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이 팔린다구요?” 럭키금성은 왜 MBC 청룡을 인수했을까?

조회 65,8842025. 4. 14. 수정

[이재국의 엘팬알백] ②MBC 청룡 매각과 럭키금성 그룹 인수 비화비사

1989년 12월 15일자 스포츠서울 1면. '청룡 새주인 럭키금성'이라는 톱기사가 대문짝하게 걸리면서 세상이 발칵 뒤집힌다. ⓒ스포츠서울
“MBC가 야구단 청룡을 매각한다고 합니다.”

1989년 11월 말이었다. 럭키금성(현 LG) 그룹 비서실 이규홍 과장은 문화방송(MBC)이 이사회에서 프로야구단 MBC 청룡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문화방송 관계자에게 이 같은 내용의 연락을 받고는 곧바로 구본무 부회장에게 긴급 보고를 올렸다.

이규홍 과장은 구본무 부회장을 오랫동안 측근에서 보좌한 뒤 훗날 LG 트윈스 사장 재임 시절(2019~2021년) 지속적인 강팀의 토대를 닦은 인물이다.

“그게 사실이오? 그럼 즉시 회의를 소집해 주소.”
럭키금성 그룹의 구본무 부회장(왼쪽, 훗날 LG그룹 3대 회장)이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 축하연에서 어윤태 단장과 스포츠신문을 보면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LG트윈스

구본무 부회장은 깜짝 놀랐다.

잘 알려진 대로 럭키금성 그룹 오너 일가는 과거부터 야구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프로야구 출범 당시 원년 멤버로 참가하지 못해 늘 아쉬워하면서 1980년대에 신생팀 창단과 기존 프로야구단 인수 등 KBO리그 진입을 위해 다각도로 검토를 해왔던 게 사실이다.

실제로 구본무 부회장은 1989년 초 그룹 3대 역점 사업으로 프로야구단 창단을 설정할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MBC 청룡을 인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으니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구 부회장은 이 과장에게 긴급회의를 준비해달라고 지시했다.

기획조정실 사장, 재무담당 임원, 홍보담당 임원 등 그룹 핵심 관계자들이 구 부회장실로 속속 모였다. 회의는 오래 진행되지 않았다. 속전속결로 MBC 청룡을 인수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야구단을 인수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요. 빨리 인수 의향서를 제출하고 인수 추진위를 꾸립시다.”

구 부회장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엘팬알백-LG 트윈스 팬이라면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 첫 주제는 럭키금성 그룹이 MBC 청룡을 인수해 KBO리그에 참여하게 된 과정이다. 럭키금성은 어떻게 프로야구에 뛰어들었을까.

1990년 LG 트윈스 치어리더와 LG 할아버지(박기홍 옹)의 모습. LG 할아버지는 MBC 청룡 시절부터 LG 트윈스 시절까지 늘 이곳에서 팬들의 응원을 유도하다 1999년 하늘나라로 떠났다. ⓒLG트윈스

◆MBC 청룡 매각과 럭키금성 인수 기사에 세상이 발칵

『MBC 청룡이 마침내 팔렸다. MBC 최창봉 구단주(문화방송 사장)는 14일 MBC 청룡 이사들에게 구단 매각 사실을 발표했다. MBC 구단 양도금은 1백억 원으로 하되 3년 반에 걸쳐 분할 상환하기로 하고 이와는 별도로 협찬금 형식으로 30억 원 가량을 희사, 총액이 13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알려졌다. MBC는 지난 88년 초 황선필 구단주 시절부터 구단 매각을 검토, 그동안 무수히 매각설에 휘말려 오다 만 2년 만에 현실로 나타나게 됐다.』

1989년 12월 15일자 스포츠서울 신문 1면에 ‘청룡 새주인 럭키금성’이라는 제목으로 대문짝한 기사가 떴다. 이 같은 빅뉴스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그도 그럴 게 MBC 청룡은 1982년 KBO 출범과 함께 원조 서울 프랜차이즈 팀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아온 인기 구단. 청룡 구단이 팔린다는 소식에 모두 충격을 받았다. 더군다나 국내 굴지의 기업 럭키금성이 인수한다니 재계도, 야구계도, 팬들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1989년 12월 15일자 스포츠서울 2면. 럭키금성 그룹이 MBC 청룡 구단을 인수하게 된 과정과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스포츠서울
“저는 당시 럭키금성상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깜짝 놀랐어요. 그룹 내 핵심 관계자만 MBC 청룡을 인수하기로 한 사실을 알았을 뿐 웬만한 그룹 관계자들도 몰랐죠. 은밀하게 구단 인수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던 거죠. 다들 신문 기사 보고 알았어요. 럭키금성은 1980년대에 프로야구단이 없었잖아요. 제 두 아들도 워낙 야구를 좋아해서 (LG상사) 뉴욕 지사 주재원에서 귀국한 이듬해인 1988년에는 OB 베어스 점퍼를 사줬거든요. 그런데 우리 그룹에서 프로야구를 한다니 정말 좋았죠.”

최종준 전 LG 트윈스 단장(전 대한체육회 사무총장)의 이야기다.

최 전 단장의 말처럼 MBC 청룡의 인수는 극비리에 추진되고 있었다. 협상을 할 수 있는 여건도 좋았다. 여의도 럭키금성 쌍둥이빌딩(현 LG 트윈타워)과 MBC방송국은 채 500m도 되지 않는 지근거리에 있었다. 한 달도 안 돼 협상이 거의 마무리됐다.

이규홍 전 사장은 이에 대해 눈을 지그시 감으며 긴박했던 그날의 일들을 회상했다.

1990년 LG 트윈스가 MBC 청룡을 인수한 첫해 한국시리즈 직행을 확정하자 선수단이 기뻐하고 있다. 맨 왼쪽 두 팔을 벌리고 환호하는 인물이 이규홍 과장(훗날 LG 트윈스 사장)이다. 오른쪽으로 윤덕규, 최종준 부장(훗날 LG 트윈스 단장)도 보인다.
“사실 남들이 다 알면 딜(거래)이 안 되잖아요. 그렇잖아도 회장님께서 ‘프로야구를 언제 하긴 해야 하는데 언제 타이밍이 찾아올까’라고 말씀하시곤 했는데 마침 MBC에서 매각 의사 결정이 나왔기 때문에 정보를 듣고 속전속결로 협상을 했던 거죠.”
이규홍 전 LG 트윈스 사장. 1989년 11월 말에 MBC가 프로야구단 청룡을 매각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뒤 구본무 부회장에게 직접 보고를 올렸다. ⓒLG트윈스

◆1982년 프로야구에 뛰어들지 못했던 럭키금성

럭키금성 그룹은 프로야구가 출범하던 1982년 원년 팀으로 출발하지 못한 점을 늘 통탄해왔다. 당시 프로야구에 참여하지 못한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1981년 7월쯤에 정부가 주요 스포츠 프로화를 추진하면서 프로야구 출범의 밑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대한야구협회 전무이사를 지낸 이용일 씨(KBO 초대 사무총장)와 이호헌 MBC 해설위원의 주도 아래 10월 5일 프로야구 창립계획이 만들어지고, 12월 11일 한국프로야구위원회(현 한국야구위원회 KBO의 당시 명칭) 창립총회가 열리기까지 불과 2개월 동안 6개 기업체를 끌어들이는 작업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창립계획에 따라 대기업 총수 출신지나 기업 발상지에 따라 프랜차이즈 권역을 나눴는데 이는 다음과 같았다.

럭키(현 LG) 그룹 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의 고향은 경상남도 함안군 하봉면 승산리(현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 부산과 경남을 연고로 프로야구를 시작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원년 팀 창단 제안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구자경 회장이 해외 출장을 가 있는 사이 제안이 왔고, 그룹 경영진들이 결정을 보류하면서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하지 못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평소 온화한 인품의 구자경 회장이 귀국 후 이 같은 사실을 알고는 이례적으로 대노하면서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롯데는 1975년 실업팀 ‘롯데 자이안트’를 창단해 구단 운영을 해 온 노하우가 있는 데다 창업주인 신격호 회장의 고향(울주군)에 따라 부산·경남 지역의 제1 후보 기업으로 낙점됐다. 럭키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충청권에 프로야구를 시작하려는 기업이 없어 두산 그룹(OB 베어스)이 대전으로 가고, 삼미 그룹이 막판에 인천에 가세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프로야구는 결국 1982년 6개 구단(MBC=서울, 삼미=인천·경기·강원, OB=대전·충청, 해태=광주·호남, 삼성=대구·경북, 롯데=부산·경남) 체제로 먼저 닻을 올렸다.

1982년 KBO 원년 개막식에 6개 구단 선수단이 그라운드에 도열한 가운데 최고령 선수인 OB 베어스 윤동균이 선서를 하고 있다. ⓒKBO

◆“반드시 프로야구단을 만들겠다”

원년 프로야구 창단 기회를 놓친 럭키금성 그룹은 1983년 11월에 국내 최초로 주식회사 형태의 종합 스포츠클럽인 ‘럭키금성스포츠’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스포츠단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해 12월 22일 프로축구 ‘럭키금성 황소축구단(현 FC서울)’을 창단한 데 이어 12월 27일에는 럭키금성 황소씨름단을 창단했다. 이와 함께 금성사 남자배구단(LIG손해보험 전신)과 호남정유 여자배구단(GS칼텍스 서울 KIXX 전신) 등 다양한 스포츠단을 보유하면서 1980년대 한국 스포츠의 발전을 선도했다.

그러나 뭔가 허전했다.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이자 그룹 총수 일가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 프로야구에 참여하지 못한 부분은 늘 아쉬움으로 남아 있었다.

뒷짐만 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꾸준히 문을 두드렸다. 1982년 원년 시즌 도중에는 MBC 청룡 인수 교섭을 벌이기도 했다. 협상이 진전되지 않자 1983년 시즌에 앞서 프로스펙스로 유명한 국내 신발업체 선두주자 국제상사와 함께 KBO에 신생팀 창단신청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당시 보도된 기사를 보면 KBO는 “당장 팀 수를 늘릴 수는 없는 실정이다. (대전의) OB 베어스가 1984년 시즌을 마치고 서울로 본거지를 옮기게 되므로 중부 지방 관할 구단이 비게 되면 이들에게 창단의 우선권을 주겠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런데 원년에 프로야구에 참가하지 못해 애석해 하던 한국화약(한화) 그룹도 1983년에 창단신청서를 KBO에 제출했다. 창업주인 고 김종희 회장의 고향이 천안인 이유 등으로 한국화약 그룹이 결국 충청권을 연고로 창단우선권을 배정 받았다.

럭키금성 그룹 구자경 회장은 1983년 여름, 전그룹 임원세미나에서 “반드시 금년 안으로 프로야구팀을 만들겠다”고 공언했으나 프로야구팀은 다른 종목과 달리 기업 임의대로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럭키금성 그룹 2대 회장인 구자경 회장(왼쪽)이 1990년 MBC 청룡 인수 첫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백인천 감독과 손을 맞잡고 있다. 1990년 LG 트윈스 초대 구단주가 된 구본무 부회장은 구자경 회장의 장남이다. ⓒLG트윈스

◆8년의 두드림…마침내 이룬 프로야구단의 꿈

한편, 공영방송사인 MBC는 당초 프로야구가 정착될 때까지 홍보와 흥행을 위해 3년 동안 프로야구단 청룡을 운영한 뒤 사기업에 넘기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계속 운영하라”는 정부 측의 시그널이 이어지면서 울며 겨자먹기로 팀을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임의대로 프로야구단을 팔 수도 없었던 시절이다.

하지만 MBC는 적자 폭이 계속 늘면서 1988년 황선필 구단주가 정부 측에 “공익방송체가 더 이상 프로야구단을 운영할 의의가 없다”고 설명하면서 매각에 대한 허락을 얻어냈다. 인수 대상 기업을 물색하기 시작하면서 현대, 대우, 진로유통, 일화, 한일그룹 등 국내 굴지의 기업들과 접촉했다. 하지만 모두 타당성 조사 결과 프로야구단이 적자 투성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사지 않으려 했다. 조건도 맞지 않아 협상이 결렬됐다.

1990년 신인왕 김동수는 럭키금성 그룹이 청룡을 인수하면서 LG 트윈스의 시작과 함께했다. ⓒLG트윈스

럭키금성 그룹은 달랐다. 1982년 프로야구단을 창단하지 못했지만, 사실상 원년부터 인수와 창단 등 여러 방식을 놓고 꾸준히 프로야구 가입의 문을 적극적으로 두드려 왔다.

앞서 설명한 사례뿐만 아니라 1987년에도 KBO의 제8구단 창단 작업 당시 럭키금성은 한일합섬과 함께 KBO 측에 창단 의향을 가장 먼저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창단 방식일 경우 전력 약화와 성적 부진이 불가피한 상황. 그룹 이미지가 손상될 것을 우려해 럭키금성 그룹은 제8구단 창단 계획을 백지화했다.

결국 1989년 8월에 쌍방울이 전북 지역을 연고로 제8구단을 창단하는 것이 확정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1989년 시즌이 끝난 뒤 MBC가 청룡의 매각을 추진했고, 이 정보를 입수한 럭키금성 그룹은 앞뒤 잴 것도 없이 협상에 돌입했다. 다시 올 수 없는 기회라고 판단했다.

더군다나 청룡은 수도 서울을 연고로 하는 팀인 데다 팬층이 두껍다. 김재박 이광은 김용수 정삼흠 김건우 노찬엽 등 기존의 스타들도 즐비해 빠르게 시장에 안착할 수 있다는 점은 더욱 매력적이었다.

인수 추진위는 구본무 부회장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한 달도 채 안 된 기간에 MBC 청룡 인수 협상을 사실상 마무리지었다.

1990년 1월18일 여의도 럭키금성빌딩 소강당에서 구승회 럭키금성스포츠단 상무(오른쪽)와 이건영 MBC청룡 사장이 인수 조인식에서 악수하고 있다. ⓒLG트윈스
1990년 여의도 쌍둥이빌딩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기념해 대형 플래카 드가 내걸려 있다. ⓒLG트윈스

협상 실무진들이 불과 몇 백 미터 거리인 여의도 쌍둥이빌딩과 MBC를 부지런히 오가며 서로의 의사를 숨 가쁘게 주고 받았다. 럭키금성은 MBC의 요구 조건을 거의 그대로 들어줬다.

1982년 프로야구단을 창단하지 못해 가슴을 쳐 온 한 맺힌 8년의 세월. 럭키금성이 마침내 프로야구단을 갖는 숙원을 푸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구단 프런트를 조직해야 하고, 구단 이름을 만들고, 마스코트와 유니폼을 제작해야 했다. 선수단은 1월에 전지훈련을 떠나야 하는데…. 다음 시즌 개막까지 남은 시간도 불과 몇 개월. 큰 산을 넘었더니 또 다른 큰 난관에 봉착했다.

<엘팬알백> ③편에서 계속

1990년 잠실야구장 전광판. 태평양 돌핀스와 LG 트윈스 라인업 이름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LG트윈스

이재국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인생이 야구여행이라고 말하는 야구운명론자.

현 스포팅제국(스포츠콘텐츠연구소) 대표 / SPOTV 고교야구 해설위원 / 유튜브 '이재국의 와일드피치' 운영

전 스포츠서울~스포츠동아~스포티비뉴스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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