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쓰고 그린 여행책, 『내 손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

2014년 『내 손으로 발리』라는 여행책이 나왔습니다. 사진도 없고, 글자도 활자로 인쇄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손으로 쓴 글에 손으로 그린 그림이, 마치 누군가의 여행 노트를 열어본 것처럼 한 권의 책에 오롯이 담겨 있었습니다. 세상에 없던 여행책의 등장에 사람들은 다음 시리즈가 나오길 고대했습니다. 마치 유일무이한 작품을 들고 여행을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지요.

『내 손으로 발리』를 만든 이다 작가는 이후 『내 손으로, 교토』, 『내 손으로, 치앙마이』 등 네 권의 ‘내 손으로’ 시리즈를 발간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여름, 다섯 번째 책인 『내 손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출간되었습니다. 브릭스 매거진에서는 이다 작가를 만나 ‘내 손으로’ 시리즈의 제작 과정과 신간 『내 손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내기까지의 과정을 자세히 들어보았습니다.
『내 손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출간한 이다 작가

Q.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은 언제 다녀오신 건가요?

2018년 3월에서 4월까지 여행했어요. 아예 겨울이든가 아니면 아예 따뜻하든가 더 적절한 시기에 가고 싶었는데, 너무 충동적으로 떠나는 바람에 추운 봄에 가게 됐어요. 3, 4월이면 완전 봄이겠거니 했지만, 한겨울이나 다름없더라고요. 눈도 무릎까지 쌓여 있고. 그래서 좋기도 했어요.

Q. 책 작업은 여행 준비 때부터 시작되는 건가요?

제가 오늘 원본을 가지고 왔는데, 책하고 똑같지요? 이렇게 작업한 원본이 다섯 권인데 오늘은 두 권만 가져왔어요.

인트로는 가기 전에 쓰고, 여행을 떠나는 부분부터 갔다 와서 쓴 거예요. 『내 손으로, 교토』 같은 경우에는 현지에서 80% 이상 썼는데, 치앙마이나 이번 시베리아 열차 같은 경우는 여행 기간이 기니까 매일매일 쓸 수는 없고 요약을 했어요. 그러고 다녀와서 쓰게 된 거고요. 그림은 현지에서 그린 것을 잘라서 붙이기도 하고, 에피소드에 맞는 그림을 글 쓰면서 새로 그리기도 해요. 발리랑 교토까지는 현지에서 거의 다 그렸는데, 이후에는 이동이 너무 잦다 보니 둘을 섞는 방식으로 하게 됐어요.

이다 작가가 선보인 『내 손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원본 노트와 책의 같은 페이지

Q. 마감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겠네요.

교토는 현지에서 작업을 너무 많이 해서 두세 달이 안 걸린 것 같고, 치앙마이는 다섯 달 정도 걸렸어요.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1년 정도 걸렸고요.

Q. 『내 손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 마감이 많이 미뤄진 이유가 있나요?

「매일 마감」이라고, 같이 작업하는 작가 친구들하고 만든 메일링 매거진이 있었어요. 일간지 형식으로 편집해서 매일 원고 두 개를 보내 드렸는데, 거기에 이번 러시아 책을 연재했어요.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마지막 여행지라 그 직전까지 연재했는데, 이게 제 작전이었지요. 연재를 끝까지 구독자분들이 나중에 책을 안 살 수도 있으니까 여기서 딱 멈추고 나중에 책으로 보게 해야겠다 한 거예요. 그런데 사람이 마감이 없으니까 안 쓰게 되더라고요.

이후 한 1년 동안 미뤄두었다가 2020년에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그 뒤 전쟁까지 터지면서 이 책은 안 되는구나 포기했어요. 제가 한탄 조로 트위터에 러시아 책은 출간을 못 할 것 같다, 나중에 독립출판으로라도 내야겠다, 하는 글을 올렸는데, 미술문화 출판사에서 그 글을 보시고 연락을 주셔서 마무리 작업을 하게 됐어요.

『내 손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원본 노트

Q. 내 손으로 시리즈 네 권이 출판사가 다 달라요.

일부러 그랬던 것은 아니에요. 한 출판사는 없어졌고, 또 다른 출판사는 여행팀이 없어졌어요. 출판사들 사정이 되게 빨리빨리 바뀌잖아요. 미술문화 출판사와 계약을 하고 나서도 전쟁은 끝날 기미가 안 보이고, 한동안 러시아 항공편도 없었거든요. 계속 미뤄지다가 출판사 대표님이 올해는 꼭 출간하자고 강경하게 진행하셔서 올해 1~2월에 상트페테르부르크부터 집에 돌아오는 부분까지 허겁지겁 완성했어요.

Q. 출판사에서 큰 결심을 하셨군요.

그러니까요. 저는 사람들이 이 책을 많이 안 살 거라 예상하고 더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출판사에서는 이 책을 여행책으로 보고 내는 게 아니다, 이대로 하나의 완성된 작품을 내는 것이기 때문에 여행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정말 깜짝 놀라고, 너무 감사했어요.

『내 손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원본 노트

Q. 「매일 마감」은 계속되고 있나요?

제 책에도 등장하는 모호연, 깅, 지민, 모두 함께 작업하는 친구들인데, 우리도 마감이 좀 필요하다, 마감이 없으니까 글쓰기가 너무 힘들다, 매주 마감을 정하고 우리끼리 돌려보자는 이야기를 누군가 꺼냈어요. 그러자 왜 우리끼리만 돌려보냐, ‘일간 이슬아’ 같은 성공 사례도 있으니까 우리도 구독자를 모집해 보자, 누가 또 그런 말을 얹어서 시작하게 된 거예요.

한 달에 1만 원씩, 유료 구독자를 모집해서 연재했는데, 생각보다 잘 된 것도 있고 그걸로 원고가 굉장히 많이 쌓였어요. 그 연재분으로 지금껏 낸 책이 7권이에요. 제 책 두 권, 다른 작가님들 책이 다섯 권.

기한을 정하고 한 건 아닌데, 하다 보니 거의 1년 반이 넘어갔어요. 월, 화, 수, 목, 금 한주에 닷새씩 404화를 발행했는데, 매일 매일 마감을 하다 보니 마지막에는 조금 지쳤어요. 어쩔 수 없이 나중에 기회 되면 다시 시작하자고 마무리했지요.

그림을 그리는 이다 작가 | ⓒ 이다

Q. 준비 없이 대충 여행하는 것 같이 썼지만 실제로는 자료 조사를 정말 많이 하셨던데요.

저한테 자료 조사는 재밌는 일이라서 어렵지는 않아요. 지금도 다음 여행지인 대만에 관한 책이 이만큼 쌓여 있거든요. 그런 거 할 때가 오히려 여행 갔을 때보다 신나는 것 같아요. 역사 공부하고, 드라마 엄청 보고, 그런 과정이 되게 흥미로운데, 그거를 요약해서 제 식으로 풀어내고 정리하는 게 어렵지요.

Q. 여행책이라는 장르는 어떻게 정하게 됐나요?

발리 이전부터 여행기를 쓰기는 했어요. 제가 옛날부터 운영하던 홈페이지가 있는데 홍콩이나 터키 등 제가 짧게 갔다 온 여행지 사진하고 글을 붙여 올리고는 했어요. 서울에 관해 쓴 것도 있고 한데, 책으로 나올 수 있을 만큼 완결성을 띠는 게 없었던 거지요.

그러니까 여행책은 이전 작업의 연장선이었고, 발리를 쓰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완성해 보자 다짐했던 거예요. 그래서 앞부분에 정보도 넣고 역사도 넣고 가져갈 준비물도 그려 넣었어요. 그런데 서점에서 팔 용도가 아니라 제가 여행에 가져가기 위해 만든 거였어요. 발리 여행을 가기 전에 읽은 책을 다 가지고 갈 수는 없잖아요. 가이드북을 거기다가 정리한 거지요. 이런 형식으로 만든 책은 발리 때가 처음인 거예요.

이다 작가의 『내 손으로, 치앙마이』

Q. 웹툰 형식은 생각 안 해보셨나요?

그러니까요. 저도 웹툰 쪽에 뿌리를 내렸으면 좋았을 것 같기는 한데, 모르겠어요. 너무 책에 집착하는 것 같고, 손에 쥐어지는 것에 대한 집착도 강해요. 제가 기록 강박이 있거든요. 그래서 뭐든지 제 눈에 보이는 형태로 손에 잡히는 게 아니면 만족을 못 해요.

내 손으로 시리즈는 웹툰에 어울리는 작업 같지가 않아요. 웹툰은 필연적으로 그림이 많아야 하는데 ‘내 손으로 시리즈’는 생각보다 글이 정말 많아요. 웹툰이 되려면 글을 완전 줄여야 하지만, 그게 저한테 안 맞아요. 그리고 웹툰은 반드시 매회가 재밌어야 해요. 회당 사건이 있어야 하고, 그 주에 기승전결이 있어야 하지요. 하지만 내 손으로 시리즈 같은 경우는 10페이지 정도 아무 일 없어도 괜찮거든요. 웹툰으로 만들려면 어떤 사건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게 저에게는 부담이 되는 방식이라고 느껴지는 거지요.

ⓒ 이다
이다 작가와의 인터뷰는 두 번째 편으로 이어집니다.

인터뷰·사진 | 이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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