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 주의회 선거, 민주주의 도착 전에 극우 정당이 휩쓸었다
지난 9월 독일의 ‘신연방’ 지역에 위치한 다섯 개 주 가운데 세 곳에서 주의회 선거가 치러졌다. 독일의 통일은 우리가 서독이라고 부른 독일연방공화국에 동독이라고 부른 독일민주주의공화국의 영토가 편입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 이후 옛 동독 지역은 새롭게 독일연방공화국에 편입된 지역이라는 의미에서 ‘신연방’이라 불리며, 옛 서독 지역은 ‘구연방’이라 일컬어진다. 이번 선거는 통일 이후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신연방 지역에 독일연방공화국의 민주주의가 자리 잡지 못했음을 확인하게 해주는 사건으로 평가되었다. 극우 정당의 강세와 기존 자유주의 정당의 약세는 신연방 지역을 구연방과 확연히 구분하는 특징이 되었다.
9월1일에는 튀링겐주와 작센주에서, 9월22일에는 브란덴부르크주에서 선거가 열렸다. 선거 결과는 예상한 것처럼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독일대안당)’의 강세와 신생 정당인 자라바겐크네히트동맹(BSW)의 약진으로 나타났다. 좌파당에서 분리해 나온 자라바겐크네히트동맹은 좌파 포퓰리즘 정당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경제 정책은 좌파이지만 이민자 정책에 대해서는 보수적 입장을 갖고 있어 이민자 수 제한과 불법 이민자에 대한 국경 통제 강화 등을 주장한다.
독일대안당은 튀링겐주에서는 직전 선거보다 9%포인트 높은 32.8%를 득표해 1위를 차지했다. 독일연방공화국 역사상 극우 정당이 주의회 선거에서 1위를 차지한 최초의 사건이었다. 작센주에서는 기민당(31.9%)에 근소하게 뒤처지며 30.6%로 2위에 올랐다. 독일대안당은 브란덴부르크에서도 29.2%로 2위에 올랐다. 1위는 30.9%를 득표한 사민당이었다. 자라바겐크네히트동맹은 튀링겐, 작센, 브란덴부르크에서 각각 15.8%, 11.8%, 13.5%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모두 3위에 올랐다.
반면 좌파당은 자라바겐크네히트동맹에 많은 표를 뺏기면서 가장 큰 지지율 하락을 기록했다. 동독의 사회주의통일당(SED)을 일부 계승한 좌파당은 옛 동독 지역에서 강세를 보여왔다. 지난 선거에서는 튀링겐주에서 1당이 되어 지금까지 주정부를 이끌어왔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좌파당은 17.9%포인트 지지율 하락을 기록하며 튀링겐주에서 4위로 떨어졌다. 작센주에서도 5.9%포인트 지지율이 하락해 3위에서 6위로 추락했고, 브란덴부르크주에서는 7.7%포인트의 지지율 하락을 기록하며 의회 진출에 실패했다. 녹색당도 큰 실패를 겪었다. 튀링겐주와 브란덴부르크주에서는 의회 진출에 실패했으며, 작센주에서만 5.1%의 지지율로 겨우 의석을 확보했다.
이번 선거를 통해 독일대안당은 3개 주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다른 당이 독일대안당과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정부에 참여할 가능성은 작지만, 독일대안당이 의회에서 3분의 1 이상을 차지했기 때문에 주 헌법 개정 등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 주요 사안은 독일대안당의 동의 없이 진행하기가 어려워졌다. 반면 이번에 새로 의회에 진출한 자라바겐크네히트동맹은 포퓰리즘 정당으로 평가받지만, 기민당과 사민당 같은 기존 정당에 중요한 협상 파트너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독일대안당을 배제하고 의회에서 다수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라바겐크네히트동맹은 외교 정책에서 친러시아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서 문제가 된다.
신연방 지역에서 극우 경각심 낮은 이유
선거 전후로, 언론을 통해 통일 이후 신연방 지역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자리를 잡을 기회가 없었다는 통일 과정 자체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차이트〉는 브란덴부르크주 선거 직후 기사에서 1989년 거리에서 자유를 외치며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옛 동독 시민의 정신이 어디로 갔는지를 물었다. 기사는 1991년 옛 동독 사회가 민족적 정체성이나 인종주의에 정치적으로 경도될 가능성을 경고한 정치사회학자 클라우스 오페의 주장을 소개했다. 오페는 급진적 시장경제 개방을 통해 옛 동독 사회를 강제로 서독 사회와 동일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그는 독일민주주의공화국에는 역동적 시민사회와 공적 공간이 없었기 때문에 옛 동독의 시민들은 새로운 정치적 자유를 어떻게 사용할지 배울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9월 초 출간된 옛 동독 출신 역사학자 일코 자샤 코발추크의 책 〈자유의 충격(Freiheitsschock)〉도 같은 의미로 주목을 받았다. 코발추크는 통일 이후 옛 동독 사회가 자신이 획득한 급작스러운 자유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민주주의는 서독의 화폐나 남유럽에서의 휴가, 필요의 충족을 의미하지 않으며, 사회주의 독재에서 시민사회로 성장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라는 것을 다수의 옛 동독 사람이 배우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회주의 독재를 통해 옛 동독 사회는 협의와 타협, 개입 같은 민주주의의 활동을 박탈당했다고 설명한다.
독일민주주의공화국에서의 역사적 경험 또한 신연방의 민주주의 문제를 설명하는 요소로 이야기되고 있다. 훔볼트 대학의 사회학 교수인 슈테판 마우, 베를린 자유대학의 역사학 교수였던 하인리히 아우구스트 빙클러 같은 이들은 과거 나치 역사를 잘못된 것으로 정리한 경험을 가진 옛 서독 사회와 달리 옛 동독 사회는 그런 경험을 갖지 못했으며, 통일 이후 사회주의 독재에 대해서도 역사적으로 정리할 기회를 얻지 못한 것이 현재 신연방 지역에서 극우에 대한 경각심이 낮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신연방 지역에서 기민당이나 사민당 같은 기성 정당이 뿌리를 내리지 못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현재 신연방의 많은 기초 지역에 정당 소속이 없는 정치인들이 활동 중이며, 기성 정당은 지역 사회에 정착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슈피겔〉 기사에 따르면 구연방 지역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기민당 당원 수는 2023년 기준 11만명에 달했지만, 신연방 전체 기민당 당원 수는 약 3만2000명밖에 되지 않는다. 기민당은 신연방에서 가장 많은 당원을 가진 정당이다. 옛 서독 지역에서는 정당이 오랫동안 뿌리를 내렸기 때문에 기초 지역의 교회나 각종 사회단체 등에서 당원들이 활동을 하지만, 신연방에서는 그런 문화가 자리를 잡지 못했다. 신연방에서는 극우 활동가나 독일대안당 당원들이 지역 모임이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통일의 충격 또한 신연방 지역에서 기존 정치 시스템과 정당에 대한 불신을 만들어낸 원인으로 분석된다. 통일 이후 신연방 지역은 과거 산업시설의 해체와 인구 유출, 장기 실업의 경험에 노출되었다. 구연방 사회는 경험하지 않았던 충격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통일에 대한 장밋빛 전망은 독일연방공화국에 대한 불신으로 바뀌었고, 과거 사회주의 시절에 대한 향수, 서쪽 시민과 비교해서 자신들이 차별받고 있다는 생각이 신연방 시민들 사이에 자리 잡았다. 상당수 독일 언론은 현재 상황이 독일 민주주의의 갈림길이라고 보고 있다. 신연방을 중심으로, 특히 젊은 층에서 극우 정당에 대한 지지율이 높아지며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프랑크푸르트∙김인건 통신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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