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일의 노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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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스 아일을 기억하던 그때 그 사람들은 지금의 김아일이 선보이는 음악을 상상이나 했을까? 오랜 시간 정체 없이 고민과 행동을 이어온 그의 음악은 단 한 명의 행보이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무브먼트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역설적이지만 그만큼 김아일의 새 앨범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데에 그의 긴 커리어는 어쩌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가 랩과 보컬을 오갔던 시간은 있었지만, 사랑을 회화적으로 보여준 이 작품의 아름다움은 동시성의 측면에서 그 어떤 작품보다 가장 앞장서 있다.” 음악 칼럼니스트 박준우가 말했다.
김아일이 8년 만에 선보인 두 번째 정규 앨범 <some hearts are for two>를 들었을 때, 내면 깊숙이 묵혀둔 감정들이 되살아났다. 잊고 살았던 낭만과 위로의 감정이다. 몇 개의 이미지와 상황도 떠올랐다. 닳아서 부서진 나무 서랍을 열고 발견한 색 바랜 액자. 그 액자에 담긴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 당장이라도 그에게 안기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슬픔. <some hearts are for two>처럼 따뜻한 앨범은 오랜만이다. 11개의 트랙으로 채워졌고 구성이 아주 농도 짙다. 6분 30초간 이어지는 인트로 곡 ‘Holy’를 시작으로 경쾌하거나 낮고 묵직한 트랙들을 넘나들다 비로소 마지막 트랙 ‘Stompyard’가 피날레를 장식한다. 긴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다. 다 듣고 나면 진이 빠진다. 그만큼 이 앨범은 집중할 수밖에 없는 소리와 가사로 구성됐다.
<some hearts are for two>를 8년 만에 내놓기까지 김아일에겐 격동의 순간이 있었다. 소속 회사를 두 번 옮겼고 자기 의심의 과정을 겪었다. “내가 원하는 음악을 생각한 대로 만들 수 있게 됐어요. 사용할 수 있는 음악적 요소도 다양해졌죠. 근데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음악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소리만 구현하는 게 아닌가? 내 음악이 뭘까? 상투적이지만 진지한 고민이 이어졌죠.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시도를 하는 상황이 발생했고요.” 당시 김아일은 강한 힙합과 대중성이 가미된 음악 사이에서 선택을 고민했다. 그때 탄생한 곡이 EP 앨범 <Elbow>의 ‘Mango’와 프로듀서 비니셔스와 작업한 ‘슈슈슈’다.
김아일에게 지금은 고민이 해소되었을지 물었다. “당시 했던 고민은 ‘지속적으로 다양한 노래로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 강박을 놓으니까 괜찮아졌어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으면 하지 않아도 되더라고요.” 그는 이전에는 힙합을 기반으로 신선한 소리를 선보여왔다. 하지만 <some hearts are for two>에는 멜로디 위주의 곡이 대부분이다. 힙합이 아닌 얼터너티브 인디에 치우친 것만 보아도 고민을 타파한 것이 느껴졌다.
“이 앨범을 만들던 시기가 코로나19가 창궐하고 딱 1년 뒤예요. 처음엔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이 앨범 작업을 시작했어요. 슬픈 감정으로 만들었죠. 작업하면서 다른 친구들을 초대해 들려줬고 공통적으로 돌아온 피드백이 ‘위로’였어요. 앨범을 만들 때 가졌던 의도를 친구들이 느낀 것 같았죠. 나를 모르는 사람들도 이 앨범을 듣고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겠다고 확신했어요.” 그렇게 <some hearts are for two>가 세상에 나왔다.



촘촘하게 쌓아 올린 트랙들
인트로 곡 ‘Holy’ 작업 과정에도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 ‘Holy’ 작곡은 야마하 빈티지 신시사이저로 시작했어요. 전문가용보다는 어린이 장난감에 가까운 악기죠. 그 악기를 가지고 놀다가 즉흥적으로 떠오른 코드들을 연주했어요. 그러자 아일 형이 녹음 버튼을 누르고 멜로디를 불렀죠. 이때 탄생한 가이드 곡에 가사를 입힌 게 지금의 ‘Holy’예요.” 야마하 빈티지 신시사이저는 주요 기능이 없고 내장된 소리만 사용할 수 있는 악기다. 낸시보이는 그 악기가 주는 질감이 따뜻하면서도 신비롭다고 말했다. 악기 자체에서 발생되는 노이즈도 있단다. 낸시보이는 소리를 하나하나 들어보며 느껴지는 이미지를 오르간과 혼 계열의 소리들로 연주했다고 전했다.
이 악기는 4번 트랙 ‘Gene’s song’에서도 사용됐다. ‘Gene’s song’에 대한 이야기는 김아일이 이어갔다. “주변의 소리를 담았어요. 약통을 손에 든 채 박수를 치기도 했죠. 그런 특정 소리들을 샘플로 받아서 얹으면 너무 깔끔하게 들리거든요. 그래서 직접 일상의 소리들을 녹음했죠.” ‘Gene’s song’의 엔지니어 앱마는 녹음 당시 ‘슈어 SM7B’ 마이크를 식초에 담그기도 했다. “마이크 출력 커넥터 부분과 얇은 막인 다이어프램을 제외한 파트들만 담갔습니다. 칼로 케이블에 상처를 내 식초에 담가 산화시켰죠. 출력되는 소리를 변화시키려는 목적이었어요. 대부분의 경우 고역대가 감쇄되는 현상이 두드러지는데요. 감쇄된 고역은 오래된 타스캠 믹서의 이퀄라이저로 보완했습니다.”
9번 트랙 ‘Waterfall’에 대해선 프로듀서 짐조니가 말했다. “물에 잠겨 감각이 투명해지는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처음에 낸시보이와 작업실에서 이것저것 시도해봤죠. 베이스 기타의 저음은 너무 선명해서 물에 잠긴 느낌을 구현하기 힘들었어요. 그러다 문득 소리가 잘 울리는 할로바디 기타가 떠올랐죠. 녹음 후 기타 소리를 한 옥타브 내리는 과정을 거쳤더니, 물에 잠긴 듯한 소리를 녹음할 수 있었어요.” 이어서 김아일이 ‘Waterfall’의 작업 영감에 대해 말했다. “분해되기 위해 태어남을 뜻하는 제목의 그림 ‘Born to be decomposed’를 보고 만든 곡이에요. 그 문장에서 떠오르는 장면을 계속 마인드맵 하면서 디테일한 순간을 찾았죠. 그런 식의 작업 과정을 자주 거쳐요. 그러면 경험에 대한 팩트 위주의 설명이 아니라, 감상과 경험의 경계가 모호하게 표현된 음악이 나오죠.”

실재와 초현실을 쫓다
음악적 고민
세상의 빛을 보다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클래식 같은 앨범 <some hearts are for two>는 어떻게 듣는 게 좋을까? 트랙을 순서대로 듣는 것만이 훌륭한 방법일까? “제 의도대로라면 순서대로 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섞어 들으신다면 마지막 트랙인 ‘Stompyard’를 1번으로 듣길 추천합니다. 10번 트랙 ‘nova’가 자장가 같은 곡이어서 마지막으로 들어도 훌륭하기 때문이죠.” 이어서 ‘Stompyard’가 마지막 트랙으로 선정된 이유에 대해 말했다. “이 앨범은 애초에 바이닐로 만들려고 했어요. 그래서 A와 B 사이드를 정해뒀죠. B사이드는 7번 트랙 ‘Pt.2’로 시작돼요. 마지막엔 자기를 혐오하는 마음이랑 싸우는 장면으로 끝나길 바랐어요. 그래서 마지막 트랙을 고를 때 신중했고요. 결국 자기 불확신과 맞서 싸우는 내용인 ‘Stompyard’가 11번 트랙이 된 거죠.”


“정말로 ‘사랑스러운’ 내용의 대중음악을 집어야 한다면<some hearts are for two>에 대한 이야길 하고 싶어요.김아일의 가사가 사랑에 대해 말한다는 게 아니라,그의 소리가 투박하게나마 사랑의 모양을 묘사하려는 아기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by 김한주(밴드 실리카겔)
김아일의 창작 방식
아름다운 음악이란
A-side
세상이 거대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 순간, 사랑하는 사람과 안으면 위로를 얻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 집에 왔을 때, 반가워서 짐을 바닥에 내팽개치면서 포옹하는 장면을 그린 곡이다.
2. Breaking Down
그저 내버려지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 좋아하고 편안한 사람들만 만나는 게 힘들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 자신이 다 무너지고 나면 좋아하는 사람들과만 시간을 보내고 싶어진다. 그들은 내가 무너질 때 아무 말 없이 내버려두기 때문이다.
3. 0728 freestyle
나는 나가는 걸 귀찮게 여기고 약속 시간도 한 시간씩 늦는 사람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 앞에선 달라지는 나를 발견하고 쓴 곡이다. 내가 있는 곳으로 출발한다는 연락을 받으면 오히려 기뻐지는 사랑스러운 관계에 대한 내용이다.
4. Gene’s song
세상에서 소외받는 사람들을 초대해 함께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계속된 여행의 끝에 따뜻한 아침이 기다리고 있듯 안온한 곡이다.
5. BALA
그간 지속적으로 꿈에 관한 이야기를 노래에 담으려 시도해왔고, 이 곡이 꿈에 관한 노래 중 하나다. 판타지로 가득하고 초현실적인 이미지가 떠오르도록 만들었다.
6. some hearts are for two
친구와 자갈밭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본 경험을 그려냈다. 그 경험은 초현실보다 더 초현실적인 상황이었다. 그만큼 평화로웠고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B-side
주체를 갖추기 전에 문화의 파편적인 모습을 받아들이면서 내가 겪게 된 일들에 대한 이야기다. 뒷부분에서는 ‘전문성’이라는 것의 덧없음을 시적으로 담아보려 했다.
8. SARANG-EULO
3년 만에 작업한 곡이다. 내면에 있는 어둠과 부정적인 기운을 방 문고리에 걸어두고 오라는 내용이다. 아늑한 방 안으로 들어와 고민 없이 편하게 잠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9. Waterfall
사랑하는 친구와 함께 침대에 누워 온기를 나누다가 그대로 녹아서 죽는 장면을 상상하며 만들었다. 세상에 용기와 사랑을 남긴 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떠나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
10. nova
‘사의 찬미’가 영감이 된, 자장가 같은 곡이다. 자장가를 들었을 때 편안해지는 마음을 안고 걱정 없이 잠들기를 바란다.
11. Stompyard
자기 혐오, 자기 불확신과 맞서 싸우는 내용이다. 발을 쿵쿵 구르는 듯한 드럼 사운드를 가미해 비장하게 걸어가는 이미지가 떠오르도록 만들었다.
Editor : 정소진 | Photography : 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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