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속을 푼다”, “몸을 데운다”... 같고도 다른 동서양의 음식철학

조수진 (주)일미푸드 대표 2025. 12. 15.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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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진의 K푸드 잉글리시⑩
얼큰한 해장국 찾는 한국인, 프라이드치킨과 옥수수빵 찾는 미국인
몸과 영혼을 달래주는 집밥과 Comfort Food는 통한다
조수진 일미푸드 대표, 조수진영어연구소 소장

배달 음식에 익숙해진 식문화 속에서도, 추운 겨울이 되면 따뜻한 ‘집밥’이 다시 생각나기 마련이다. ‘집밥’은 단순히 집에서 하는 밥이 아니라 엄마의 ‘손맛’이 들어간, 나를 위로해 주는 음식이기도 하다.

소울메이트(soulmate)라는 말이 익숙해져서인지, “나의 소울 푸드는 떡볶이야”처럼 소울 푸드(soul food)를 ‘나를 위로해 주는 음식’ 정도로 오해해 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소울 푸드는 미국 남부 흑인들의 전통 가정식으로, 집에서 쉽게 해 먹던 프라이드치킨(fried chicken)이나 옥수수빵(cornbread)을 의미한다.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음식을 말하고 싶다면 soul food 대신 ‘comfort food(컴포트 푸드)’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이는 슬프거나 아플 때, 특히 요즘처럼 추운 날씨에는 어머니가 해 주던 집밥처럼 마음과 영혼을 달래주는 음식을 뜻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위로’를 목적으로 하면서도 동양과 서양이 떠올리는 음식은 서로 꽤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는 따뜻한 국물을 떠 먹거나 운동을 한 후에 “몸이 풀린다”라는 표현을 쓴다. 영어 표현에도 “This soup warms me up(이 수프가 나를 따뜻하게 한다)”, “My body’s warmed up now(몸이 풀렸어)”와 같이 ‘몸이 풀린다‘에 warm up을 사용하는 점이 유사하다.

몸을 풀게 하는 따뜻한 국물과 관련된 흥미로운 단어가 하나 있다. 우리가 외식할 때 가는 ‘restaurant(레스토랑)’의 어원이 바로 이 ‘국물’에서 시작됐다. 18세기 프랑스에서 ‘restaurant’은 장소가 아니라 ‘음식의 이름’이었다. 프랑스어 ‘restaurer(회복하다, 복구하다)’에서 유래한 말로, 기력이 쇠한 사람들을 위해 고기와 채소를 푹 고아 만든 ‘원기 회복용 진한 고기 수프(Bouillon)’를 뜻했으며 이 수프를 파는 곳이 인기를 끌면서, 점차 음식을 파는 장소 자체를 ‘restaurant’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레스토랑의 본질은 화려한 인테리어나 비싼 메뉴가 아니라 ‘회복( (restoration)’을 의미한다.

‘회복’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선택하는 음식은 동서양이 사뭇 다르다. 한국인이 감기에 걸리면 고춧가루 띄운 뜨거운 콩나물국을 찾지만, 서양인들은 Chicken Noodle Soup(치킨 누들 수프)를 먹는다. 숙취 해소를 위한 음식도 동서양이 다르다. 한국인은 얼큰한 해장국을 찾지만, 미국인들은 기름진 피자나 베이컨을 선택한다. 또한, 배탈이 났을 때 한국에서는 따뜻한 미음이나 물김치를 먹지만, 서양에서는 차가운 진저에일(Ginger Ale)과 소금 크래커를 권한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음식을 대하는 철학의 차이에서 유래한 것 같다. 동양 문화권, 특히 한국은 이열치열(以熱治熱)과 한의학적 균형을 중시한다. 더울 때 더운 음식을 먹어 땀을 내고, 추울 때는 뜨거운 국물로 체온을 높이며, 몸속의 기운을 조화롭게 만드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라고 믿는다. 반면, 서양은 ‘comfort food(컴포트 푸드)’, 즉 심리적 위안에 초점을 맞춘다. 어릴 적 엄마가 해주던 음식,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익숙한 맛이 곧 치유의 음식이 되는 것이다. 한국의 해장국이 ‘뜨거운 국물로 속을 풀어낸다’는 물리적 회복에 집중한다면, 서양의 햄버거나 맥앤치즈(mac ’n’ cheese)는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감정적 회복을 추구하는 듯하다. 같은 ‘회복’이라는 단어도, 동양에서는 몸의 균형(balance)을, 서양에서는 마음의 위안(comfort)을 찾는다는 것이 다소 다르다.

추운 날씨와 함께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찾아오면, 송년회나 파티 자리에서는 “Make a toast!(건배하자)”라는 말과 함께 잔을 부딪친다. 토스트는 아침에 먹는 빵인데 어떻게 ‘건배하다’라는 의미가 되었을까? 과거 16~17세기 영국의 와인이나 맥주는 보관 기술이 좋지 않아 맛이 시큼하거나 쓴 경우가 많았다. 이때 맛을 좋게 하기 위해 향신료를 뿌려 구운 빵(toast) 조각을 술잔에 띄웠고, 이 구운 빵이 술의 나쁜 맛을 흡수하도록 하였다. 잔을 비운 후 마지막에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축복을 받는다고 여겼고, 이것이 오늘날 상대의 건강과 행운을 빌며 잔을 드는 ‘Toast’ 문화로 정착된 것이다.

빵과 관련된 또 다른 흥미로운 단어가 있다. companion(동료, 동행)이다. 라틴어에서 ‘Com’은 ‘함께(Together)’, ‘Panis’는 ‘빵(Bread)’을 뜻한다. 즉, 컴패니언(companion)의 원래 의미는 “빵을 같이 나눠 먹는 사람”이다. 서양 문화권에서 빵은 생존을 위한 주식이었다. 빵을 나눈다는 것은 나의 생명을 나누고, 식탁의 온기를 공유하는 가장 친밀한 사이임을 증명하는 것이며, 이는 회사를 뜻하는 ‘company’까지로 확장됐다.

동양에서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정(情)’을 나누는 행위이고, 서양에서 빵을 나눈다는 것은 ‘신뢰(trust)’를 쌓는 행위이다. 표현은 다소 다르지만, 음식을 통해 인간관계의 온기를 나눈다는 본질은 같다. SNS 속의 화려한 음식 사진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 앞의 소박한 빵 한 조각 혹은 밥 한 숟가락을 ‘누구와(With Whom)’ 먹느냐가 식탁의 온도를 결정하는 점은 동서양 모두 같다.

매서운 추위가 예고된 이번 겨울, 화려한 레스토랑(restaurant)을 찾아 헤매기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둘러앉아 서로의 방식으로 몸과 마음을 회복(restore)시키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차가운 술잔만 부딪치기보다 얼어붙은 관계를 녹이는 따뜻한 덕담 한 조각을 술잔에 띄우며(toast), 단순히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것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따뜻한 동행(companion)의 시간으로 채워보는 건 어떨까. 가장 맛있는 겨울 음식은, ‘함께 먹는 밥’이니까. Bon Appét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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