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협력 종료키로 한 세계 최대 실험실…"한국 분담금 소폭 늘 것"

이채린 기자 2024. 10. 3.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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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 "프로젝트 일부 연기될 수도"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충돌기(LHC) 내부. CERN 제공

'세계에서 가장 큰 실험실'로 불리는 거대강입자가속기(LHC)를 운영하는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CERN)가 수십 년 동안 이어오던 러시아와의 협력을 종료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항의하며 2021년부터 러시아와의 협력을 조금씩 축소하다가 올해 완전히 끝내기로 한 것이다.

이같은 결정으로 러시아가 내던 분담금을 각국이 나눠 지기로 하면서 한국은 5억~6억원 가량을 추가로 더 분담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과학자가 대거 참여하던 프로젝트가 일부 연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1일(현지시간) 영국 로이터, 과학전문매체 피즈닷오알지 등에 따르면 CERN은 올해 11월 30일 종료되는 러시아와의 협력에 관한 계약을 갱신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르노 마르솔리에가 CERN 대변인은 "러시아 연구기관과 관계된 약 400~500명의 과학자와 더이상 협력하지 않겠다는 의미"라면서 "CERN에서 함께 일했던 연구자가 있는 나라와 전쟁을 하는 상황에서 (러시아에) 연구를 지원하는 것을 두고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CERN은 둘레가 27km의 CERN 스위스 본부에 설치돼 있는 거대강입자가속기(LHC)를 운용한다. 세상에서 가장 큰 입자가속기다. LHC는 입자를 빛에 가까운 속도로 가속시켜 충돌을 일으켜 새로운 입자를 만들어내거나 충돌 시 발생하는 물리 현상을 탐구한다.

물리학에서 이론적으로만 존재하던 입자의 특성을 규명하는 연구에 활용돼 우주의 비밀을 풀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LHC는 이론물리학자 피터 힉스 교수가 기본입자들에 질량을 부여하는 ‘힉스 보손’을 발견하기도 했다. 

CERN 회원국은 23개 정회원국과 8개 준회원국으로 이뤄져 있다. LHC의 중요성 때문에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80여 개국의 1만7000명(2023년 기준) 이상이 CERN의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은 비회원국이지만 2007년부터 CERN과 연구 협정을 맺고 분담금을 내며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CERN과 대등한 협력 관계를 갖는 옵서버국인 러시아는 소련 시절인 1967년 CERN과 협력을 시작했다. 

CERN은 2022년 6월에 전쟁을 일으킨 데 항의하기 위해 러시아와 그 동맹국인 벨로루시와의 협력 협정을 종료하기로 잠정적으로 합의했다. 벨로루시와의 계약은 6월 27일부로 종료됐다. 러시아와의 계약 만료는 11월 30일이다. 계약을 한달 반 가량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최종적으로 협력을 끝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CERN 연구에 참여 중인 양운기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CERN 내부에서 '과학과 정치는 분리해 생각해야 한다'면서 러시아와의 협력을 이어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면서 "하지만 CERN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독일 등 유럽 국가는 강력하게 '러시아 CERN 방출'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으로 러시아가 내던 분담금을 나머지 연구 참여국이 나눠지게 됐다. 러시아는 LHC 운영 비용의 약 4.5%인 35억원을 매년 분담해 왔다. 러시아는 내년부터 진행될 LHC 업그레이드를 위해 623억원을 낼 계획이었다. CERN 연구에 참가하고 있는 한국인 연구자들에 따르면 러시아와 CERN 협력이 종료되면서 한국은 현재 수준보다 LHC 업그레이드를 위해 5억~6억원 가량 더 내야 한다. 운영 비용은 연구단별로 한국의 참여도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분담할 계획이다. 

또 앞으로 러시아 기관 소속 연구자 400~500명은 CERN 연구에 참여할 수 없고 앞으로 발표되는 논문에 이름을 싣지도 못한다. 러시아 연구자가 빠지면서 CMS 검출기, ALICE 검출기 등 일부 프로젝트 진행에 다소 차질이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CMS 검출기는 LHC 실험을 통한 입자를 검출하는 기기 4개 중 하나다. 한국은 CMS 검출기 제작 및 연구에 참여 중이다. 

CERN 연구에 참여 중인 김태정 한양대 물리학과 교수는 "CERN의 여러 프로젝트 중 CMS 검출기 분야에서 러시아 기술자가 기여하는 바가 상당히 컸다"면서 "러시아에서 만들어서 가져오기로 한 CMS 검출기 부품을 다른 나라에서 새로 가져와야 하는 등 추가적인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채린 기자 rini11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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