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 SK 최태원 회장의 상속과 후계 문제

이혼·재산분할이 선진적 지배구조 전환 촉진

티앤씨재단 통한 승계도 현실적으로 불가능

富 세습 아닌 이사회 중심 시스템 경영으로

‘지분 3.7% 총수’ 네이버 이해진을 ‘모델’로

SK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에서 대법원이 항소심 판결을 파기환송함에 따라 남은 과제는 현재 주가 기준으로 대략 4조 원으로 추산되는 최 회장의 재산분할입니다. 가사법원의 재산분할은 판사의 주관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예측이 쉽지 않지만 재계와 로펌 등에서는 노소영 관장의 몫이 적게는 1000억 원 수준, 많게는 7000억~8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봅니다.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 못지않게 중요한 사안이 있습니다. 바로 승계와 상속입니다. 이는 SK그룹의 지배구조와 직결되는 문제이기에 매우 중대한 과제입니다. 물론 1960년생인 최태원 회장이 아직 젊고 왕성하게 경영활동을 하고 있어 이런 논의가 다소 성급한 것은 분명하지만 이번 노소영 관장과의 이혼 소송 과정에서 이 문제가 여러 차례 제기됐고, 재산분할과도 맞물려 있어 한 번쯤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재계 일각에서는 노소영 관장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300억 원 비자금 카드까지 꺼내며 조 단위의 재산분할을 요구한 것은 본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두 딸과 아들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노소영 관장이 최 회장의 외도 사실을 알고도 이혼을 거부했던 것도 같은 이유라는 분석입니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이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정식으로 이혼하고, 10년 넘게 최 회장과 함께 살고 있는 ‘동거인’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이 법적으로 배우자가 된다면 훗날 상속 과정에서 김희영 이사장과 그녀의 아이들에게 더 많은 재산이 돌아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노 관장이 재산분할에 집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해석입니다.

티앤씨(T&C)재단은 최태원 회장의 영어 이름 ‘토니(Tony)’와 김희영 이사장의 영문명 ‘클로이(Chloe)’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공익재단으로, ‘아이들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 기관입니다. 2018년 1월 공식 출범했습니다.

또 하나의 관측은 김희영 이사장이 운영하는 티앤씨재단에 최태원 회장의 핵심 지분이 넘어가고, 이를 기반으로 SK그룹의 경영을 이어가는 시나리오입니다. 실제로 SK 안팎에서는 앞으로 승계와 관련해 티앤씨재단의 역할을 주목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옵니다. 이런 경우 김희영 이사장의 영향력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이러한 관측과 가설은 어디까지가 사실일까요? 현실성이 있는 시나리오일까요?

김희영 이사장 영향력 커질까

최태원 회장의 이혼 재판 과정에서 그의 유고 시 상속과 승계 문제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최 회장이 김희영 이사장과 법적으로 부부가 될 경우 가족관계가 다소 복잡해지기 때문입니다.

알려진 대로 최태원 회장은 전 부인 노소영 관장과 사이에 두 딸과 아들을 두고 있습니다. 장녀 최윤정 씨는 현재 SK바이오팜 부사장으로 그룹 경영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차녀 최민정 씨는 한때 SK하이닉스에서 근무했으나 지금은 미국에서 헬스케어 스타트업을 창업해 경영하고 있습니다. 막내이자 장남인 최인근 씨는 글로벌 컨설팅 회사에서 경영 수업 중입니다.

최태원 회장과 곧 법적 배우자가 될 김희영 이사장 사이에는 아직 미성년자인 딸이 있으며, 김 이사장과 전 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장성한 아들도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재계에서는 두 사람이 법적으로 부부가 되면 딸과 아들도 함께 법적 가족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이렇게 되면 최태원 회장의 상속인은 김희영 이사장과 두 자녀, 그리고 최윤정·최민정·최인근 씨 등 모두 6명이 됩니다. 6명의 가족을 기준으로 상속을 가정하면, 배우자인 김희영 이사장이 1.5의 비율로 가장 많고 나머지 5명의 자녀들은 각 1의 비율을 받게 됩니다. 결국 김희영 이사장 측이 합계 3.5, 노소영 관장 측의 세 자녀가 합계 3을 받는 계산입니다.

SK그룹의 지주회사인 SK㈜에 대한 최태원 회장의 지분율은 17.7%에 불과하며 특별한 우호 지분도 없습니다. 다만 약 25%의 자사주를 보유해 이를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재명 정부 들어 자본시장 선진화가 추진되고 향후 상법 개정을 통해 자사주 소각이 의무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되면 SK㈜의 자사주 25%는 경영권 방어 측면에서 효력을 잃게 됩니다.

더구나 최태원 회장의 재산을 6명의 상속인에게 나눌 경우 SK그룹의 경영권 방어는 더욱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특히 가족 간 성격과 이해관계가 달라 1998년 최종현 회장 별세 후 사촌들이 모여 최태원 회장에게 지분을 몰아줬던 것처럼 결속하기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최태원 회장 유고 시 SK그룹은 어떤 방식으로 승계를 이어가고 경영권을 지킬 수 있을지가 향후 최대 과제가 될 것입니다.

SK 지배구조 흔드는 자사주 소각

2020년 5월 삼성 이재용 회장은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자신의 아이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했습니다. 이 회장은 이런 결심을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이 회장의 선언으로 이씨 가문에 의한 삼성그룹의 지배는 3대인 이재용 회장을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삼성만의 문제일까요? 중견 그룹 정도라면 모를까, 삼성·SK·현대차·LG 같은 글로벌 기업군의 경우 이재용·최태원·정의선·구광모 회장 등이 물러난 뒤에도 경영권이 순조롭게 승계된다고 장담할 곳은 없습니다.

가장 큰 걸림돌은 현행 상속세법입니다. 게다가 과거처럼 편법을 동원한 상속이나 승계도 불가능합니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현재 시가총액이 약 18조 원에 이르는 SK㈜의 최태원 회장 지분 17.7%를 김희영 이사장과 다섯 자녀에게 상속한다고 가정할 경우 과세표준(지분가액)은 약 3조2000억 원이 됩니다. 여기에 최고 상속세율 50%와 지방세, 공제금액 등을 감안하면 세금만 1조8000억 원 가까이 됩니다. 상속분의 절반 이상을 세금으로 내고 나면 남는 것은 약 1조4000억 원, 지분 기준으로는 8%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 8%를 다시 김희영 이사장 등 6명이 나누면 지분은 더 분산됩니다. 김희영 이사장이 자신의 몫과 두 자녀의 지분을 모두 합쳐도 5%가 되지 않습니다. 노소영 관장 측 세 자녀가 받는 지분을 모두 합쳐도 4%가 채 안 됩니다. 탁월한 경영 능력이 전제되지 않으면 4~5%의 지분율로 그룹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상속 과정에서 지분 분산이나 감소를 막기 위해 최대 10년간 상속세를 분할 납부할 수 있는 ‘연부연납’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최태원 회장처럼 그룹 총수로 활동하면서 거액의 급여나 성과급을 받지 않는 한, 현실적으로 상속세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삼성 이재용 회장이 아이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사과이기도 하지만 현행 상속세 체계에서는 현실적으로 그룹을 승계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SK㈜ 지분 상속시 세금만 1조8000억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이재용 회장 스스로 인정했듯이 삼성은 과거 승계 과정에서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 등을 편법적으로 활용했습니다. SK 역시 최태원 회장이 그룹 총수로서 지주사 최대 주주가 되기까지 SK C&C와 SK㈜를 활용해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편법적 승계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공정거래법과 자본시장법 등이 촘촘하게 규제하고 있어 시도조차 어렵습니다. 여론의 시선도 매우 따갑습니다.

상속세 부담이 거의 60%에 육박하면서 현실적으로 경영권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여러 가지 ‘편법 발상’이 거론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최태원 회장과 김희영 이사장이 법적 결혼 전에 상속재산을 받지 않겠다는 ‘혼전 계약’을 맺는다거나 티앤씨재단을 활용해 그룹 경영권을 승계하는 방법 등이 그것입니다.

혼전 계약을 통한 지분 분산 방지는 노소영 관장 측 세 자녀에게 유리하고, 티앤씨재단 활용 방식은 김희영 이사장 측으로 최 회장 지분을 몰아주는 시나리오입니다. 문제는 두 가지 모두 현실성이 전혀 없다는 점입니다.

혼전 계약, 즉 결혼 전 재산계약은 민법에서도 인정하는 제도로 결혼 전에 재산의 소유와 관리, 분할 등에 관해 미리 약속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배우자가 사망할 경우 상속재산을 일절 받지 않는다”는 식으로 혼전 계약을 체결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유류분’(상속인이 법률상 반드시 취득하도록 보장된 최소한의 상속분)을 포기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법적 부부가 결혼 전에 합의하더라도 효력이 없습니다.

굳이 하려면 혼인신고 후 가정법원으로부터 별도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게다가 최태원 회장의 성격이나 10년 넘게 어렵게 사랑을 지켜온 두 사람의 사정을 고려할 때 ‘혼전 계약’은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혼전 계약’ 통한 지분 지키기 불가능

티앤씨재단 같은 공익재단으로 지분을 넘겨 비과세 혜택을 받는 방식의 경영권 승계는 30~40년 전에는 가능했지만 지금은 불가능합니다. 공익재단을 통해 상속세 비과세 혜택을 받으려면 출연 재산의 80% 이상을 공익 목적 사업에 직접 사용해야 하고, 출연 후 3년 이내에 실제로 재산을 사용해야 하며, 출연 재산으로 기업을 지배하거나 경영권을 행사해서는 안 됩니다.

게다가 2020년대 들어 공정거래위원회와 국세청은 공익법인의 주식 보유 한도를 5%로 제한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상속세 절감과 경영 지배력 유지라는 두 가지 목적을 공익재단을 통해 동시에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공정위, 금융위, 국세청은 관련 규제를 계속 강화하고 있습니다.

SK그룹의 총수는 최태원 회장이지만 실무 경영은 사촌 동생인 최창원 부회장이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을 맡아 총괄하고 있습니다. 그는 특히 지난해 초부터 SK그룹의 사업 구조 재편을 주도하며 ‘구원투수’로서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최 부회장은 지주사인 SK디스커버리의 지분을 40.7% 보유하고 있으며, 그 아래 SK케미칼·SK플라즈마·SK바이오사이언스를 계열사로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룹의 지주사인 SK㈜ 지분은 없습니다.

최 부회장이 그룹의 2인자로 활동하고 있고 구원투수로서 역할을 다하는 데다 전통적으로 SK가 ‘사촌 경영’을 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가 최태원 회장의 뒤를 이을 후계 중 한 명으로 거론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그러나 최창원 부회장이 최 회장과 연배가 비슷한 1964년생임을 고려하면 긴급한 유고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그가 그룹을 승계할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승계 및 상속 문제와 관련해 최태원 회장은 말을 아끼고 있지만, 2023년 ‘제주포럼’과 블룸버그 인터뷰를 통해 우회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 바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것보다 내가 안전하게 은퇴할 수 있는 회사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주주로서 베네핏(benefit)을 물려주는 게 더 자유로울 것이다. 그룹 승계 구도는 생각 중이고 준비해야 한다. 스스로 어떤 사고를 당했을 때 그룹을 누가 이끌 것인지 승계 계획이 필요하다. 나만의 계획이 있지만 아직 밝힐 때는 아니다.”

최태원 회장이 종종 주변 측근들에게 “회장 자리가 너무 힘들어서 아이들에게는 물려주지 않겠다”는 말을 하곤 했다는 그룹 관계자들의 증언도 있습니다.

‘최창원 후계설’ 현실성 떨어져

최태원 회장이 부분적으로 드러낸 생각과 그룹 측근들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최 회장 이후 SK그룹의 지배구조는 대략 추론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전문경영인 중심의 경영, 이사회 중심의 경영, 지분 승계 없는 후계 모델, 부의 세습이 아닌 시스템 경영으로 요약됩니다. 이는 앞으로의 시대 흐름과도 부합합니다.

어쩌면 SK그룹은 국내 대기업군 가운데 가장 먼저 선진적 지배구조로 전환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최태원 회장의 이혼과 재혼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SK그룹 승계와 관련해 최 회장의 이러한 구상이 실행된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노소영 관장·김희영 이사장·최윤정·최민정·최인근 씨 등의 역할도 분명해집니다.

노소영 관장은 이제 자녀들을 핑계로 거액의 재산분할을 요구하기보다 자신의 노후 자금을 챙기는 선에서 재산분할에 합의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김희영 이사장은 애초 티앤씨재단을 설립한 목적에 충실해 아이들의 장학과 교육 사업에 전념하되 그룹 경영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이미 경영활동에 참여 중이거나 경영 수업을 받고 있는 최윤정·최민정·최인근 씨는 실력으로 경영 능력을 입증해야 합니다. 지분으로 기업을 지배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단적인 예로 네이버 이해진 의장은 창업자이지만 지분율은 3.7%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시장과 정부당국 모두 그를 그룹 총수로 인정하고 따릅니다. 대기업군을 이끄는 것은 지분이 아니라 경영 능력과 역량, 리더십입니다. 특히 삼남매는 대법원 판결까지 마무리된 점을 감안해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이 원만히 재산분할에 합의할 수 있도록 성숙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 김희영 이사장은 물론 SK그룹도 10년 넘는 세월 동안 총수의 이혼 소송으로 많은 것을 잃었고 대가를 치렀지만 손해만 본 것은 아닙니다. 이 과정에서 SK그룹은 오히려 선진적 지배구조로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을지도 모릅니다. 세상사는 때로 화(禍)가 복(福)이 되기도 합니다.

박종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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