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가 절감의 신화" 곳곳에 녹 슬고 잔고장으로 유명했던 일본차

조회 2,3592024. 3. 8. 수정

2012년 하반기에는 모든 면에서 새로워진 5세대 알티마가 출시됐습니다. '슈퍼 대디를 위한 차'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며 상위 모델인 7세대 맥시마를 빼닮은 유려한 외관과 더욱 커진 차체. 그러면서도 뛰어난 효율과 가성비를 강조한 모델이었습니다. 외관은 흔히 스포츠 세단에서 주로 볼 수 있는 형태인 넓은 전폭과 낮은 전고를 강조한 디자인으로 앞에서 뒤로 잡아당긴 듯 쭉 찢어진 그릴과 부메랑 형태의 램프가 알티마 시리즈 특유의 차분하면서도 역동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습니다.

납작한 전면부와 바람개비 모양의 17인치 휠, 물 흐르듯 이어지는 사이드 캐릭터 라인이 마치 가만히 있어도 바람을 가르며 나아갈 것 같은 생김새였는데, 실제로도 공기 역학 성능이 개선돼 연비와 가속성능에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뒷모습 역시 부메랑 형태의 테일램프, 두꺼운 크롬 바를 더해 전면부의 분위기를 그대로이었습니다. 스포티한 분위기를 더해주는 듀얼 머플러 팁도 빼먹지 않았습니다.

사실 맥시마를 거의 그대로 옮겨 놓은 생김새였는데, 이 땐 국내의 맥시마가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얼떨결에 신형 에쿠스 닮은 꼴이 돼버렸습니다.

실내는 이전의 레이아웃을 그대로 계승했지만, 새로운 디자인과 최신 편의 장비를 더해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확실하게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세로로 긴 금속 장식을 덧대, 크래쉬 패드와 센터패시아를 분명하게 구분하면서 실내가 더욱 넓어 보이도록 기도한 것도 포인트였습니다.

전작보다도 분위기가 수수해졌는데, 강렬한 원형 에어벤트는 물론 독특한 스티어링 휠 디자인 등, 전작에서 시선을 사로잡았던 모난 구석들이 정을 맞고 얌전해진 탓이었습니다. 이번 스티어링 휠도 좀 묘하긴 했는데, 그래도 소비자들의 피드백을 반영해 상품성을 개선한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내비게이션과 후방 카메라를 제대로 장착하고 나왔고, 별도의 디스플레이를 마련해 시인성이 좋아진 공조장치에 조명을 화이트톤으로 바꾸고, 구성이 단정해진 계기판은 가운데 컬러 LCD 정보 창까지 더해 주행에 필요한 각종 정보를 친절하게 안내했습니다. 보통 이런 거 영어 표기를 그대로 두는 회사들도 많은데, 꼼꼼하게 한글화까지 신경 썼습니다.

여전히 준수한 해상력의 보스 사운드 시스템과 겨울철 필수 옵션인 스티어링 휠 열선이 기본으로 들어가는 것도 깨알 같은 장점이었습니다. 휠베이스는 동일했지만, 뒷좌석 공간도 여전히 쾌적했습니다.

비장의 무기는 따로 있었는데, 바로 시트입니다. 미 항공우주국 나사의 연구에서 영감을 받아 개발했다는 이 시트의 이름은 제로 그래비티 시트입니다. 말 그대로 무중력인데, 국내에는 저 중력 시트로 소개됐습니다. 겉보기에는 타 차량의 시트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지만, 신체의 하중을 효과적으로 분산해 척추와 골반에 가해지는 부담을 줄여 장시간 주행에도 편안함을 느끼도록 설계됐다고 합니다. 시트 포지션이 기본적으로 높다는 게 호불호가 갈렸을 뿐, 실제로 체감은 확실했는지, 자동차 전문 매체들이 동급 최강의 착좌감이라는 평가를 했고, 오너분들의 반응도 긍정적이었습니다.

물론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전작보다는 화사해졌지만 신형으로 거듭난 동급 경쟁차들과 비교하면, 조금은 올드해 보이는 디자인을 갖췄고, 패밀리카를 표방하면서도 국산 중형차에는 있던 파노라마, 선루프, 메모리 시트나 앞좌석 통풍 시트, 뒷좌석 열선 시트를 장비하지 않는 등 진정 슈퍼 대디라 하면 구매를 망설일 수도 있는 옵션들이 빠져 있었습니다.

또 사이드미러의 면적을 넓힌 건 좋았는데, 대부분의 북미형 수입차들이 그러하듯 도어 잠금 시 자동으로 사이드미러가 접히는 락 폴딩 기능이 없는 것도 아쉬운 지점이었습니다.

파워 트레인의 구성은 이번에도 4기통 2.5L, 6기통 3.5L 두 가지로 동일했지만, 개선된 엔진과 변속기가 탑재되어 동력 성능과 연비를 끌어올렸습니다. 이번에는 4기통 2.5L 모델을 주력으로 성능보다는 경제성을 앞세웠는데, X-Tronic으로 명명된 신형 CVT가 맞물려 전작보다 매끄러운 가속감을 선사했고, 동급에서 가장 뛰어난 연비를 제공했습니다.

저 배기량 터보나 하이브리드가 아닌데도 정속 주행 시 리터당 10km 후반대는 우습게 기록하는 등 오너들로부터 디젤 하이브리드 부럽지 않다는 호평을 받았습니다. 여기에 높아진 차체 강성으로 고속주행 안정성이 향상됐고, 속속 전동식 스티어링(EPS)을 쓰면서 이질감이 느껴졌던 경쟁차들과 달리 전기 유압식 스티어링 시스템(EPHS)을 유지해 전작에서도 호평받았던 날렵한 핸들링도 그대로 계승했습니다. 고속 코너링 시 안쪽 바퀴의 제동을 걸어 언더스티어를 방지하는 토크 벡터링 시스템 AUC가 추가로 탑재돼 코너링 실력도 더 좋아졌습니다. 스티어링 휠이 다소 무거운 편이었기 때문에 손에 힘이 약한 여성 운전자분들은 주차하거나 시내 주행을 할 때 조금 불편했을 것입니다.

상위 모델인 3.5L모델은 여전히 호쾌한 가속감을 선사했는데, 전작에는 없던 패들 시프트가 추가돼 더욱 경쾌한 주행이 가능했습니다. 스티어링 휠 뒤에 스포츠카 370Z에 있는 길쭉한 패드를 그대로 옮겨 이게 중형 세단이 맞나 싶은 남다른 포스를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2.5L는 좀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변속기의 스포츠 모드(Ds)는 그대로였지만, 패들 없이는 아예 수동 조작을 사용할 수 없게끔 기어 레버가 일자 형태로 수정된 건 취향에 따라 아쉬움이 남는 구성이었습니다.

전반적인 상품성이 눈에 띄게 좋아졌음에도 가격은 오히려 저렴해진 3,550만 원부터 시작해 가성비 좋은 수입차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기본에 충실한 중형차로 북미형 파사트와도 캐릭터가 완벽하게 겹치는 모델이었습니다. 때문에 당시 이 두 모델을 놓고 고민하는 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후 2014년 말부터 조수석 전동 시트, 사각지대 경고, 차선 이탈 경고와 타이어 공기압 경고(TPMS) 같은 편의 및 안전사양이 추가로 마련돼 경쟁력을 높였습니다.

2016년 출시된 페이스리프트 모델 올 뉴 알티마는 풀 체인지라고 해도 믿을 만큼 분위기가 확연하게 달라졌습니다. 직전 모델이 이전 세대의 분위기를 계승한 수수한 외모였다면, 닛산의 최신 디자이너인 V 모션을 적용 앞서 풀체인지를 거친 상위 모델 맥시마 못지않은 강렬한 모습으로 거듭났습니다.

화살촉 모양의 LED 주간주행등 앞트임을 더해 그릴과 맞닿은 블랙 베젤, 헤드램프로 마치 눈썹 문신을 한 듯 부리부리해진 전면부, 후면부 역시 트렁크까지 연장된 날카로운 리어램프와 검게 처리한 범퍼로 훨씬 스포티해졌습니다.

페이스리프트 모델인 만큼 측면의 변화는 거의 없었지만 길게 뻗은 앞뒤 램프와 투톤 처리된 알루미늄 휠이 직전 모델에서 느껴졌던 유려함을 역동감으로 바꿨습니다. 다만 전륜구동의 한계인 긴 프론트 오버행이 이 차의 스포티함을 반감시키는데, 동급에서도 긴 편인 오버행과 특유의 낮은 지상고가 시너지를 일으켜 일상 주행시 아래턱을 쓸리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고 합니다.

실내의 변화는 겉모습만큼 파격적이진 않았지만 일부 소재와 컬러 십일조로 뻗어있던 금속 장식을 'U'자 형태로 꺾는 등 일부 디테일을 수정해 외관의 분위기를 반영했습니다. 하지만 2012년 선보인 직전 모델에서도 출시 당시부터 올드해 보인다는 지적을 받았던 인테리어를 그대로 반영해 많은 예비 고객들이 실망했습니다. 그 사이, 경쟁차들은 국산차 수입차 할 것 없이 세대교체를 이루며 상품성이 비약적으로 좋아지고 있는데, 최신 찾아온 겉모습에 비해 고리타분한 인테리어와 빈약한 편의 장비를 유지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었습니다.

파워 트레인도 2.5L, 3.5L를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CVT와의 궁합이 정점에 달했는지, 주력 모델인 2.5L 모델의 연비가 계속 좋아져 리터당 13.3km라는 수치를 달성. 여전히 동급에서 가장 뛰어난 효율과 안정적인 주행 품질을 제공했습니다.

차간 거리를 유지해 주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자동 긴급 제동 같은 주행보조 사양이 추가된 것도 환영할 만한 부분이었습니다. 이제는 기본기 외적인 부분에서는 국내 소비자들을 사로잡을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가성비 전략을 더욱 강화해 엔진별로 한 개씩만 있던 트림을 2.5L 셋, 3.5L 하나, 총 4종으로 나누어 가격 접근성을 높였고, 그중에서도 가장 저렴한 트림은 수입 중형차로는 최초로 3천만 원의 벽을 깨뜨린 2,990만 원이라는 엄청난 가격에 선보였습니다. 당시 혼다 어코드의 가장 저렴한 모델이 3,540만 원이었고, LF 쏘나타 2.0L CVVL 모델의 풀옵션 가격이 3,353만 원이었으니 얼마나 파격적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5세대 알티마는 동급 국산차들이 안정적인 주행 질감이라는 것 외에는 큰 매력이 없었던 전작과 달리, 디자인, 편의 장비, 파워트레인 등 모든 면에서 업그레이드된 상품성과 뛰어난 가성비를 무기로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더 이상 수입차라는 것이 프리미엄으로 작용하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길에 널린 국산 세단의 피로감을 느낀 일부 소비자들에게 유니크한 매력을 어필했고, 출시 이듬해인 2013년 상반기에만 1천 대가량 팔려 전작의 암울했던 판매량을 상당 부분 해소했습니다.

상품성을 보강한 페이스리프트 모델에서는 다양한 트림을 추가해 선택의 폭을 넓히면서 중형 신차를 고려하는 소비자라면 한 번쯤은 고민하게 만드는 차가 됐습니다. 국산 중형차보다 저렴한 수입 중형차라는 이 공격적인 가격 정책은 앞에서 소개한 단점을 그야말로 씹어 먹었고, 덕분에 2017년 한국닛산은 최초로 국내 수입차 판매량 탑 10의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 무렵 불거진 배출가스 조작 사건으로 유럽산 디젤 엔진을 장착했던 효자 모델 캐시카이, 인피니티 Q50 디젤 같은 주력 모델의 판매가 줄줄이 끊어지는 악재 속에서도 가솔린, 북미 생산이라는 신들린 회피 기동으로 위기를 빠져나가면서 한국닛산 전체 판매량을 견인했습니다.

출시 후 시간이 지나야 진가가 드러나는 품질 부분에서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닛산 모델의 과거 현재를 관통하며 한결같이 이어지는 드라이브 모드 정차 시 진동과 대부분의 차량이 겪는 실내 잡소리는 애교였고, 10만 km를 전후로 CVT 미션이 말썽을 일으켜 저속 주행 시 동력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슬립 소음이 발생하거나 아예 특정 연식 CVT의 고장이 잦아 미션 관리의 각별한 주의를 요구하는 등, 역시 CVT가 CVT 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에 더해, 신차임에도 차체 내부 곳곳에 녹이 발생해 곤욕을 치르는 등 오랫동안 국내 소비자들에게 확고한 믿음으로 자리 잡았던 일본 차의 품질과 신뢰도에 타격을 입혔습니다. 확실히 카를로스 곤 회장이 키를 잡은 이후 닛산이 부흥하긴 했지만, 닛산의 품질이 일본 빅 3 중 가장 낮아졌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 우연은 아니었나 봅니다. 그의 별명이 바로 코스트 킬러, 원가 절감의 화신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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