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IA 타이거즈 팬들 사이에서 이의리는 '기대 반 걱정 반'의 존재였다. 2022~2023년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올리며 '양현종의 후계자'로 불렸지만, 팔꿈치 수술 후 복귀한 뒤로는 기복이 심했다. 올 시즌 첫 세 경기에서 2이닝 4실점, 2⅔이닝 3실점, 4이닝 4실점. 팬들이 "이의리 선발이라길래 또 졌다 생각했다"고 말할 만했다.
그런데 17일 잠실 두산전. 5이닝 5피안타 무실점. 삼진 8개. 직구 최고 구속 156km. 이 정도면 폰세가 부럽지 않다.
좌완 최고 구속 156km, "미트를 뚫어버리겠다"

이의리의 직구가 달랐다. 1회 던진 14구 중 12구가 직구였다. 포수 미트가 쩌렁쩌렁 울렸다. 최고 구속 155.9km는 올 시즌 KBO 좌완 투수 중 최고 기록이다. 배찬승(삼성·153.2km), 베니지아노(SSG·152.7km)를 가볍게 넘어섰다.

비결은 마인드셋이었다. 이의리는 경기 전 불펜에서 성영탁에게 물었다. "요즘 어떻게 던지냐?" 성영탁의 대답은 단순했다. "미트를 뚫는다."
이의리는 "그 말을 듣고 내가 강하게 던지려는 마음이 부족했다고 느꼈다"며 "오늘은 미트를 뚫어버리겠다고 생각하고 던졌더니 구속이 나왔다"고 말했다. 힘을 빼려고 하니까 오히려 팔 스윙이 잘 됐다고도 덧붙였다.
직구-슬라이더 투피칭으로 두산 요리

이날 이의리는 91구를 던졌다. 직구 58개, 슬라이더 28개. 체인지업 3개, 커브 2개. 사실상 투피칭이었다. 그런데도 두산 타자들은 속수무책이었다. 2~3회 투구 수가 다소 늘어나긴 했지만, 위기 때마다 삼진으로 끊어냈다.

두산은 좌완 이의리를 상대하기 위해 우타자 위주로 라인업을 짰다. 1번 타자로 나선 건 전 KIA 동료 박찬호. 이의리는 "찬호 형은 잘 치는 타자고, 어떻게 치는지 가장 많이 봐왔다. 얼굴을 안 보려고 최대한 의식했다"고 말했다. 안타 하나를 맞긴 했지만, "찬호 형이 잘 친 거"라며 웃어 보였다.
"진짜 이의리, 윤도현은 포기가 안 되네요"

경기 후 야구 커뮤니티는 이의리 이야기로 뒤덮였다. "이의리 오늘 8K 모음.gif", "이의리 156 진짜였네ㅋㅋㅋ", "제구 잡힌 이의리는 슈어져고(슈퍼스타가 되어 져가고 있다)". 팬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진짜 이의리, 윤도현은 포기가 안 되네요"라는 글에는 추천이 쏟아졌다. 2021년 1차 지명으로 입단해 바로 두 자릿수 승수를 찍던 그 모습이 돌아온 것 같다는 기대감이다. 2024년 6월 팔꿈치 수술 후 1년간의 재활을 거쳐 복귀한 이의리에게 이날 승리는 단순한 1승 이상의 의미가 있다.
김진욱 보며 자극, "제가 좀 더 올라가겠다"

이의리는 2021년 입단 동기인 롯데 김진욱을 언급했다. 김진욱은 올 시즌 3경기 19⅓이닝 2승 무패로 맹활약 중이다.

"진짜 열심히 했는데 잘 안 풀리다 보니까 본인도 답답했을 것이다. 지금 보상받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고, 보면서 많이 배우려고 한다"고 말했다. 맞대결이 기대된다는 질문에는 "제가 좀 더 올라가겠다"고 당차게 답했다.
KIA 8연승, 단독 4위로 점프

이날 승리로 KIA는 8연승을 달렸다. 2024년 7월 이후 623일 만의 8연승이다. 시즌 성적 10승 7패, 단독 4위. 1위 삼성(11승 1무 4패)과는 2경기 차다.
이의리의 시즌 첫 승은 지난해 9월 13일 LG전 이후 무려 216일 만이다. 오늘 같은 투구만 유지된다면, 지난 스토브리그에 떠난 폰세가 아쉽지 않다. 팬들 말마따나 "오늘만큼만 던져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