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저강도 장기전, 갈수록 꼬이고 있다
가자 전쟁 1년, 확전 위기
레바논·시리아 삐삐 폭발 테러
이스라엘-이란 연대세력 맞붙는
고강도 전면전 현실화 가능성
이스라엘 안보 전략과도 어긋나
지난해 10월7일 시작된 가자 전쟁에서 국제사회의 가장 큰 우려는 이 전쟁이 이스라엘 대 이란 연대세력의 중동 광역전으로 비화하는 사태였다. 지난 17일 레바논과 시리아 전역에서 이스라엘의 소행이 확실시되는 무선호출기(삐삐) 폭파 테러에 이어 18일 무전기(워키토키) 폭파 테러로 이제 광역전은 사실상 현실이 됐다. 이 광역전은 현재로서는 저강도의 다중전선 장기전이지만, 자칫 이스라엘과 이란 세력의 고강도 전면전으로 번질 가능성도 예약해둔 상태이다.
삐삐 및 무전기 테러는 이스라엘이 지난 연말부터 레바논·시리아·이란 등지에서 헤즈볼라 및 이란의 요인과 시설물을 겨냥해 감행해온 공격이 그 세력들을 견제하거나 응징하려는 차원이 아니라 이들의 보복을 유도해 확전으로 가려는 전략임을 확실히 드러냈다.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극우 내각도 이번 테러 공격 뒤 레바논 헤즈볼라와의 전투를 상정한 전쟁 목표를 공식화했다. 북부 국경에서 헤즈볼라와의 충돌로 난민이 된 자국민 6만명의 “안전한 귀가”를 새로운 전쟁 목표로 설정한 것이다.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은 “(이스라엘은) 이 전쟁의 새로운 국면을 열고 있다”며 “(전력의) 무게 중심이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병력·자원·에너지를 북쪽으로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삐삐 테러 전날 아모스 혹스틴 미국 특사에게 헤즈볼라의 국경 분쟁을 끝내는 “유일한 길”은 “군사행동”이라고 천명했다.
‘적의 영토에서 단기전 압승’ 실패
네타냐후와 이스라엘은 가자 전쟁 발발 때부터 사실상 다중전선의 덫에 자의 반 타의 반 걸어 들어갔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북부 접경에서 로켓포를 쏘며 충돌을 지속해왔고, 예멘의 안사르알라(후티 반군)도 홍해에서 국제 물류를 방해하며 이스라엘로까지 드론과 미사일 공격을 가했다. 시리아와 이라크의 친이란 무장세력들도 미군 시설을 공격하는 등 합세했다. 가자 전쟁이 지속되면서, 요르단강 서안에서도 팔레스타인 주민과 이스라엘 정착민 사이에 소요와 충돌이 거세져왔다. 이스라엘은 지난 연말부터 역외에서 헤즈볼라와 이란에 대한 공격을 했고, 이란은 지난 4월 드론과 미사일을 동원해 사상 최초로 이스라엘 본토를 보복 공격했다.
가자 전쟁이 발발한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가자 전쟁은 이스라엘이 50년 만에 공식 선포한 전쟁이자, 건국 이후 최장기전이다. 이제 전선은 가자뿐 아니라, 레바논의 헤즈볼라, 시리아와 이라크의 친이란 무장세력, 예멘의 안사르알라, 서안, 이란까지 7개나 된다. 한마디로 저강도 장기 광역전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전쟁 양상은 이스라엘이 건국 이후 수행해온 전쟁전략이나 군사전술이 아니라고 이스라엘방위군의 전략 참모였던 아사프 오리온이 12일 미국 외교·안보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한 ‘이스라엘과 다가오는 장기전’에서 지적했다. 이스라엘의 안보 개념은 ‘적의 영토에서 단기전 승리’에 기초한다. 작은 정규군으로 적의 공세를 저지하고, 신속히 대규모 예비병력을 동원하고, 공세로 나아가, 적의 영토에서, 한 전선에서 결정적 승리를 거둬, 신속하게 적의 총병력의 패배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무엇보다, 적의 영토에서 ‘짧고 결정적인’ 전쟁을 강조한다. 이는 이스라엘의 영토가 좁고 인구가 적은 현실에서, 전력의 효율성을 최대화하고, 전쟁의 피해를 막으며, 전쟁 이후 신속한 일상 회복을 위한 전략이다. 이런 전략은 억지, 조기경보, 결정적 승리라는 세 축에서 구축된다. 이에 더해, 미국 등 주요 세력의 지원이 보조축이다.
이스라엘은 이런 안보 개념에 입각한 전략으로 아랍 국가들과의 4차례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는, 1973년 이후에는 주변 아랍국과의 전쟁을 사실상 종결했다. 그 이후에는 헤즈볼라, 하마스 등 비국가 무장집단에 대한 대처로 전환했다. 이스라엘방위군은 하나의 적에 대해 결정적인 공세 작전을 수행하면서도 다수의 공격자들로부터 이스라엘을 동시적으로 방위하는 능력을 추구해왔다. 이런 군사전략 아래, 비국가 무장집단으로는 가장 강력한 헤즈볼라가 활동하는 레바논 남부를 제1전선으로, 가자의 하마스는 부차적 전선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전쟁이 터지면 레바논에서 결정적 승리를 거둘 때까지 하마스에 대한 대처는 미루는 것이 이스라엘 전략가들의 구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전쟁은 이런 안보 개념과 전략에 완전히 어긋나고 있다. 이스라엘 자신이 가자 휴전을 거부하며 장기전을 선택하고 있는데다, 결정적 승리를 쟁취하지도 못하고 있다. 전쟁은 적의 영토가 아니라 이스라엘 남부와 북부 접경에서 집중되고 있다. 주전선은 레바논이 아니라 가자가 됐다.
이는 이스라엘 경제와 사회에 치명적 영향을 주고 있다. 지난해 이스라엘의 경제성장률은 2.0%였는데, 4분기만 보면 전년 동기 대비 -19.4%를 기록했다. 국가 신용등급이 하락하고 공급망이 교란됐다. 이스라엘 경제의 중추인 청장년의 예비군 소집이 장기화하면서 국가 전체뿐만 아니라 예비군들의 생계와 가계가 붕괴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남부와 북부의 주민들은 난민이 됐다. 이스라엘군 전사자도 700명에 이른다.
전력 소진·사회분열·국제고립…
안보 틀의 주축인 억지, 조기경보, 결정적 승리, 미국 등 동맹국의 지원 모두가 제대로 작동하지도 않고 있다. 하마스의 침공, 헤즈볼라와 후티의 참전, 가자에서 1년째 지속되는 전투에 더해, 가자에서 민간인 학살과 인도주의적 지원 방해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부담스럽게 된 상황까지 겹쳤다. 또 오랜 전쟁으로 이스라엘방위군의 예비군 등 전력도 바닥을 드러냈다. 군 지도부는 약 1만명의 상비병력, 15개 전투부대가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당장 이런 전력 증원은 불가능해서, 현재 가자에 있는 병력을 레바논 쪽으로 돌리면 예비군의 추가 복무가 불가피하다.
이스라엘 사회 내부도 사분오열이다. 네타냐후의 확전 전략이 정권 유지 수단이라는 비판이 야당과 시민사회에서 터져 나오는데, 이 와중에 네타냐후는 자신의 지지층인 초정통파 유대교도들의 군 징집은 결사적으로 막고 있다.
삐삐 테러 전날인 16일, 이란의 마수드 페제슈키안 대통령은 취임 뒤 첫 기자회견에서 “(이스라엘은) 우리를 전쟁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자제력을 발휘”했다고 밝혔다. 이란과 헤즈볼라는 네타냐후가 기도하는 확전에 말려들지 않으면서, 현재의 저강도 장기 광역전을 지속하겠다는 전략이다. 이스라엘은 갈수록 꼬여가는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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