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남아시아의 화약고가 다시 폭발했습니다.
태국과 캄보디아 국경에서 8일 대규모 군사 충돌이 발생하면서 양국 간 긴장이 극도로 고조되고 있습니다.
불과 한 달여 전 미국의 중재로 정전 선언에 서명했던 두 나라가 다시 총부리를 겨누게 된 것입니다.
태국군은 캄보디아군의 선제공격을 주장하며 영토 탈환 작전을 공식 선언했고, 캄보디아는 태국의 도발이 먼저였다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38만 명이 넘는 주민들이 급히 대피하는 가운데, 과연 이 충돌은 어떻게 시작됐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요.
정전 선언 한 달 만에 되풀이된 충돌
태국과 캄보디아는 10월 하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말레이시아 안와르 이브라힘 총리의 중개로 정전 선언에 서명했습니다.
올해 7월 발생한 대규모 군사 충돌로 민간인을 포함해 수십 명이 사망하고 20만 명이 넘는 주민들이 대피해야 했던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었죠.
하지만 이 합의는 채 두 달도 버티지 못했습니다.

지난 12월 7일 밤부터 시작된 소규모 충돌은 8일 새벽 전면전 양상으로 번졌습니다.
일요일 시사케이트 지역에서 약 35분간 이어진 총격전을 시작으로, 충돌 지역은 태국 영토 5개 주로 확대됐습니다.
태국군은 즉각 국경 인접 지역에서 38만 명 이상의 주민 대피를 시작했고, 8일 오전 "사케오주 국경을 따라 영토를 탈환하기 위한 군사작전"을 공식 발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양측의 엇갈린 주장, 누가 먼저 총을 쐈나
태국군의 발표는 구체적이고 시간대별로 정리돼 있습니다.
태국 측은 캄보디아군이 7일 오후 11시경부터 국경을 따라 본격적인 전투 준비에 돌입했다고 주장합니다.
캄보디아군이 기지를 강화하고 모바일 통신을 차단했으며 드론을 배치했다는 것이죠.
더 나아가 8일 오전 1시경에는 사무로안에 BM-21 다연장로켓과 PHL-90B 로켓포를 배치했고, 오전 3시경에는 국경에서 80km 이상 떨어진 태국 부리람 주변까지 공격했다고 밝혔습니다.

태국군 대변인은 8일 아침 캄보디아군이 오전 5시 5분경 우본라차타니주의 정암마 지구를 공격해 태국군 병사 1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공격 범위는 프레아비히아 사원이 있는 시사케이트 지구와 타무엔·톰 사원 부근까지 확대됐고, 태국군은 보복 조치로 캄보디아 군 시설을 겨냥한 공습을 실시했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캄보디아 국방성의 입장은 정반대입니다.
캄보디아 측은 지난 며칠간 태국군이 계속해서 도발해왔으며, 8일 오전 5시경 태국군이 먼저 캄보디아군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다고 주장합니다.
더 나아가 태국군이 가짜 정보로 군사적 대립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려 한다고 비난했습니다.
70년 묵은 국경 분쟁, 프레아비히아 사원의 저주
이번 충돌의 뿌리는 깊습니다. 태국과 캄보디아는 단렉 산지의 프레아비히아 사원 지역 영유권을 둘러싸고 수십 년간 대립해왔습니다.
2008년 7월 태국군 병사가 프레아비히아 사원 지역에 침입하면서 본격적인 무력 충돌이 시작됐죠.
캄보디아 유엔 대사는 사원으로부터 약 300m 떨어진 지점까지 자국령이라고 주장했고, 태국 측은 사원에 인접한 지역의 국경선이 미확정 상태라고 맞섰습니다.

하지만 국제사법재판소는 이미 1962년 판결을 통해 해당 지역을 캄보디아 영토로 인정한 바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2008년 8월까지 국경 분쟁은 프레아비히아 사원에서 서쪽으로 140km 떨어진 타모안 사원 주변까지 확대됐고, 2011년 4월에는 포격전으로 12명이 사망하는 비극이 벌어졌습니다.
국제사법재판소 판결도 막지 못한 갈등
양국은 2011년 12월 분쟁 지역에서 부대를 철수시키기로 합의했습니다.
국제사법재판소도 판결을 통해 태국이 프레아비히아 사원 지역에 주둔하는 군 부대, 경비대, 경찰을 철수시킬 의무가 있다고 선언했죠.
하지만 사원에서 북서쪽으로 약 3km 떨어진 프논 트랩 언덕에 대한 캄보디아의 영유권 주장은 각하됐고, 이 언덕의 영유권 문제는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남았습니다.

올해 5월 말에도 이 지역을 둘러싼 소규모 충돌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양국은 냉정을 찾고 긴장 완화를 약속하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7월에는 다시 대규모 군사 충돌로 번졌습니다.
그리고 10월의 정전 선언 이후에도 '지뢰에 의한 태국 군인의 부상' 사건을 계기로 합의 이행은 이미 정지된 상태였습니다.
그림에 그린 듯한 시나리오, 계획된 에스컬레이션?
일련의 사건들을 시간순으로 나열해보면 묘한 패턴이 보입니다.
소규모 충돌 발생, 긴장 완화 약속, 대규모 군사 충돌, 국제 중재, 정전 선언, 그리고 다시 소규모 충돌로 시작되는 사이클 말이죠.
마치 그림에 그린 듯한 시나리오를 따라 양국의 군사적 대립이 단계적으로 에스컬레이트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느 쪽 주장이 정확한지는 여전히 불분명합니다.
양측 모두 상대방의 선제공격을 주장하고 있고, 각자의 버전에 따르면 자신들은 정당방위를 한 것뿐이죠.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정전 선언이 사실상 휴지조각이 됐다는 점입니다.
38만 명이 넘는 주민들이 집을 떠나 대피하고 있고, 양국 군대는 중화기를 동원한 전면전 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과연 이번에는 누가 나서서 이 불씨를 끌 수 있을까요. 동남아시아의 평화는 다시 한번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