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자 운전면허 반납…농촌에선 일상과 생계 달린 문제”
병원 등 이동 때 차량운행 필수
일회성 현금 지원은 비효율적
공공 교통수단 지원 확대 절실
자동제어 등 첨단장치 보급도


“운전면허를 반납하라는 소리를 들으면 어떻냐고요? 어느 정도 수긍은 하지만 막막합니다. 농촌에선 차가 없으면 생계를 이어나갈 수조차 없거든요.”
전남 나주시 노안면 학산리에서 미나리농사를 짓는 김종길씨(73)에게 1t짜리 트럭은 소중한 이동수단이다. 시설하우스까지 나가거나, 무거운 농자재를 실어 나르는 일 모두 이 차 덕분에 가능하다.
그는 “버스 배차시간이 긴 데다 택시를 부르면 왕복에 5만원은 넘는다”며 “장 보러 갈 때도, 병원을 갈 때도 자가용이 없는 사람들은 암담하기 그지없다”고 토로했다.
최근 서울 지하철 시청역 인근 도로에서 발생한 역주행 사고를 계기로 고령 운전자의 운전면허 반납을 독려해야 한다는 여론이 다시 거세지고 있지만 농촌에서는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크다. 생활의 불편함을 넘어서 생계까지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면허증을 갱신하기 위해 전남 나주 운전면허시험장을 찾은 김모씨(81·전남 무안군 현경면)는 “운전하지 말라는 것은 농사짓지 말고 굶어 죽으라는 말과 같은 이치”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물론 안전을 위해서는 고령 운전자의 면허 반납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운전 경력이 50년이 넘었다는 고관용씨(73·노안면 학산리)는 “저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을 떠올렸을 때 고령 운전자는 인지 능력이 떨어져 돌발상황에 대처하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며 “모두의 안전을 위해선 운전면허 반납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에 따르면 65세 이상 운전자가 낸 사고 건수는 2019년 3만3139건에서 2023년 3만9614건으로 늘었다.
하지만 실제 면허 반납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전남도의 경우 65세 이상 운전면허증 반납자는 2023년 기준 3512명으로 전체(19만5588명)의 1.8% 수준에 그쳤다. 면허 반납 후가 막막하기 때문이다.
박형주씨(81·노안면 학산리)도 “시간이 갈수록 운전하기가 어려워져 내년엔 반납할 생각이지만, 반납 이후가 걱정”이라며 “아내 건강 때문에 광주광역시에 있는 대형 병원에 정기적으로 방문해야 하는데 바로 가는 버스가 없어 쉽지 않다”고 한숨을 쉬었다.
문제는 고령 운전자수가 급증한다는 점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는 2022년 438만명에서, 2025년에는 498만명, 2040년에는 1316만명으로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지방자치단체 등이 보다 적극적으로 효율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데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각 지자체들이 현금을 지원하며 고령자 면허 반납을 독려하고 있지만 지원액이 10만~50만원으로 크지 않은 데다 일회성 지원이어서 효율적인 유인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박씨는 “교통 지원금이 정기적으로 나오거나 100원 택시를 횟수 제한 없이 자주 이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면 운전면허 반납을 적극적으로 고려해볼 것 같다”고 밝혔다.
한이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대안적인 교통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며 “현재 지자체별로 시행하는 수요응답형 교통서비스, 100원 택시 지원을 가용 예산 범위 안에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고령 운전자의 교통복지를 향상하기 위해 제도적·기술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해외에선 첨단기술 도입에 적극적이다. 유럽연합(EU)은 2018년부터 자동비상제동장치(AEBS) 장착을 강제했으며, 올해부턴 모든 신차에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장착을 의무화했다. 일본도 2017년 AEBS 등이 탑재된 ‘안전운전서포트 카’를 보급하는 데 힘쓰고 있다.
전남도도 지난해부터 65세 이상 운전자를 대상으로 ‘차선 이탈 방지 경보’ 기기를 무료로 보급하고 있다. 차량 앞유리에 부착한 기기의 레이더를 통해 차선을 이탈했을 때, 앞차와 간격이 가까울 때 경보음을 울리는 장치다.
한 연구위원은 “고령화로 발생한 여러 변화는 도시보다 농촌에서 10년 일찍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농촌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보여주는 시험대”라며 “농촌에서 장기적인 대응책을 마련하고 시행해본다면, 향후 전국적으로 비슷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더욱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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