 영화입니다. <성덕>의 오세연 감독과의 유쾌한 인터뷰를 여기서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