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밉상’ 여자 프로레슬러의 폭주, 그 끝은?

한겨레 2024. 10. 5.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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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우리는 선하고, 남과 너희들은 악하다.

나의 나쁜 행동은 그럴 듯한 명분으로 합리화하지만, 남의 선한 행동은 저의가 있을 거라 의심한다.

하지만 오늘 우리의 주인공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빛나는 자리에는 소수만 설 수 있고, 나머지 대다수는 한번도 빛을 내지 못하고 사그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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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혁의 OTT 충전소 ㅣ 넷플릭스 드라마 ‘극악여왕’
넷플릭스 드라마 ‘극악여왕’. 넷플릭스 제공

나와 우리는 선하고, 남과 너희들은 악하다. 나의 나쁜 행동은 그럴 듯한 명분으로 합리화하지만, 남의 선한 행동은 저의가 있을 거라 의심한다. 세상을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누고 선과 악이라 규정한다. 우리 편 주인공은 아름답고 날씬하며, 반대 편 악당은 뚱뚱하고 추하다. 동화부터 드라마·영화까지 우리는 그렇게 학습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 우리의 주인공은 그렇지 않다. 착하게 열심히 살았지만, 온 국민의 미움을 받는 악당이 됐다. 아무도 좋아하지 않았지만, 일본 여자 프로레슬링 최고 스타가 된 덤프 마츠모토의 일대기를 드라마로 만든 ‘극악여왕’(넷플릭스)이다.

일본 버블경제가 절정을 달리던 1980년대.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희망 없는 삶을 살던 카오루는 우연히 본 여자 프로레슬링 경기에 빠진다. 프로레슬링 오디션에 지원해 합격하지만, 덩치만 크고 실력은 없으며 무엇보다 마음이 여려 아무것도 못 할 거란 비난 속에 잡일만 도맡는다.

프로레슬링은 스포츠이면서 쇼비즈니스에 더 가깝다. 레슬링 실력도 중요하지만, 관객들 지갑을 열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착한 우리 편, 즉 ‘선역’을 담당할 스타가 있어야 하고, 그를 괴롭힐 악역이 필요하다. 악역은 항상 반칙을 쓰고 마지막엔 져야 한다.

고된 훈련 속에 동기들은 하나둘 스타가 되지만, 제대로 된 경기를 못 하는 카오루는 가족들과 동료들에게 이용만 당한다. 그렇게 쌓인 분노가 폭발한 어느 날, 카오루는 경기장에 난입해 모두를 박살내버리고, 사람들은 그 잔인한 모습에 경악한다. 덤프트럭 같다 해서 ‘덤프 마츠모토’라는 닉네임이 생기고, 이제 카오루를 중심으로 새로운 팀 ‘극악동맹’이 탄생한다.

프로레슬링에서 상대를 다치지 않게 하려면 어느 정도 약속이 필요하다. 하지만 경기 중 점점 격해지는 감정은 사전 약속을 어기게 만든다. 아이러니하게도 ‘약속 대련’이 ‘진짜 싸움’이 될 때 대중은 더 열광한다. 그렇게 탄생하는 스타. 하지만 빛나는 자리에는 소수만 설 수 있고, 나머지 대다수는 한번도 빛을 내지 못하고 사그라진다. 악역 덤프는 스타를 위한 들러리를 거부한다. 누구도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폭주한다. 이 광기의 끝은 어디일까?

우리에겐 ‘아스달 연대기’(tvN)로 익숙한 카라타 에리카가 덤프의 숙적 치구사 역으로 나온다. 놀라운 점은 배우들의 레슬링 실력이다. 모두 레슬링에 진심이다. 잔인하고 거침없는 경기에 숨을 죽이게 된다. 지금은 레슬링 원로가 된 치구사의 실제 레슬링팀에서 모든 배우들이 1년 동안 레슬링을 배웠다고 한다.

링은 경기가 펼쳐지는 공간이자 거대한 규칙이다. 그래서 로프는 외부인들이 링 안으로 침입하지 못하게 하는 안전장치이면서 선수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만드는 족쇄이기도 하다. 링에서 펼쳐지는 스포츠 중 유일하게 프로레슬링은 로프를 이용해 공격하고, 때때로 상대를 링 밖으로 던져버리며, 로프를 넘어 동료를 구하고, 링 밖에서도 싸운다.

우리 인생이 프로레슬링이라면, 우리를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사회규범·가족·학교·직장이 로프가 아닐까? 당신은 인생이란 게임에서 한번이라도 로프를 뛰어넘은 적이 있나. 아니면 아직 로프 위에서 그저 줄타기 중인가. 그리고 그 게임에서 당신은 선역인가, 악역인가.

씨제이이엔엠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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