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GOUT Futures] LG 트윈스 이지강

조회수 2024. 5. 6. 14:1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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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을 넓혀가며

종잡을 수가 없다. 그를 지켜보고 있자면, 매번 예상하지 못한 걸 발견하게 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유머 감각부터 시작해, 야구선수면서 축구선수를 롤 모델로 삼는다는 사실, 듣는 이를 감탄케 하는 시원시원한 입담까지. 언뜻 보면 괴짜 같은 그의 모습에 혀를 내두르게 되지만, 왠지 그런 모습들이 그의 매력을 한층 더하는 게 아닐까 싶다. 구단 유튜브에서 새로운 분량 대주주로 올라서며 자신의 존재감을 한껏 키우는 중인 이지강. 그리고 그는 올해, LG 트윈스 투수진에서도 자신의 몫을 더 늘려갈 예정이다. 매해 지평을 넓혀가며 잠실 마운드의 ‘분량 대주주’로 성장하는 그날까지, 그의 야구에는 늘 새로운 매력이 가득할 것이다.

Photographer Mino Hwang Editor Mingyu Kim Location Scottsdale Indian School Park Baseball Field

간단하게 자기소개하면서 인터뷰 시작하겠습니다. (2월 16일 인터뷰)
안녕하세요. LG 트윈스 이지강입니다. 항상 SNS나 다른 매체를 통해서 <더그아웃 매거진>을 접했는데, 이렇게 직접 인터뷰하게 되니까 새롭네요. 굉장히 재밌는 시간이 될 거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조금 설레네요!

2년 연속으로 애리조나 스프링 캠프에 합류했습니다. 현지 적응은 잘 마쳤나요?
작년과 비슷한 환경이라 적응에 큰 문제는 없었어요. 또 이번엔 선발대로 먼저 도착해서 그런지 작년보다도 빠르게 적응한 느낌이에요. 덕분에 별 이상 없이 훈련에 임하고 있습니다.

선발대로 먼저 도착한 이후엔 어떻게 시간을 보냈나요?
먼저 도착한 인원끼리 아침부터 야구장에서 캐치볼도 하고, 오후엔 보강 운동을 하면서 지냈어요. 그리고 숙소 안에 수영장이 있거든요. 거기에 몸을 담그면서 근육을 푸는 시간도 가졌고요. 또 김용일 트레이닝 코치님이 같이 오셔서 밥을 해주셨어요. 그렇게 식단 관리도 받으면서 10일이라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동안 여러 에피소드가 있었다고 들었어요.
첫 3일 정도 운동한 다음에 백화점에 있는 쉐이크쉑으로 햄버거를 먹으러 간 적이 있어요. 그때 엘튜브 PD님이 빌려주신 고프로를 들고 갔어요. 선발대의 일상을 찍어달라고 하셨거든요. 근데 카메라를 들고 있으니까 미국 현지인들의 관심을 끈 거죠. 저희한테 어느 채널이냐고 물어보고, 중국인이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중국 아니고 한국이라고 하니까, 갑자기 북한이냐고 묻는 거예요. 저희도 당황했죠. 빨리 밥 먹으러 가고 싶은데 저희를 안 놔주니까. 그래서 저도 그냥 “그래, 김정은 맞다. 사실 우리 아빠가 김정은이다! 어쩔 건데?!” 라고 하니까 도망가더라고요. “쟤 김정은 아들이래!” 하면서요. 그거 말고는 햇반을 200개 정도 담은 짐을 LA 공항에 놓고 왔다가 겨우 찾기도 하고… 여러모로 일들이 있었죠.

작년 스프링 캠프 때 이우찬 선배를 보고 영어를 공부하겠다고 다짐했던데, 이번 캠프 때는 영어가 늘어서 왔나요?
우찬이 형이랑 할 때보다는 실력이 줄었어요. 미국 올 때마다 한국 돌아가면 무조건 영어를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하는데, 막상 한국에서 한국말을 쓰면 또 까먹어요. 그래도 식당에서 주문할 수 있을 만큼은 합니다. 근데 미국에서 학구열이 불타오르는 거에 비하면 한국에서는 식으니까 아쉬움이 커요. (지금은 다시 학구열이 불타오르는 상태인가요?) 지금도 유튜브로 영어에 관한 영상을 자주 봐요. 다만 이게 한국에 가서까지 이어져야 하는데…

안 그래도 케이시 켈리를 비롯해 외국인 선수들과 영어로 소통하려고 하는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유튜브에서 보니까 외국인과 대화를 자주 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최대한 제가 아는 단어를 조합해서 말을 거는데, 정작 켈리는 조금 말하다가 바로 통역 형을 부르더라고요. (씁쓸) 말이 안 통해서 답답했나 봐요. 그때가 되면 저도 그냥 한국말을 쓰는데, 가능하면 영어를 쓰려고 노력해요. 간단한 단어라도 쓰려고 하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이제부터 시작이야

본격적으로 야구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2022시즌에 1군 데뷔를 마쳤고, 작년엔 소화 이닝을 늘리면서 잠재력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재작년에 5경기 정도를 뛰긴 했지만, 작년이 프로에 지명되고 나서 제대로 뛴 첫 시즌이었어요. 제가 올해로 프로 6년 차긴 한데, 체감상 작년이 1년 차 같았어요. 작년 개막 시리즈 이후로 1군과 2군을 한 다섯 번 왔다 갔다 했지만, 그래도 1군에 그 정도로 오래 머문 게 처음이었어요. 신인 선수가 들어와서 시즌을 치르는 느낌도 들었고, 제겐 뜻깊은 시간이었죠. 진짜 제대로 프로 선수가 됐다는 걸 드디어 체감할 수 있었던 시즌이었어요.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시즌을 치렀는데, 여러 보직을 소화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일차적으로 전 프로에 오면서 어떤 보직에서 던져야 한다거나, 선발 혹은 불펜 투수로서 어느 정도의 성적을 거둬야 한다는 등의 목표가 없었어요. 그런 것보다 그냥 1군 더그아웃에 있고, 동료들과 함께 야구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어요. 그래서인지 선발과 불펜을 왔다 갔다 해도 불편함은 없었어요. 어느 보직에서 공을 던져도 그저 행복했거든요. 설령 그날의 결과가 안 좋더라도 형들이 던지는 걸 보면서 배우면 되는 거고, 나중에 그걸 바탕으로 발전하면 되는 거잖아요.

데뷔 첫 승을 비롯해 데뷔 첫 QS(퀄리티 스타트)도 기록하면서 유의미한 시즌을 보냈어요. 여러 기록 중에 어떤 게 가장 기억에 남나요?
첫 승을 너무 오랫동안 못하다가 시즌 막바지에 겨우 올려서 기억에 남아요. 근데 첫 승보다도 잠실 두산 베어스전에서 첫 QS를 한 게 더 뜻깊었어요. 제가 5월부터 선발 로테이션을 돌았는데, 거의 9월이 다 돼서야 선발승을 했거든요. 4개월이나 승리를 못 하니까 한 6~7월쯤엔 아예 첫 승에 대한 미련이 없었어요. 뭐, 첫 시즌은 승리 없이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싶기도 했고요. (웃음) 그러다 보니 막상 첫 승을 기록했을 땐 뭔가 기쁘긴 한데 예상보다 그렇게 기쁘진 않은 거예요. 차라리 5월에 했다면 더 기뻤을 텐데, 이미 미련을 버린 상태라 100%의 쾌감이 들진 않았어요. 그러던 중에 두산전에서 첫 QS를 했는데, 그건 또 다른 기분이었어요. 선발 투수로서 가치를 설명할 수 있는 대표적인 게 QS잖아요. 거기다 잠실 라이벌전이었고, 낮 경기라 팬분들도 많이 오셔서 그런지 경기 끝나고 인사를 하는데 저 혼자 벅차오르는 게 있었어요.

첫 승을 올리기까지의 기간이 길었던 만큼 스스로 조바심이 나진 않던가요?
6월까지만 해도 조바심이 나긴 했어요. ‘대체 첫 승은 언제 하지? 명색이 선발 투수인데, 이렇게까지 승리가 없을 수 있나?’ 이런 생각이 들었죠. 근데 7월, 8월이 지나가니까 그냥 ‘올해 승은 내 것이 아닌가 보다’ 생각했어요. 야구를 올해만 하고 끝날 것도 아니고요. 앞으로 제가 잘하기만 하면 10년도 넘게 할 텐데, ‘그래도 그동안 1승은 하겠지…’라는 마음으로 임하니까 오히려 조바심이 없어졌어요.

정규 시즌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쳤지만, 아쉽게도 한국시리즈 엔트리 승선엔 실패했어요.
안 아쉬웠다면 거짓말이겠죠. 그래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어요. 시즌 막판에 두산전에서 잘 던지고 두 경기 정도를 선발로 나갔는데, 그전까지 제가 보여준 거에 비해 결과가 너무 안 좋았어요. 그때 엔트리에서 빠질 수도 있겠다고 짐작했어요. 그리고 정규 시즌이 끝나고 이천에서 합숙 훈련을 하는데, 저와 함께 후보군에 있었던 형들의 공이 진짜 좋은 거예요. 그걸 보고 나서 내심 예감이 들었고, 코치님께서 엔트리에서 빠졌다고 했을 때 그리 아쉬움은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 스스로는 첫 시즌치곤 나쁘지 않았고, 밖에서 팀을 응원하면 되겠다는 느낌으로 마무리 캠프까지 소화했어요. 그 과정에서 오히려 기분도 홀가분했고요.

새 시즌을 앞둔 시점에서 작년 시즌을 점수를 매겨보자면 몇 점 정도 주고 싶어요?
100점 만점에 50점을 주고 싶어요. 기본적인 기록만 봐도 2승 5패 2홀드거든요. 항상 느낀 게, 전 잘할 때와 못할 때 기복이 컸어요. 돌이켜보면 아쉬운 순간도 많았고요. 제대로 1군에서 뛴 시즌치곤 나름 잘한 부분도 있었지만, 편차를 줄였다면 훨씬 좋았겠다는 생각도 있어서 딱 50점 주겠습니다. (올 시즌엔 몇 점까지 올려볼 생각인가요?) 70점까지 된다면 평균 정도는 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렇게 되려면 꾸준히 평균치를 유지할 수 있어야겠죠.

#지금 이 순간부터

야구를 시작한 계기는 뭐였나요?
원래는 초등학교 1학년 때 1년 정도 축구를 했어요. 그러다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를 왔는데, 어머니는 제가 공부하기를 바라셨는지 새 학교에 축구부가 없다고 하시는 거예요. 근데 아버지의 친구분이 리틀야구단을 창단하셔서 아버지한테 취미로 시켜보는 건 어떻겠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때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는데, 그 이후로 지금까지 오게 된 거죠.

야구선수로서는 특이하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롤 모델이라고 한 적이 있죠. 롤 모델로서 호날두의 매력은 뭔가요?
학생 때 야구 영상도 자주 봤지만, 축구 칼럼도 되게 많이 읽었어요. 근데 그중에 호날두 선수가 세계 최고의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훈련장에 제일 먼저 왔다가 제일 늦게 나간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그리고 본인만의 훈련 루틴이나 일상생활 루틴도 잘 정립돼있다는 걸 보고, 한 종목의 정점을 찍은 선수임에도 그 루틴을 유지한다는 게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사실 그 정도로 돈을 벌고 명성을 얻으면 나태해지고 싶은 욕구가 들 수도 있잖아요. 근데 제가 LG에 와서도 느낀 게, (김)현수 형, (오)지환이 형, (임)찬규 형, (박)해민이 형처럼 많은 걸 이룬 선배들도 자기만의 루틴을 딱 정해놨더라고요. 특히 지금 얘기한 형들은 아침 일찍 나왔다가 정말 늦은 시간까지 훈련하고 가시거든요. 그런 걸 보면서 ‘역시 성공한 사람들은 허투루 그 위치에 간 게 아니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한때 호날두의 사인을 조작(?)해서 방에 두기도 했다고 들었어요.
제게는 동기부여의 느낌이었어요. 평소에 선수단 미팅할 때마다 갖고 다니는 수첩이 있는데, 쉬는 시간에 심심해서 그림을 그리면서 놀다가 문득 생각이 났어요. 지금은 가짜 호날두 사인을 만들지만, 나중에 유명해진 다음에 호날두를 만나서 진짜 사인으로 바꾸자는 나름의 동기부여였던 거죠. 근데 (문)보경이가 옆에서 “이거 누구 사인이야?”라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장난으로 호날두 사인이라고 했는데, 보경이가 진짜 믿더라고요. 물론 보경이도 계속 보다가 이상한 걸 느꼈는지 알아채긴 했어요. 제 이름이 한글로 쓰여있었거든요.

문보경이 장난을 치면 잘 믿는 편인가 봐요.
순진한 것 같기도 하고요. 일단 남을 잘 믿는 성향이더라고요. 그래서 늘 사기 조심하라고 얘기해줘요. 절대 코인 같은 거 사지 말라고.

만약 초등학교 시절 축구부가 있었다면, 그래도 야구선수를 선택했을까요?
와… 이건 어렵네요. 이런 생각을 오늘 처음 해봤거든요. 뭔가 그때로 돌아가서 축구를 계속했다면, 아마 축구 쪽으로 뭔가를 했을 것 같긴 해요. 처음 시작한 게 축구였으니까요. 지금도 너무나 좋아하는 스포츠라, 왠지 축구 분야로 진로를 정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LG 동료들의 제보에 따르면, 평소 축구를 좋아하는 거에 비해 실력은 다소 떨어진다고 하더라고요. 이 자리를 빌려 변명을 해보자면?
누구에게나 놀릴 대상이 필요하잖아요? (웃음) 제가 하도 축구를 좋아한다고 하니까 다들 기대치를 올려놓은 거죠. 근데 제가 축구를 잘했다면 야구를 그만두고 축구로 돈을 벌었겠죠. 그냥 전 기본만 할 줄 아는 정도입니다. 형들은 제가 형들 다 제치고 드리블해서 골도 막 넣을 거라고 기대하신 건데, 그 정도까진 힘들죠. 그래서 제가 보기에는 다들 기대감이 커서 실망도 컸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팀 내에서 축구 실력으로 따지면 본인은 몇 등 정도인가요?) 그래도 ‘팀 트윈스’ 대표로 팀을 꾸려야 한다면 빠지지 않고 들어갈 정도?

평소 투구 템포가 빠르다는 느낌을 받곤 해요. 본인도 의식하는 부분인지 궁금해요.
2군에 있을 때 (김)경태 코치님께서 저만의 장점을 만들라는 조언을 해주셨어요. 근데 제 생각에 저는 구속이 특출나게 빠르지도 않고, 구위가 위력적이지도 않은 거예요. 그래서 타자들이 제 공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주지 말자고 다짐했죠. 타자가 준비를 마치기 전에 이미 전 준비를 끝내놓고 빠르게 승부를 가져가는 전략을 세웠어요. 그래야 상대가 제 공에 대비를 잘 못 할 테니까요. 그렇게 2군에서도 공을 잡자마자 바로 던지는 걸 연습했어요. 근데 올해부터 우리나라에도 피치 클록이 도입되니까, 돌이켜보면 빠른 호흡 속에서 공을 던지기로 한 게 정말 좋은 선택이었구나 싶어요.

마운드 위에서 고글을 쓰잖아요. 그것 때문에 차기 ‘안경 에이스’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했는데, 롤 모델로 얘기한 고(故) 최동원 감독의 영향이 있었던 건가요?
그건 아니에요. 고등학교 2학년 때 마운드 위에서 사인이 너무 안 보여서 안경을 착용한 건데, 괜히 안경을 쓰는 선배님들은 누가 있을까 궁금한 거예요. 그러다 마침 최동원 선배님이 떠올랐어요. 저랑 같은 우완 투수이기도 하고요. 게다가 저희 아버지도 최동원 투수를 정말 좋아하셨거든요. 평소 아버지로부터 최동원 선배님의 현역 시절 얘기도 듣다 보니까, 이왕 안경도 썼으니 한번 최동원 선배님처럼 돼보자는 마음에서 롤 모델로 정했어요.

오늘도 느끼는 거지만, 각종 인터뷰에서 입담이 상당하다는 평가가 적지 않아요.
안 믿으실 수도 있는데, 의외로 어릴 때 책을 자주 읽는 스타일이었어요. 지금은 담을 쌓은 상태지만, 어릴 땐 유독 국어 과목을 좋아했던 기억이 나요. 다른 과목과는 다르게 이상하게 고등학교 때까지도 국어 시간엔 잠도 안 오고 수업도 열심히 들었거든요. 그런 습관이 쌓여서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살면서 읽은 것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책을 하나 고르자면요?
옛날에 리버풀 FC에서 뛰었던 스티븐 제라드 선수의 자서전이요. 최근에도 몇 번 읽었는데, 다른 선수들은 큰 경기를 앞두고 있을 때 어떤 생각이 드는지 궁금했어요. 책을 읽으면서 ‘아, 이 선수는 이때 이런 마음가짐이었나’ 하는 생각도 하면서 감명 깊게 읽었어요.

12살 차이가 나는 동생도 야구를 한다고 들었어요.
처음에 동생이 야구를 한다고 했을 땐 말렸어요. 저도 야구를 하고 있지만, 왜 이렇게 힘든 길로 가려고 하나 싶었죠. 근데 동생이 자기는 영 공부 체질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동생이 초등학교 3학년 때였어요. (포기하기엔 너무 이른 시기 아니에요?) 그러게요. (웃음) 어쨌든 동생도 공부 대신에 처음 선택한 게 축구였어요. 근데 아버지께서 축구를 할 거면 차라리 공부하라고, 정말로 운동하고 싶다면 저처럼 야구를 해보라고 하셨어요.

동생이 야구를 하면서 힘들어하진 않던가요?
그래도 동생이 무조건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다행히 초등학교 땐 별 탈 없이 지나갔는데,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힘든 시기가 오거든요. 동생도 중학교에 훈련을 몇 번 갔다 왔는데, 엄청 힘들어서 운 적도 있었대요. 어머니가 전화하셔서 “지호가 며칠 훈련하고 오더니 엄청 힘들었대. 아마 야구 그만둔다고 하지 않을까 싶어”라고도 하셨고요. 그래서 동생이 저한테도 그만둔다고 하면 다른 길로 가도 괜찮다고 얘기하려 했는데, 나중에 물어보니까 계속 야구를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동생이 대견하게 느껴졌어요. 그 이후로 주말마다 시간 있을 때 같이 캐치볼도 하고, 조언도 해주곤 해요. 언젠가 동생도 LG에 지명돼서 함께 뛰었으면 좋겠는데, 아직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네요.

동생에겐 본인이 형인 동시에 야구 선배인 거잖아요. 겹치는 부분이 많다 보니 우애가 돈독해질 것 같아요.
12살이나 차이 나는 막내라 한없이 귀엽죠. 그리고 지호랑 제가 친하기도 하지만, 지호가 집에서 부모님 말씀은 잘 안 듣는데 희한하게 제 말만큼은 잘 들어요. 그래서 가끔 부모님이 제게 도움을 요청할 때도 있었고요. 또, 제가 지호네 학교를 몇 번 찾아갔는데, 애들이 동생한테 “저분이 네 형이야?”부터 시작해서 저에 대한 걸 많이 묻는 거예요. 그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제가 지호한테 조언하면 군말 없이 따르더라고요. 근데 부모님 말씀을 들어보면 저 없을 때는 또 말을 잘 안 듣는대요. 그런 걸 보면 동생이 절 선배처럼 보나 봐요.

#강해져서 돌아올 나

엘튜브의 새로운 대주주로 뽑혔죠. 처음 투표 주제를 봤을 때부터 예상한 결과였나요?
조금은 예상하긴 했어요. 비시즌 때 출연한 영상이 너무 많았잖아요. (이)정용이 형이랑 (고)우석이 형이 떠나갈 때쯤에 제 분량이 확 늘어서, 못해도 2등 정도는 하지 않을까 생각했죠. 근데 사실 전 (백)승현이 형이 될 줄 알았어요. 승현이 형이 옛날부터 워낙 끼가 많았거든요. 그래서 처음엔 승현이 형이 1등, 제가 2등일 거라 예상했어요.

반대로 백승현은 1등을 못 해서 약간 토라진 모습이더라고요.
저도 봤어요. 근데 제가 최근에 찬규 형, 승현이 형, (유)영찬이 형까지 총 네 명이 같이 영상을 찍었는데, 아직 제가 찬규 형이랑 승현이 형한테는 못 미치는 것 같아요. 아마 팬분들이 그 영상을 보시면 제 약소한 존재감에 다소 실망하실 거예요. 두 형은 엄청 재밌게 말하는데 저랑 영찬이 형은 거의 몇 마디 못 했거든요. 그걸 보시고 나면 승현이 형을 대주주로 생각하는 분들이 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한편 출국 영상에선 이상영도 본인이 새 대주주가 되지 않을까 얘기했잖아요.
상영이도 엄청 재밌는 친군데, 이상하게 요즘 카메라 앞으로는 잘 안 가려고 해요. 일단 나가기만 하면 재밌는데,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안 나가려고 하더라고요. 상영이도 충분히 재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제 마음속 1등은 승현이 형이에요.

아직 본인은 백승현의 끼를 당해내기는 부족한 건가요?
제가 광인(?)이 되기엔 멀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정용이 형이랑 우석이 형이 오기 전까지는 분량을 더 뽑아야 하니까요, 승현이 형이랑 합심해서 잘 어울려보도록 하겠습니다.

19 드래프트 동기들과 단체 사진을 찍은 걸 봤어요. 평소 동기들과의 사이는 어때요?
엄청 좋죠. 근 10년 동안의 드래프트 중에서 저희 기수가 제일 잘 뽑혔다는 자부심이 있거든요. 워낙 잘하는 친구들이 뽑혔고, 지금도 많은 인원이 남아있어서 그런지 정말 좋은 사이를 유지하고 있어요. 다만 사이가 좋은 거에 비해 다 같이 모일 자리가 별로 없었어요. 근데 마침 군대에 있는 정용이 형이나 (임)준형이, 다른 팀에 가 있는 (남)호를 제외하고 전부 모일 기회가 생겼어요. 감사하게도 엘튜브가 그런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콘텐츠도 찍고 저녁도 먹었는데, 정말 뜻깊고 재밌는 시간이었어요.

근데 그 사진 위에 ‘다행히 4인 사진 아니다’라는 문구를 붙였더라고요.
팬들 사이에선 유명한 밈(4인 단체 사진을 찍었던 선수들이 팀을 떠나게 된 사례들에서 유래)이잖아요. 제가 먼저 사진을 찍고 애들한테 보내주려고 하는데, 문득 생각해보니까 인원이 다행히도 6명이었어요. 처음부터 의식한 건 아닌데, 올리는 과정에서 갑자기 그 밈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우린 네 명이 찍은 건 아니니까 다들 다른 곳으로 갈 일은 없겠네!”라는 식으로 장난을 친 거죠.

올 시즌에 한 가지 목표를 꼭 이룰 수 있다면 뭘 고르고 싶어요?
투수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이닝이라고 생각해요. 올해도 선발이든 불펜이든 여러 보직에서 공을 던질 텐데, 보직을 떠나서 100이닝 이상을 투구하는 게 목표에요. 작년에 68이닝을 던졌는데, 돌이켜보면 제가 조금만 더 잘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 목표라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래서 올해는 꼭 100이닝을 채워보고 싶습니다.

야구선수로서, 혹은 인간으로서 본인의 최대 매력은 뭐라고 생각해요?
긍정적인 게 제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스스로 너무 관대해지는 것도 지양해야겠지만, 전 저 자신을 너무 몰아세우면 더 힘든 느낌을 받곤 하거든요. 그래서 조금 안 되는 일이 있더라도 금방 떨쳐내려고 해요. 평소에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져가려고 했던 게 주변 사람들도 좋게 봐주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나름 엘튜브에서 대주주도 됐고요. (웃음)

본인이 그리는 ‘야구선수 이지강’의 미래는 어땠으면 좋겠어요?
하위 라운드 성공 신화 중 한 명으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9라운드로 들어왔기 때문에, 낮은 라운드에서도 이 정도로 성공한 투수가 나왔다는 평가를 듣고 싶어요. 그거 말고는 그냥 꾸준한 선수였으면 좋겠어요. 화려하진 않아도 어느 정도 기대를 걸 수 있고, 계산이 서는 투수가 됐으면 하는 생각을 늘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올 시즌 각오와 함께 LG 팬분들한테 인사하면서 인터뷰 끝내겠습니다.
작년에 너무 기복이 커서 팬분들의 심정을 들었다 놨다 한 적이 많았는데, 올해는 팬분들이 심박수를 낮게 유지하실 수 있도록 꾸준한 선수가 되겠습니다. 올해 저희 LG 야구도 계속 응원해 주시고요, 또 <더그아웃 매거진>에도 처음 나오는 만큼 잡지가 많이 팔렸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4년 155호 (3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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