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온도 -50℃ 공룡 능선 사고자, 구조자 모두 죽음 문턱에 [조난자 구한자]
"아름다운 곳에는 언제나 위험도 함께 있다Beauty and danger go hand in hand."
캐나다 재스퍼국립공원의 어느 절벽 끝에 있는 경고판이다. 나는 그 글을 읽으며 설악산 공룡능선을 떠올렸다. 그리고 선배 레인저들이 겪었던 절체절명의 구조 스토리가 떠올랐다. 그곳에서 있었던 22년 전의 불행한 사건과 레인저들의 사투死鬪를 기록해 본다.
온 국민이 등산객이라 할 만큼 산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멋지게 여기는 산 풍경은 어디일까? 국립공원에서 전문가들과 함께 선정한 '국립공원 100경'에서 1등 풍경은 설악산 신선대에서 바라본 공룡능선이다.
공룡의 척추뼈처럼 울퉁불퉁 솟아오른 바위봉우리들이 하얀 구름에 휘감겨 힘차게 용틀임하는 풍경이다. 시퍼런 동해바다 위로 꼿꼿하게 솟아오른 백두대간 능선에 서서 이 장관을 본 사람은 가슴이 뻥 뚫리는 '인생 감격'을 맛보고, '인생 샷'을 찍고, 그 감동을 가슴 깊이 새긴다. 그 감동은 늘 그의 가슴을 뛰게 만들고, 그를 다시 그곳으로 가게 한다.
그러나 그곳은 해발 1,200m를 넘나들며, 거친 돌길을 따라, 7~8개의 봉우리를 오르락내리락 해야 하는 고행苦行 길이다. 공룡능선 자체는 5.1km로서 짧지만, 어느 코스로 가든 등산의 시점에서 종점까지는 최소한 10시간이 넘는 기나긴 산행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은 짙은 구름과 안개, 세찬 바람과 비, 따가운 뙤약볕과 뜨거운 열기, 매서운 눈보라와 차가운 저온 등의 기상이 급변하는 곳이다. 등산로를 조금만 벗어나도 험악한 절벽과 암릉이 으르렁대는 그곳은 우리나라에서 안전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험지이다.
새벽 1시 30분 사고자들과 조우
2002년 1월 7일 저녁, 속초 시내에 상가 간판 400여 개가 파손되고 승용차 문을 열 수 없을 정도의 강풍이 들이닥친 날, 설악산국립공원의 몇몇 레인저들이 퇴근 후 가까운 음식점에서 모임을 갖고 있었다. 자리가 무르익을 저녁 7시경 공원사무소로부터 조난신고가 접수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순찰반장 A(당시 52세)를 비롯한 레인저들은 공원사무소로 급히 복귀했다. 조난 장소는 해발 1,200m의 마등령에서 1.7km 떨어진 공룡능선이었다. 한겨울의 공룡능선은 눈이 쌓여 얼어붙고, 오늘처럼 강풍이 불어대면 눈발이 날려 어디가 길인지 분간되지 않는 곳이었다. 그래서 조난사고가 많은 곳이었다.
A반장은 영하의 날씨에 강풍이 휘몰아치는 최악의 기상상황에서 출동을 해야 할지 망설였다. 늘 함께 구조 활동을 했던 여러 민간구조대에 연락했지만, 이런 악천후에서는 출동이 어렵다는 대답이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A반장은 오후 7시 30분 레인저 4명과 함께 마등령을 향해 길을 나섰다.
혹한에 대비한 완전무장을 해야 했었지만, 당시에는 제대로 된 장비와 복장이 부족해서 허름한 장비와 복장을 긁어모아 바쁘게 출동할 수밖에 없었다. 연락을 받고 '자원해서' 먼저 도착한 레인저들은 1분이라도 빨리 현장에 도착해야 한다는 급박함 때문에 자신들의 체력과 준비상태를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
비선대에서 마등령 정상까지 가는 길은 급경사 난코스로 유명하다. 평소 2시간 30분 걸리는 길이지만 눈이 쌓여 결빙되어 있었고, 캄캄한 밤에 바람이 세차 전진하기 쉽지 않았다.
온몸에 땀이 찼지만 잠시라도 쉬면 땀이 얼어붙어 레인저들의 체력이 뚝뚝 떨어졌다. 급기야 레인저 B가 마등령을 30분 앞둔 지점에서 몸 상태가 좋지 않자 A반장은 젊은 레인저 두 명에게 선발을 맡겨 빠른 시간 내에 사고자와 접촉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두 레인저가 마등령 정상에 오르자 사람이 날아갈 정도의 강풍이 몰아쳤다. 눈보라가 얼굴을 때려 고개를 제대로 들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하얀 눈밭에 달빛이 희미하게 비춰주고 있어 전방 식별은 가능했다. 두 레인저는 1시간쯤 강풍을 뚫고, 무릎까지 차는 눈길을 헤쳐 드디어 사고자 두 명과 만났다. 이때 시각이 새벽 1시 30분, 출동한 지 6시간 만이었다.
사고자 두 명은 바위틈에 웅크리고 앉아 최대한 강풍을 피하고 있었다. 30대 중반의 사고자 C는 복장이 든든해 상태가 썩 나쁘진 않았으나, 30대 초반의 사고자 D는 복장이 허술해 저체온증으로 이미 몸이 경직되고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다. 사고자 D는 "제발 살려주세요"라고 가냘프게 말했다. 두 레인저가 사고자들을 추슬러 일어서게 하고 길을 재촉했다.
레인저들의 부축으로 사고자 C는 걸어갔으나 D는 제대로 서지 못해 두 명의 레인저가 번갈아 업었다 내렸다 해야 했다. 나중에는 레인저들도 지쳐 눈길이 평편한 곳에서는 사고자 D의 상체를 부둥켜안고 뒷걸음으로 질질 끌고 갔다. 해발 1,200m의 고지대에서 혹한기의 한밤중 살을 에는 강풍에, 눈길·얼음길을 헤치며 탈진한 사람을 이동시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고, 무모한 구조작업이기도 했다.
한편, 선발대보다 늦게 마등령 삼거리에 도착한 A반장은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레인저 B와 다른 한 명의 레인저를 이곳에 대기시키고, 단독 이동을 하여 선발대와 사고자 2명을 만났다.
이때 사고자 D는 이미 몸이 심하게 굳어가는 상태였고, 사고자 C도 거의 탈진상태였으며, 이들을 구조해 온 레인저 두 명도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어서 이들을 따뜻한 곳으로 데려가야 했다. 그곳은 마등령에서 1.4km 거리에 있는 오세암이었다.
이들을 끌어당기고 뒤에서 밀며 새벽 3시경 마등령 삼거리에 도착한 A반장은 또 다른 상황에 직면했다. 이곳에 대기 중이던 레인저 B의 몸 상태가 매우 심각했다. 바람 세기와 기온을 체감 온도로 기록한 표에 따르면 당시 영하 50℃ 날씨였다. 그런 곳에서 30분 이상 버티고 있었으니 저체온증은 물론 전신에 동상 기운이 스며들고 있었다. "얌마, 너 왜 그래!" 말을 붙여도 레인저 B는 입이 얼어 말을 잘하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저체온증의 특성상 빠른 시간 내에 체온을 높이지 못하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A반장은 오세암에서 가까운 백담분소에 무전을 쳤다.
현재 상황을 알리고 긴급 지원을 요청했다. 이때 백담분소에서 무전을 받은 레인저의 증언에 의하면 "끊어질 듯 말 듯한 목소리로 A반장이 계속 울먹였다"고 한다. 그래서 공원사무소 직원들은 이들이 죽을 줄 알고 모두 울먹였다고 기억했다.
마등령 삼거리에서 오세암까지는 불과 1.4㎞의 짧은 거리. 그러나 길이 없었다. 강풍이 불어 휘날린 눈보라가 길을 덮고 새로운 지형을 만들어 길을 분간할 수 없었다. 눈은 허벅지에서 허리까지 찰 정도로 깊었다.
A반장은 대략 방향을 가늠해 러셀을 해 나갔으나, 1~2m 가서 길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다시 돌아와, 원점에서 다시 러셀을 하는 식이었다. 이렇게 시간이 지체되는 동안 사고자 D와 레인저 B의 몸 상태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사고자 D는 사람이 붙잡지 않으면 쓰러져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정신 감각도 신체 감각도 없었다. 레인저 B는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간신히 끌려오는 상태였다. 사고자 C와 다른 레인저들도 거의 탈진에 이르고 있었다.
오세암을 찾아서 대략 1시간을 사투를 벌이며 길을 뚫던 A반장이 문득 뒤돌아보니, 바로 뒤에 일행들이 있는데, 저 멀리서 헤드랜턴 불빛 하나가 희미하게 보였다. 그 불빛은 움직이지 않았다. 레인저 B가 일행을 따라붙지 못하고 뒤쳐진 것이다.
그곳으로 되돌아가 그의 상태를 들여다보니 눈을 거의 감은 채 얼굴이 하얗게 얼어서 서리로 뒤덮여 있었다. A반장이 장갑을 벗어 딱딱하게 굳어가는 얼굴을 마구 비벼주니 간신히 눈을 뜨고 앞이 보인다고 희미하게 대답했다.
여기서 다시 50m쯤을 내려가 상황을 보니 사고자 D의 몸은 이제 완전히 굳어서 레인저들이 어쩌지 못하고 부둥켜안고 누워 있는 상태였다. 함께 널브러져 있는 일행들도 모두 심각하게 위험한 상태에 다다랐다고 판단되었다. 더 이상 지체하면 여기 있는 모두의 생명을 보장할 수 없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들을 모두 끌고 갈 여력이 없었다. 여기서 사고자 D와의 동행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레인저 B는 사력을 다해 마지막 신음소리를 냈다.
"나는 틀렸다. 너 먼저 가라…."
이에 A반장은 레인저 B의 얼굴을 마구 때리며 "정신 차리라!"고 울부짖으며 그를 끌어당겼다. 다시 1시간쯤 정신없이 눈더미를 헤치고 내려가 오세암 근처까지 왔을 때 레인저 B는 아무리 흔들고 때려도 감각이 없는 상태였다. 다른 일행들 역시 사람인지 송장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처참한 몰골이었다.
마치 신처럼 느껴진 젊은이 두 명
드디어 오세암 전방 150m 지점에서 오세암으로부터 올라온 젊은이 두 명을 만났다. 사람이 아니라 신神을 만난 것 같았다. 백담분소에서 오세암에 연락해 누구든지 제발 올라가 달라고 사정한 것이다. 이제 살았다! 그들이 가져온 뜨거운 물병을 수건에 말아 레인저 B의 가슴에 밀어 넣었다. 그러나 이 와중에 오세암에서 올라온 젊은이 중 한 명이 다리에 쥐가 나 A반장은 그 마저도 끌고 내려와야 했다.
아침 6시. 마등령 삼거리에서 출발한 지 3시간 만에, 구조 출동에 나선 지 10시간 30분 만에 오세암의 뜨거운 방에 들어가 너 나 할 것 없이 방바닥에 벌렁 누워버렸다. A반장은 레인저 B의 몸에 얼어붙은 옷을 나이프로 잘라 옷을 벗겼다. 그리고 자신의 웃통을 벗고 이불을 덮으며 레인저 B를 끌어안았다.
차가운 몸에 자신의 몸을 비비며 울음 반 기도 반으로 울먹인 지 20분쯤 지났을 때, 드디어 레인저 B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이며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이 축구공처럼 빵빵하게 부풀어 오르며 하염없이 진물이 흘렀다. 얼었던 피부가 녹고 있는 것이었다. 이윽고 가냘픈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레인저 B가 살았다고 다른 레인저들에게 알리니 모두들 눈물을 흘리며 감격스러워했다.
아침 8시쯤, '선발 구조대를 구조하기 위한' 2차 구조대가 백담분소로부터 오세암에 도착했고, 3차 구조대가 비선대로부터 마등령을 거쳐 12시쯤 오세암에 도착했다. 이들에 의해 사고자 C, 레인저 B, A반장 등의 선발대가 오후 5시쯤, 고인이 된 사고자 D가 오후 7시쯤 백담분소에 도착함으로써 이틀에 걸친 구조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현재까지 보관되어 있는 당시의 구조일지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 사고자 C, D는 서로 모르는 사이로 양폭대피소에서 만나 희운각까지 함께 올랐다. 공룡능선은 위험하니 비선대로 내려가라는 희운각대피소 관리인의 말을 듣지 않고 오후 1시쯤 공룡능선으로 올라갔다. 꽁꽁 얼어붙은 길과 강풍 때문에 쉽게 전진하지 못하고, 날이 어두워 길을 찾지 못하게 되자 오후 6시30분쯤 119로 구조요청 신고를 했다.
사고 당일 현지기온은 영하 20~25℃, 풍속은 20~25m/sec였다. 한파 경보와 강풍 경보에 동시에 해당되는 기상이었다. 풍속 1m당 1.6℃씩 체감기온이 내려가는 것을 감안하면 당시의 체감온도는 영하 52~65℃였다. 구조에 동원된 인원은 총 56명이었다.
당시 경찰에서는 사고자 D가 사망한 것에 대해 의문을 가졌으나 사고자 C가 경위를 정확하게 설명해 문제 삼지 않았다. 레인저 B는 한 달간 병원치료 후 업무에 복귀했다. 다른 레인저들도 귀와 손가락에 동상을 입어 한동안 고생했다.
그들에게는 그때의 악몽이 가끔 꿈에 나타났고, 환청幻聽에 의한 정신질환까지 있었다고 한다. 무리한 산행으로 귀중한 생명을 잃고, 구조자까지 지옥에 다녀온 절체절명의 사건이었다. 국립공원에서는 이 사건 이후 구조 전문가들로 구성된 안전관리반을 운영하고 있다.
A반장과 레인저 B는 동갑으로 함께 정년퇴임을 했다. 필자는 그 퇴임식에서 '생사를 함께한 두 레인저'의 앞날을 축복하는 기념사를 했다.
* 이 내용은 당시의 구조일지와 구조 참여자 2명의 회고를 정리해 <설악산과의 대화(신용석, 수문출판사)>에 수록한 것을 재정리한 것이다.
월간산 10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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