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마무리' 다저스 불펜을 어찌하리오

'디펜딩 챔피언' LA 다저스의 목표는 월드시리즈 2연패다. 지난해 우승으론 만족할 수 없다. 천문학적인 투자를 하는 만큼 다른 팀들이 하지 못한 걸 이뤄야 한다. 월드시리즈 2연패는 1998-2000년 뉴욕 양키스 이후 나오지 않고 있다. 사실상 21세기에 없었던 팀이다.

올해도 정규시즌 통과는 유력해 보인다. 어제 시즌 80승 고지를 밟았다. <팬그래프>도 다저스의 포스트시즌 진출 확률을 99.6%로 예상하고 있다.

관건은 포스트시즌이다. 다저스에게 정규시즌은 모의고사일 뿐이다. 모의고사에서 전체 1등을 해도 실제 수능을 망치면 실패한 것과 다름없다.

포스트시즌은 변수들로 가득하다. 라운드가 확대되면서 불확실성이 더 강해졌다. 그래서 이기고 있는 경기를 공고히 하는 '지키는 야구'가 강조됐다. 필연적으로 불펜이 이전보다 부각되면서, "불펜이 약하면 월드시리즈 우승은 힘들다"는 말이 정설처럼 굳어졌다.

충격
지난 주말 다저스는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상대했다. 만만하게 볼 팀은 아니지만, 다저스가 밀리면 안 되는 팀이었다. 그런데 1차전부터 끝내기 패배를 당했다.

태너 스캇 (게티이미지코리아)

패배의 주범은 태너 스캇(31)이었다. 9회 말 1대1 동점에서 나온 스캇은 첫 아웃카운트 두 개는 삼진으로 잡았다. 그러나 다음 타자 '루키' 사무엘 바사요에게 끝내기 홈런을 허용했다. 유리한 볼카운트(1-2)에서 던진 빠른 공이 바사요의 스윙에 걸리고 말았다.

다음 날 다저스는 곧바로 끝내기 패배를 극복하는 듯 했다. 선발 야마모토 요시노부가 8회까지 노히트 피칭을 선보였다. 득점지원도 석 점을 받았다.

야마모토의 노히터 도전은 9회 말에 좌절됐다. 첫 두 타자는 삼진과 뜬공으로 처리했지만,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손에 넣지 못했다. 잭슨 할러데이에게 홈런을 내줬다. 대기록이 무산된 야마모토는 투구 수 112개로 마운드를 내려왔다.

이때까지 다저스의 승리를 의심한 사람은 없었다. 할러데이의 홈런이 나온 뒤에도 다저스의 승리 확률은 98.6%나 됐다. 이기는 것보다 지는 게 더 어려웠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전날 끝내기 홈런을 맞은 스캇을 내보내지 않았다. 베테랑 블레이크 트라이넨(37)으로 경기를 마감하려고 했다.

트라이넨은 로버츠 감독이 신뢰하는 투수 중 한 명이다. 지난 5년간 다저스에서 포스트시즌 경기에 가장 많이 등판했다. 큰 경기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에 남은 아웃카운트 하나는 무난하게 채울 것으로 여겨졌다.

2020-24 다저스 PS 최다 등판

29 - 블레이크 트라이넨
24 - 브루스다 그라테롤
19 - 알렉스 베시아
16 - 켄리 잰슨


하지만 트라이넨이 나오자 야구장은 '극장'이 됐다. 트라이넨은 2루타 몸맞는공 폭투 볼넷을 연발하며 만루 위기를 자초했다. 그리고 밀어내기 볼넷까지 내주면서 경기를 한 점차 승부로 만들었다. 로버츠 감독은 황급히 트라이넨을 내렸다.

트라이넨의 뒤를 이은 투수는 '또' 스캇이었다. 전날 끝내기 홈런의 아픔이 아직 다 가시기 전이었다. 물론 연일 난관을 헤쳐 나가는 불펜 투수는 '기억 삭제 능력'이 요구된다. 안 좋은 일은 빨리 잊어야 한다. 그러나 볼티모어는 마치 스캇이 나오길 기다린 듯 또 한 번 끝내기 안타를 때려냈다. 1차전의 데자뷔였다.

끝내기 친 볼티모어 (볼티모어 SNS)

배신감
이 패배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리그 확장이 일어난 1961년 이후, 9회 2사까지 노히터를 끌고간 팀이 역전패를 당한 건 9번뿐이었다. 후유증이 클 수밖에 없었다.

트라이넨은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말했다.

"프로 선수라면 최소한 스트라이크는 던져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내가 본 뛰어난 등판 중 하나였던 야마모토의 경기를 망쳤다. (중략) 이런 결과를 떠안게 돼서 정말 최악이다. 스캇에게도 스트라이크와 훌륭한 공을 던져야 하는 힘든 상황을 떠넘겼다(You’re paid to be a profession and at least throw strikes. I didn’t do that, and it cost one of the better outings I’ve ever seen in my career with Yama. Just really sucks to be on that end of it. I put Tanner in a tough position where he’s key holed to have to throw strikes and great pitches)."

일단, 트라이넨의 잘못은 맞다. 두 점의 여유가 있었고, 누상에 주자도 없었다. 확보해야 될 아웃카운트도 하나였다. 이 날 던진 22개 중 스트라이크는 단 9개였다. 경기 후반에 나오는 투수가 영점을 찾지 못하면서 패배의 빌미를 제공했다.

그렇다고 현재 다저스 불펜의 근본적인 문제를 트라이넨에게 돌릴 순 없다. 올해 트라이넨은 팔뚝 부상 때문에 제대로 시즌을 소화하지 못했다. 4월 중순부터 3달 넘게 빠졌다. 7월말에 복귀한 이후에는 14경기 11이닝 3실점, 평균자책점 2.45로 준수한 피칭을 펼쳤다.

가장 아쉬운 선수는 단연 스캇이다. 4년 7200만 달러 계약의 첫 해부터 걱정이 앞선다.

스캇 입단식 (다저스 SNS)

2017년에 데뷔한 스캇은 커리어 내내 제구는 불안했다. 마무리를 맡았던 지난 3시즌도 9이닝 당 볼넷 수는 4.5개였다. 대신 강력한 구위로 타자를 압박했다. 같은 기간 9이닝 당 탈삼진 11.76개는 불펜 투수 9위에 해당한다(150이닝 이상).

스캇은 '오타니 킬러'로도 유명했다. 오타니가 난색을 표한 투수 중 한 명이었다. 정규시즌 통산 맞대결에서 9타수 1안타(.111) 1볼넷이었다. 작년 포스트시즌에서도 4타석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다저스가 스캇을 데려가자 "오타니에게 또 다른 선물을 안겨줬다"는 말은 과언이 아니었다.

스캇의 성적 변화

22 : 20세/7블론 4.31 (62.2이닝 90K)
23 : 12세/4블론 2.31 (78.0이닝 104K)
24 : 22세/2블론 1.75 (72.0이닝 84K)
25 : 21세/9블론 4.47 (50.1이닝 52K)


그 스캇이 올해 심상치 않다. 당초 로버츠 감독은 마무리를 공언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가 봐도 다저스의 마무리는 스캇이었고, 또 스캇이어야 했다. 그런데 시즌 두 번째 등판부터 실점하더니, 세 번째 등판에서는 첫 블론을 범했다. 잊을만하면 블론과 대량 실점으로 무너지면서, 현재 메이저리그 최다 블론 오명을 쓰고 있다.

포심 패스트볼이 난타를 당하고 있다. 포심 피안타율이 지난해 .134에서 올해 .252로 급등했다. 무엇보다 지난 시즌 포심 피홈런이 1개밖에 없었는데, 올해는 이미 8개다. 그러면서 포심 피장타율도 지난해 .179에서, 올해 .521로 크게 치솟았다.

스캇은 두 가지 구종을 던지는 '투 피치 투수'다. 하나가 망가지면, 다른 하나도 영향을 받는다. 각각의 부담이 가중되면서 둘 다 위력이 반감된다. 실제로 슬라이더 역시 피안타율을 비롯한 성적들이 떨어졌다. 올해 양키스 마무리로 출발했던 데빈 윌리엄스도 포심 체인지업 투 피치가 흔들리면서 고전하고 있다.

스캇도 마음이 복잡하다. 지난 볼티모어와의 시리즈 1차전에서 끝내기 홈런을 내준 뒤 답답함을 토로했다. 오죽하면 '억까'의 뉘앙스를 풍기는 내용도 전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에 지쳤다. 지금은 야구가 나를 싫어하는 것 같다(I’m tired of that happening. Baseball hates me right now).”

해결책
다저스는 불펜이 전체적으로 지친 상태다. 선발진에 부상자가 속출하면서 불펜에 과부하가 걸렸다. 심지어 불펜도 에반 필립스와 브루스다 그라테롤, 트라이넨 등 핵심들이 장기 이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저스는 트레이드 마감시한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메이슨 밀러와 요안 듀란, 데이빗 베드나 등 굵직한 투수들이 나왔지만, 다저스는 불펜 영입에 유망주를 소모하지 않았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불펜과 유망주 교환이 합리적이지 않다'고 내다봤다.

다른 팀들도 이 위험성(risk)은 알고 있다. 그러나 당장의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트레이드를 감행한 것이다. 그리고 다저스 역시 당장의 성과를 내야 하는 팀 중 하나다. 전반기 불펜 평균자책점 24위에 그친 팀이 브록 스튜어트만 데려온 건 분명 이해하기 힘든 행보였다.

하지만 지나간 일을 두고 후회만 할 순 없다. 자체적으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 막판까지 순위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스캇에게 계속 기회를 줄 여유가 있을지 의문이다.

로버츠 감독 (다저스 SNS)

결국 로버츠 감독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난해 포스트시즌에서 팀의 우승을 이끈 신들린 투수 운영이 또 재현돼야 한다. 집단 마무리 체제로 가야 된다면 적재적소에 알맞은 투수 기용이 필수적이다. 믿을 수 있는 투수가 부족하면, 믿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이 와중에 일각에서는 '오타니 마무리' 주장이 나오고 있다.

다저스 전문 매체들이 "포스트시즌에 가면 투수 오타니를 경기 후반에 투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선발진이 부상자들의 복귀로 숨통이 트였고, 어차피 오타니는 이닝을 제한해야 되기 때문이다. 로버츠 감독도 즉답은 피했지만,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 인정했다(Roberts acknowledged there have been “thoughts about” whether he could factor into some kind of potential ninth-inning role as well).

오타니는 당연히 나오려고 할 것이다. 팀 승리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 온 선수다. 2023년 WBC 결승전에서도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책임졌다. 터무니없는 주장은 아니다.

확실한 대안이 될지는 알 수 없다. 불펜 등판이 한 번도 없었던 투수를 마무리로 내보내는 건 엄청난 도박이다. 마무리 오타니가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또 타석에서도 활약을 해줘야 하는 선수에게 또 다른 중책을 맡기는 건 역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지금까지 다저스 불펜은 나쁜 요인들이 겹치고 겹쳤다. 부상으로 인한 불운이 있었지만, 안일하게 방치한 부분도 사태를 악화시켰다. 이 고민을 지우지 못하면 월드시리즈 2연패는 없을 것이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이창섭
현 <SPOTV> MLB 해설위원
전 <네이버> MLB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