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ㅣ 서울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수면센터 정정엽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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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은 빠른 속도로 변화 및 발전하고 있으며, 불과 몇 년 새 우리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인공지능은 이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수준을 넘어 인간의 사고 과정을 이해하는 단계로까지 진화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거대언어모델이 어떤 문제에 대한 답을 내놓기 전에 내부에서 어떤 개념을 활성화하고, 어떤 판단 과정을 거치는지를 분석하는 해석 가능성(interpretability)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는 인공지능 기능 향상만 아니라 인간의 마음과 의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는 데도 새로운 단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타인의 마음을 직접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겉으로 드러나는 표정이나 말과 행동을 통해 추측할 뿐이죠. 정신건강의학이나 심리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문가들은 면담이나 행동 관찰, 심리 평가 등을 통해 개인의 심리 상태를 평가하지만, 실제로 뇌 안에서 어떤 생각이 떠오르고, 어떤 판단이 이루어지는지를 직접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은 온전히 모든 것을 다 볼 수는 없는, 미지의 영역으로 인식되기도 했는데요.
그런데 최근 인공지능 연구에서는 일부 연구자들이 AI가 답변을 생성하기 직전 내부에서 특정 개념이 활성화되는 양상을 부분적으로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는 보고를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인공지능 연구 및 개발 회사인 앤트로픽의 연구자들은 이러한 내부 작업 공간을 ‘J-space’와 같은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는데요. 이들은 J-space에서 특정 개념이 어떻게 활성되는지를 관찰함으로써, Claude가 답변을 만들 때 어떤 개념적 방향을 취하는지 추론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글로벌 작업 공간 이론(Global Workspace Theory)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이론에서는 인간의 뇌가 여러 전문화된 신경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중 일부 정보만이 하나의 작업 공간으로 모여 의식적인 경험이 된다고 설명합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의식적으로 떠올리거나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작업 공간을 거친 정보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현재의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AI가 내부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이 인간의 의식 과정과 동일하다는 근거도 아직 없습니다. 다만 여러 모듈의 정보가 하나의 작업 공간에 모인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가진다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트랜스포머 기반의 거대언어모델과 인간의 뇌는 구조적으로 매우 다른 시스템입니다. 그러나 서로 다른 분야에서 발전해 온 AI 연구와 뇌과학이 부분적으로 유사한 구조적 특징을 발견하고 있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인간의 뇌를 이해하기 위해 만든 이론이 인공지능의 내부 구조를 설명하는 데 활용되고, 반대로 인공지능 연구 결과가 인간의 사고 과정을 이해하는 새로운 가설을 제시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입니다.
정신건강 분야에서도 이러한 변화는 적지 않은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정신과 진료에서는 환자가 자기 생각을 얼마나 정확하게 표현하는지가 진단에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감정을 잘 인식하지 못하거나,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반대로 말로는 괜찮다고 하지만 내면에서는 극심한 불안이나 절망을 경험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차이를 면담과 임상 경험을 통해 추론하지만, 객관적으로 확인할 방법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만약 먼 미래의 뇌과학이 인간에게도 이와 유사한 내부 작업 공간을 보다 정밀하게 관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다면 어떨까요? 말로 표현하지 못한 생각이나 감정, 의사결정 과정, 주의가 향하는 대상 등을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할 가능성이 열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강박장애, 조현병과 같은 정신질환의 진단과 치료에서도 새로운 전환점이 마련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환자가 본인도 인식하지 못하는 부정적인 사고 패턴이나 자살 위험 신호를 조기에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장기적인 가능성이며, 현재의 기술 수준에서 곧바로 실현될 수 있는 단계는 아닙니다.
이러한 가능성과 함께 반드시 고민해야 할 문제도 있습니다. 인간의 생각은 가장 사적인 영역입니다. 만약 기술이 발전하여 마음속 생각을 일정 부분 읽어낼 수 있게 된다면, 이는 의학적 활용만큼이나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동반하게 됩니다. 개인 동의 없이 생각을 분석하거나, 채용이나 보험, 사법 절차에서 이를 활용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진다면 심각한 인권 침해가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정신건강 전문가들이 환자의 비밀을 철저히 보호해야 하는 것처럼, 앞으로의 뇌과학과 인공지능 연구에서도 개인의 정신적 자유와 프라이버시는 반드시 지켜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인공지능이 사람처럼 생각하고, 기능하게 될 날을 상상하곤 합니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는 것만큼,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앞으로 AI와 뇌과학의 만남은 기술 혁신을 넘어, 인간을 새롭게 이해하는 중요한 여정이 되리라 기대됩니다.
서울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수면센터 정정엽 원장
<참고문헌>
Restak, R, M. (July 21, 2026). How Brain Science Is Guiding the Latest Developments in AI. Psychology Today. https://www.psychologytoday.com/us/blog/the-changing-brain/202607/how-brain-science-is-guiding-the-latest-developments-in-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