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한강 특수? 먼나라 얘기"… 대전 인쇄업계는 고사 위기

14일 대전 인쇄특화거리 가보니 영업 위축
인쇄업계 살릴 수 있는 대안 조속히 마련해야
14일 오전 10시께 대전 정동 인쇄특화거리 모습.

"한강 작가의 책 인쇄 판권 계약을 맺은 인쇄소만 호황이지 나머지는 '한강 특수' 없어요. 특히 대전의 인쇄업계는 지금 고사 직전이에요."

14일 오전 10시께 대전 동구 정동 인쇄특화거리 일대에서 만난 인쇄인들은 기자의 질문에 모두 고개를 휘저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종이책을 찾는 이가 늘어 인쇄소도 모처럼 활기를 되찾았다는데, 대전은 인쇄기 돌아가는 소리 없이 조용했다.

도서 인쇄를 하는 업체도 찾기 쉽지 않았다. 종이책 매출이 줄어든 것은 물론, 지역보단 수도권의 출판사와 인쇄소를 이용하려는 분위기 탓이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도서 출판 인쇄 매출은 30%가량 감소했다. 동구에만 도서 출판사가 70곳 가까이 있지만, 이용률이 줄면서 덩달아 인쇄소와의 거래 물량도 줄어 드는 상황이다. 최근 대전의 대표 향토 서점인 계룡문고까지 폐업하면서 인쇄업계의 고심도 깊어졌다.

인쇄 거리에서 10년째 출판사와 인쇄소를 함께 운영 중인 A씨는 "요즘은 작가 개인이 소량으로 책을 출판하는 것이 더 많아졌다"며 "지자체 지원을 받는 지역 작가들도 대전에서 출판.인쇄를 하지 않고, 수도권 업체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대전시민 세금으로 지원받아서 책을 내는 건데 지역 업체를 이용해줬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대전 인쇄 거리는 서울 을지로, 대구 남산동과 함께 전국 3대 인쇄 특화 거리 중 하나다. 104년의 역사를 갖고 있지만, 지역의 무관심에 명맥을 잃을 위기다. 대전인쇄조합에 따르면, 이곳 인쇄 거리에서 800여 곳의 인쇄업체가 운영되고 있었지만, 최근 400여 곳으로 절반 가까이 줄은 상태다. 전문 인쇄 장비 역시 60대가 있던 반면, 현재 등록된 인쇄기는 47대뿐. 그나마 대전과 세종에 공공기관이 많다 보니 대부분의 업체가 관공서 책자, 명함, 홍보 전단지 등 인쇄로 근근이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대형 인쇄 장비를 보유하고 있는 'ㅎ' 인쇄소도 마찬가지였다. 인쇄기가 쉴 틈 없이 돌아가곤 있지만, 인쇄소 안에는 도서 출판물보단 공공기관 책자, 공연 포스터, 제품 카탈로그가 빼곡히 쌓여 있었다.

이곳은 인쇄거리에서 운영을 중단해야 하는 더 큰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삼성 1구역 등 역세권 재개발, 재건축 추진으로 인쇄 거리 4개 구역 중 2개 구역의 인쇄업체 120여 곳이 자리를 떠야 하는 상황이다. 'ㅎ' 인쇄소도 그중 하나다. 'ㅎ' 인쇄소 대표인 김모 씨는 "대전에서 인쇄 산업이 사라질 판인데, 재개발.재건축 추진 과정에서 지자체의 대안은 10년째 없는 상황"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요즘은 공공기관 인쇄 의뢰도 감소하는 상황이다. 매년 연구보고서 책자 발간을 위해 인쇄업계를 찾던 대덕연구단지 내 연구기관도 최근 3년에 한 번으로 책자 발간을 줄이면서 인쇄소 평균 업무량도 3분의 1이 줄었다는 것이다.

박영국 대전세종충남인쇄정보산업협동조합장은 "기관마다 자료를 디지털화시키다 보니 걱정"이라며 "인쇄업이 특수를 누릴 수 있는 선거기간에도 정당에서 지역 인쇄소보단 수도권 인쇄소를 이용한다. 시에서 얼른 대안을 만들어놓지 않으면, 인쇄거리는 5년 내로 더 힘들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바름 기자 niya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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