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麵), 국수가 된 밀가루 [말록 홈즈]

2025. 1. 10.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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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렉스 에티몰로지’란 ‘자랑용(flex) 어원풀이(etymology)’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쓰는 말들의 본래 뜻을 찾아, 독자를 ‘지식인싸’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작은 단서들로 큰 사건을 풀어 나가는 셜록 홈즈처럼, 말록 홈즈는 어원 하나하나의 뜻에서 생활 속 궁금증을 해결해 드립니다. 우리는 단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지만, 정작 그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쓰곤 합니다. 고학력과 스마트 기기가 일상화된 시대에, ‘문해력 감소’라는 ‘글 읽는 까막눈 현상’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습니다. 단어는 사물과 현상의 특성을 가장 핵심적으로 축약한 기초개념입니다. 우리는 단어의 뜻을 찾아가면서, 지식의 본질과 핵심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와 학교를 떠난 이들의 지식 인싸력도 레벨업됩니다.

‘면(麵)’이란 말을 들으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시나요? 영혼의 식량인 라면부터, 냉면, 짬뽕, 칼국수, 짜장면, 쫄면, 라멘, 우동, 포, 팟타이, 스파게티, 페투치니, 뇨끼 등등이 후루룩 스쳐갑니다. 대부분 길쭉하고 날씬한 국수들이군요.

[이미지 출처] 네이버
사실 한자 ‘면(麵)’은 보릿가루와 밀가루를 가리키다가 국수로 의미가 확장되었다고 합니다. 멘보샤(麵包蝦: 밀가루 면, 감쌀 포, 새우 하. 식빵새우)와 첨면장(甜麵醬: 달콤할 첨, 밀가루 면, 소스 장. 밀가루를 발효시켜 만든 달콤한 중국 된장)의 뜻이 또렷하게 이해되시죠? 그래도 밀가루보다 국수가 먼저 떠오르는 이유는, 그 동안 정든 밥상 위 풍경이 가슴 속에 스며 있기 때문인가 봅니다.
[사진 출처] 말록이네
면 사리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사리는 국수나 새끼 같은 줄을 둥그렇게 포개서 감는 동작인 ‘사리다’에서 온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양념을 가미하지 않은 삶은 국수 뭉치를 가리켰습니다. 식당에서는 전골이나 찌개요리에서 주인공 건더기를 다 먹고, 남은 국물에 넣고 끓이는 비조리 국수도 사리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말의 유래야 어떻든, 우리가 사랑하는 많은 음식들은, 면 사리를 벗하며 색다른 음식으로 변신합니다. 골뱅이 무침, 낙지볶음, 부대찌개가 대표적이죠. 사실 골뱅이를 좋아하지 않지만, 달짝지근하고 칼칼한 양념에 쫀득한 사리면이 어우러지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정작 쫄면이나 비빔냉면은 안 좋아하는데, 별일입니다. 어제 아끼는 벗과 치킨집에 갔습니다. 그 집 골뱅이 비빔면이 아주 맛있기 때문입니다. 왜 국숫집에 가면 그 맛이 안 날까요? 정작 그런 메뉴를 만들어 주는 식당이 있다고 해도, 아주 자주 들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좀 유난스럽습니다.

밀을 뜻하는 영어 ‘wheat’은 ‘빛나다’란 뜻의 인도유럽조어 ‘kweit’에서 왔습니다. ‘white’와 뿌리가 같은 말입니다. 게르만어로 밀을 뜻하는 ‘바이젠(weizen)’도 ‘kweit’에서 왔고,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The Sound of Music)’의 대표적 수록곡 ‘에델바이스(edelweiss: edel + weiss)’는 ‘고귀한 백색(꽃)’을 뜻합니다. 예로부터 ‘희다’와 ‘빛나다’는 같은 의미로 쓰여 왔습니다.

우리말 ‘국수’의 영단어인 ‘noodle’은 독일어 ‘nudel’인데 어원은 명확하지 않다고 합니다. 만두(dumpling: 고기나 야채 소가 들어가지 않은 반죽 형태로 추정)나 작은 매듭을 뜻하는 중세 고지(高地) 독일어 ‘knodel’ 뿌리란 추측이 있습니다. 영화 ‘Once upon a time in America’에서 로버트 드 니로가 맡았던 주인공의 이름도 데이빗 누들스(David ‘Noodles’)입니다. 별명이 ‘누들’인 데이빗입니니다. 남성의 생식기를 속어로 ‘noodle’이라고도 부릅니다. 또한 ‘머리’를 가리키는 라틴어 nodule에서 온 noodle에는 ‘얼간이, 바보’라는 뜻도 있죠. 주인공은 유태계 갱단으로, 동료 갱들 중 ‘짝눈(Philip ‘Cockeye’: 원래 뜻은 사시)’이나 ‘뚱보(‘Fat’ Moe Gelly)’란 인물들도 있습니다. 주인공 데이빗 누들스의 이름 뜻을 ‘거시기 데이빗’이나 ‘얼간이 데이빗’ 정도로 추측해 봅니다. 누들스가 가슴에 품었던 여인 ‘데보라(Deborah)’의 어원은 ‘벌(bee)’라고 합니다. 나중에 침을 쏜 듯 누들스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죠.

“당신은 못 말리는 데볼~ 데볼!”

[사진 출처] 네이버
데보라를 연기했던 제니퍼 코넬리의 꽃 같은 모습도 기억에 남습니다. 영화 속 데보라의 청초한 눈빛에서 군대 가기 전 흠모했던 선배가 떠올랐습니다. 낡은 소년의 푸석한 일상에 잠시 설렘이 일렁입니다. 볼품없고 가진 게 없는 녀석이라, 마음을 전할 엄두도 내지 못했었죠. 오늘 점심은 눈물 젖은 라면이다!

*감수: 안희돈 교수(건국대 영어영문학과). 건국대 다언어다문화연구소 소장. 전 한국언어학회 회장

[필자 소개]

말록 홈즈. 어원 연구가/작가/커뮤니케이터/크리에이터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23년째 활동 중. 기자들이 손꼽는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커뮤니케이터. 회사와 제품 소개에 멀티랭귀지 어원풀이를 적극적으로 활용. 어원풀이와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융합해, 기업 유튜브 영상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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