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영의 정상에서 쓴 편지] 28. 원주 봉화산·배부른산:추억은 산을 타고
2022년 결혼식 이색 피로연 ‘등산’
친구 25명과 산악회처럼 봉화산 올라
코로나 시기 마스크 착용·거리두기
근처 공터서 샌드위치로 식사 때우기
그 후 3년…다시 찾은 원주시민의 산
안내도·이정표 따라 누구나 오르는 곳
해발 335m 작은 산에 깃든 큰 기억
3㎞ 거리 이웃한 해발 419m ‘배부른산’
왕복 2시간 이상 하루 운동코스 ‘딱’

몇 주 전 이사를 했습니다. 멀리 다른 지역으로 간 것은 아니고요, 원주 반곡동이라는 동네에 새로운 거처를 마련했습니다. 햇수로 4년 정도 살았던 문막읍이 원주의 서쪽에 있다면, 반곡동은 원주의 동쪽에 있습니다. 마음을 크게 먹고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주를 한 이유는 오직 하나, 바로 원주의 진산 치악산 가까운 곳에 머물고 싶다는 소망 때문입니다. 이 소망은 아주 오래된 것이어서 마치 하늘이 긴 시간 끝에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는 것처럼 기뻤습니다.

또 오겠다는, 다시 만나자는, 지킬 수 있을지 없을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인사를 돌려드렸던 것은 오늘 하루 집을 정리하느라 마지막으로 뒷산을 오르지 못했다는 생각이 그 순간에 들어서였습니다. 몇 달 전에도 정상에 올라 편지를 쓰기도 했던 명봉산의 석양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 아름다운 노을을 보기 위해서라도 제가 다시 이 동네를 찾아오리라는 것을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동안 살아오면서 인연을 맺은 원주의 산들이 떠올랐고, 기억은 문득 봉화산과 배부른산에 닿았습니다.

이번 달에는 그날 이후 오른 적이 없는 봉화산을 찾아갑니다. 3년 만입니다. 봉화산은 해발 335m의 작은 산이지만 원주 시내 한복판에 솟아 있기에 많은 시민의 발길이 끊임없는 산입니다. 봉화산 등산은 원주시청 뒤편 주차장에서 시작합니다.

처서가 목전에 다가와도 아직은 한창 여름날입니다. 낮은 산인 만큼 어디선가 사람 냄새를 맡고 날아온 초파리가 얼굴 언저리를 맴돌며 성가시게 합니다. 한 손으로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고, 한 손으로는 벌레를 쫓아가며 눈앞의 산길을 부지런히 오릅니다. 2㎞라는 거리가 유독 길게 느껴집니다. 이윽고 도착한 정상은 순식간에 2022년 3월의 그날을 영사기를 튼 듯 보여줍니다. 여기까지 함께 올라온 모두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며 행복하게 웃고 있는 두 사람이 보이고, 세상 속 좋은 친구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맑은 하늘 위로 적운형 구름이 그림 같은 날입니다. 아직 남아 있는 햇살이 좋아서 여기서 바로 하산하지 않고 봉화산과 이웃한 배부른산으로 향합니다. 봉화산에서 배부른산까지의 거리는 3㎞입니다. 배부른산은 산세가 마치 만삭의 임산부를 닮아 재미난 이름이 붙은 산입니다. 해발 419m로 아주 높지는 않아도 오르내리는 산길의 고저가 만만치 않아 왕복하면 2시간 이상 걸리지요. 하루 운동 코스로 그만이기에 역시 많은 사람이 즐겨 찾습니다. 배부른산 또한 이런저런 이유로 친구들과 꽤 올랐으나 혼자 온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때 산책 온 한 아주머니께서 배부른산으로 향하는 저를 불러 세웁니다. 지금 가면 너무 늦지 않냐고, 여자 혼자 위험하다고요. 걱정하시는 아주머니에게 배낭에 헤드램프도 있고, 요즘은 해가 늦게 져서 괜찮으니 걱정 마시라 말합니다. 시간을 보니 오후 6시입니다. 그렇게 답하고 배부른산으로 향하는 발길은 아무래도 망설여집니다. 갈까 말까 잠시 고민했으나 머리와 다르게 발길은 이미 능선을 타고 있습니다. 어쩌면 명봉산에서 만난 석양을 오늘 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입니다.
혼자인 이유로 이전에 친구들과 무리 지어 왁자하게 올랐을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옵니다. 작고 낮은 산인데도 수백 년, 수천 년은 됨직한 굵은 나무들이 산을 빽빽하게 메우고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배부른산을 일컬어 원주의 허파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습니다. 머잖아 다가올 가을을 기다리며 마지막 여름의 싱그러움을 온몸으로 발산하는 숲속을 말없이 걷다 보니 어느덧 정상입니다. 정상 위 벤치에 앉아 미리 준비해온 물과 간식을 먹으며 잠시 쉬었다 갑니다.
아무도 없는 정상에 한참을 혼자 앉아 있으니 하늘의 색깔과 모양이 시시각각 변하고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풍경 역시 미묘하게 달라지는 것이 보입니다. 그 언젠가 북한산이 마지막이었던가요? 하루의 끝에 산 위에 올라 도시의 모습을 바라보는 이 시간이 무척 오랜만입니다. 시내 너머로 압도적인 풍채를 자랑하는 산은 틀림없이 치악산일 것입니다. 저 산 아래 어딘가에 앞으로 내가 살아갈 집이 있다고 생각하니 치악산 또한 다르게 다가옵니다. 봉화산에서 만난 아주머니 말씀대로 정말 날이 어두워져야 집으로 돌아갑니다.
작가·에디터
#봉화산 #장보영 #반곡동 #치악산 #명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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