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 시애틀, 월드시리즈 진출이 보인다

시애틀은 1977년에 창단했다. 당시 메이저리그에 새로 들어온 두 팀 중 한 팀이었다. 시애틀의 창단 동기가 현재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 맞상대 토론토였다.

토론토는 두 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달성한 바 있다. 심지어 1992-93년 연속 우승이었다.

반면, 시애틀은 한 번도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적이 없다. 우승은 고사하고 월드시리즈에 올라가지도 못했다. 더 늦게 합류한 콜로라도와 마이애미, 탬파베이, 애리조나도 월드시리즈 우승 혹은 진출이 있는데, 시애틀은 월드시리즈 역사 자체가 없다.

시애틀 포스트시즌 역사

1995 - 챔피언십시리즈 패배 (2승4패)
1997 - 디비전시리즈 패배 (1승3패)
2000 - 챔피언십시리즈 패배 (2승4패)
2001 - 챔피언십시리즈 패배 (1승4패)
2023 - 디비전시리즈 패배 (3패)

시애틀 매리너스 (시애틀 SNS)

2022년 시애틀은 무려 21년 만에 포스트시즌을 경험했다. 비록 디비전시리즈에서 휴스턴에게 막혔지만, 강력한 마운드를 구축한 시애틀의 미래는 밝아 보였다. 그리고 2001년 이후 처음으로 지구 우승을 차지한 올해, 시애틀은 마침내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준비
지난 겨울 시애틀은 조용했다. 공격력 보강이 필요했지만, 호르헤 폴랑코와 재계약이 가장 큰 영입이었다. 폴랑코는 지난해 118경기 타율 .213 16홈런, OPS 0.651에 그쳤다.

사실 시애틀은 원래 시장에 많은 돈을 쓰지 않는다. 팀의 운영 방식이 제리 디포토 사장 철학과 비슷하다. 디포토는 샌디에이고 A J 프렐러 사장과 더불어 트레이드를 굉장히 선호하는 인물이다. 트레이드로 팀을 재구성해서 전력을 다듬는 데 일가견이 있다.

실제로 시애틀의 승부수는 트레이드 마감시한에 나왔다. 조시 네일러와 에유헤니오 수아레스를 데려오면서 타선을 강화했다. 홈런을 칠 수 있는 타자들이었다.

제리 디포토 사장 (시애틀 SNS)

보통 포스트시즌을 대비하는 팀들은 마감시한에 불펜 자원을 수집한다. 다득점보다 실점 방지에 신경을 쓴다. 그러나 시애틀은 더 많은 점수를 뽑는 데 초점을 맞췄다. 디포토는 "내가 시애틀에 온 이후 최고의 타선"이라고 자부했다.

노력한 보람은 있었다. 갈수록 짜임새가 갖춰지면서 9월 팀 득점 전체 1위에 올랐다(139득점). 종합 공격 지표인 조정득점생산력(wRC+)도 전체 1위였다.

9월 팀 wRC+ 순위

128 - 시애틀
121 - 필라델피아
119 - 양키스
113 - 다저스
113 - 컵스


타선에 긍정적인 요소들이 넘쳤다. 칼 랄리는 MVP 후보로 떠올랐고, 훌리오 로드리게스는 약속이라도 한 듯 또 후반기에 폭발했다. 건강을 되찾은 폴랑코는 반등했고, 도미닉 캔존도 성장했다. 여기에 네일러와 수아레스가 더해지면서 타선이 두터워졌다.

디포토의 자신감은 결코 허풍이 아니었다.

홈런
올해 시애틀은 238홈런을 합작했다. 60홈런 랄리를 필두로 로드리게스(32홈런) 아로사레나(27홈런) 폴랑코(26홈런)가 홈런 갈증을 풀어줬다.

238홈런은 시애틀 역대 5위에 해당한다. 리그 전체적으로 홈런이 폭증했던 2019년 239홈런 이후 가장 많은 기록이다.

시애틀 단일 시즌 팀 최다홈런

1997 - 264홈런
1996 - 245홈런
1999 - 244홈런
2019 - 239홈런
2025 - 238홈런


시애틀의 홈구장은 1999년 7월 중순에 개장했다. 20년 동안 세이프코필드로 불렸고, 2019년부터 'T-모바일 파크'로 이름이 바뀌었다.

T-모바일 파크 (시애틀 SNS)

T-모바일 파크는 홈런 치기가 매우 까다롭다. 펜스 이동과 높이 변경, 홈런 타자 영입 등 다양한 시도를 해봤지만, 홈런 생산은 풀리지 않는 미제였다. 홈 플레이트와 중앙 펜스가 평행을 이루지 않는 독특한 설계가 타자 시야를 방해한다는 분석이 있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올해 시애틀의 238홈런은 의미가 있다. 특히 지난해 홈에서 친 홈런이 87개에 불과했는데, 올해는 104개로 늘어났다. 홈에서도 홈런 파워를 보여준다면 T-모바일 파크의 특성이 어색할 상대 팀과 차별화를 더 확실하게 가질 수 있다.

홈런의 증가가 홈런 압박에 벗어나면서 비롯된 점이 흥미롭다.

현재 시애틀의 공격 스타일을 주도하는 인물은 에드가 마르티네스다. 커리어 18년을 모두 시애틀에서 뛴 구단 전설이다. 지난 시즌 중반 타격 코치로 긴급 투입된 이후, 현재는 타격 전략 총괄(Senior Director of Hitting Strategy)을 맡고 있다. 케빈 사이처 타격 코치가 부임하면서 일선에선 물러났지만, 실질적인 전권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마르티네스는 점점 복잡해지는 타격 이론을 지양했다. 타석에서 보다 단순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타구속도와 발사각도를 생각하는 대신, '공격적으로 포심 패스트볼을 노리는 자세가 우선시돼야 한다'는 게 마르티네스의 지론이다.

에드가 마르티네스 (시애틀 SNS)

마르티네스는 선수로서 T-모바일 파크를 경험한 적이 있다. 홈 플레이트와 중앙 펜스가 더 일직선으로 지어져야 한다고 말한 장본인이다. 그러면서 당장은 이 구장의 환경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억지로 홈런을 치려고 하지 말고 낮은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양산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시애틀은 홈런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으니 오히려 홈런이 따라왔다. 좀 더 적극적으로 포심을 타격하는 부분도 맞아떨어졌다. 덕분에 오랜 시간 발목을 잡은 약점을 해결할 수 있었다.

2025 포심 상대 최다 홈런

101 - 양키스
95 - 메츠
87 - 시애틀
86 - 다저스
86 - 에인절스


가을
시애틀의 홈런은 포스트시즌에서도 터지고 있다. 포스트시즌 10홈런은 시카고 컵스(12홈런) 다음으로 많은 기록이다. 7경기 중 5경기에서 홈런 하나씩을 만들었다.

가을은 미친 선수가 나오면 유리하다. 시애틀은 폴랑코의 활약이 반갑다. 디비전시리즈 2차전에서 스쿠벌에게 홈런 두 방을 친 폴랑코는, 챔피언십시리즈 2차전에서도 스리런 홈런을 쏘아 올렸다. 현재 포스트시즌 7경기 타율 .258 3홈런 8타점, OPS 0.851이다.

폴랑코의 한 방은 결정적인 순간에 나오고 있다.

호르헤 폴랑코 (시애틀 SNS)

시애틀은 디비전시리즈 5차전에서 연장 15회 혈투를 펼쳤다. 5시간 승부에 마침표를 찍은 선수가 폴랑코였다. 연장 15회 끝내기 안타를 때려냈다. 챔피언십시리즈 1차전에서도 6회 1대1 균형을 허무는 적시타, 2차전 스리런 홈런 역시 3대3 균형을 깨뜨린 한 방이었다. 포스트시즌 3경기 연속 결승 타점의 주인공이다.

단일 포스트시즌 연속 결승 타점

4 - 델몬 영 (2012)
3 - 에릭 호스머 (2015)
3 - 호르헤 폴랑코 (2025)


이번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서 전문가들은 토론토의 근소한 우위를 점쳤다. 디비전시리즈 5차전 연장 15회 여파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시애틀은 지치지 않았다. 원정 1,2차전을 모두 승리했다. 포스트시즌 역사상 7전 4선승제 시리즈에서 먼저 2승을 거둔 팀의 시리즈 승리 확률은 83.9%(78/93)에 달했다. 현 체제에서 원정 1,2차전을 승리한 경우는 승리 확률이 88.9%(24/27)로 더 높아졌다. 시애틀이 얼마나 유리한 위치에 있는지 보여준다.

시애틀은 마운드에선 우위를 점하고 있다.

토론토는 부상 때문에 선발진을 꾸리는 일도 쉽지 않다. 정규시즌 3경기 등판이 전부였던 트레이 예세비지(22)가 팀 2선발이다. 크리스 배싯이 허리 부상에서 돌아왔지만, 선발로 나오는 건 시기상조다(3차전 선발 셰인 비버, 4차전 맥스 셔저).

시애틀도 이번 시즌 1선발 역할을 해준 브라이언 우의 몸상태가 변수였다. 흉근 부상으로 디비전시리즈를 놓친 우는 복귀가 임박했지만, 정확히 언제 돌아올지는 아직 미정이다. 이에, 시애틀은 3,4차전도 조지 커비와 루이스 카스티요가 등판 예정이다.

여기서 두 팀의 차이가 드러난다. 시애틀은 우가 없어도 선발진을 채울 수 있는 투수들은 충분하다. 작년에 비하면 기복이 심해졌지만, 선발 투수들의 풍족함은 시애틀의 최대 강점이다. 불펜도 마무리 안드레스 무뇨스를 포함한 승리조의 안정감이 토론토를 앞선다.

그동안 가을은 시애틀에게 잔인한 계절이었다. 누구보다 외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가을을 만끽하고 있다. 현지에서도 우승 적기로 바라본다.

시애틀은 그런지(Grunge)의 도시다. 90년대를 강타한 그런지 락 음악의 발상지이자 중심지였다. 내일부터 T-모바일 파크를 가득 채울 관중들의 응원 함성은 그 못지않을 것이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 시작된다. 기분 좋은 불면증이 되길 바란다.

시애틀 관중들 (시애틀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